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세관단속국(ICE) 급습 이후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미국에 계속 남아 일해달라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법 고용을 문제 삼으며 “외국 기업은 미국 이민법을 존중하고 미국 근로자를 고용하라”고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반대 제안을 내놓으면서 *‘오락가락 행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사상 최대 불법 이민단속 뒤 “남아달라”
ICE는 지난 4일 ‘미국 되찾기 작전(Operation Take Back America)’의 일환으로 조지아주 현대-LG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무려 475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국인 316명을 포함한 330명이 석방돼 11일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양국 간 협의 과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련공인 한국인 인력이 미국 인력 훈련에도 필요하다며 귀국 대신 체류를 권장한 것이다.
◇ “병 주고 약 주는 행태”
타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전례 없는 대규모 단속 직후 나온 것이어서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ICE의 사상 최대 단속 직후 외국 기업에 미국 내 고용 원칙을 강조했지만 불과 며칠 만에 단속 대상이 된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남아달라”는 메시지를 내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 같은 행보가 투자 유치와 이민 규제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류용욱 싱가포르 리콴유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외국인 투자 유치 전략과 이민 규제는 원래 양립할 수 있다”면서도 “세밀한 정책 조정이 없으면 외국 기업에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한·미 투자 신뢰 흔들
이번 사태는 외교·경제적 파장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가진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당혹스러운 구금 사태가 향후 미국 내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비자 정책이 불투명하다면 기업들은 현지 진출 자체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최근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74조 원)를 투자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공장을 설립하는 자체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 법적 정당성 논란도
ICE가 주장한 ‘불법 근무’ 여부 역시 논란이다. 이민 전문 변호사 찰스 쿡은 “내가 대리하는 한국인 근로자 상당수는 ESTA나 단기 상용 비자(B-1)로 합법 입국해 장비 설치·훈련 등 계약상 허용된 업무를 하고 있었다”며 “대부분은 구금 자체가 부당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