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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중국산 광물 100% 의존 끝내겠다"...35억 달러 투입 '자원 전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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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중국산 광물 100% 의존 끝내겠다"...35억 달러 투입 '자원 전쟁' 선포

에너지 이어 핵심 원자재도 '탈중국' 가속...캐나다·독일 광산 개발에 자금 투입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 심화...韓 배터리·방산 업계, 고비용·기회 공존하는 '태풍의 눈'
유럽연합(EU)이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희토류와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내년에만 35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리소스EU(RESourceEU)'를 공식 출범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EU)이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희토류와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내년에만 35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리소스EU(RESourceEU)'를 공식 출범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유럽연합(EU)이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희토류와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내년에만 35억 달러(51600억 원)를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리소스EU(RESourceEU)'를 공식 출범했다고 에포크타임스가 지난 4(현지시각)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현지시각)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포괄적인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2022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가동했던 '리파워EU(REPowerEU)'의 광물 버전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유럽의 의지가 담겼다.

EU 집행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무역 조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EU의 경제 안보를 더욱 능동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소스EU' 가동... 캐나다·독일 광산에 자금 투입


EU가 내놓은 '리소스EU'의 핵심은 자금 지원과 인허가 절차 간소화다. 집행위는 내년에 약 30억 유로(미화 35억 달러)를 조성해 핵심 원자재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투자처도 윤곽이 드러났다. 캐나다 자원기업 '그린란드 리소스(Greenland Resources)'가 추진하는 몰리브덴 광산 프로젝트와 독일 '불칸(Vulcan)'의 리튬 추출 사업이 대표적인 지원 대상이다. 몰리브덴은 철강 강화제와 방산 물자에 필수적이며,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의 심장과도 같은 핵심 소재다.

자금 지원 외에도 행정 장벽을 대폭 낮춘다. 광산 개발과 정제 시설 구축에 드는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회원국 간 공동 구매와 비축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한, 폐자원을 재활용해 원자재를 확보하는 '순환 경제' 체계를 역내에 정착해 자급률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EU 집행위는 경제 안보를 위한 6대 우선 과제로 ▲전략적 의존도 축소 ▲외국인 직접투자(FDI) 심사 강화 ▲방위·우주 등 핵심 산업 강화 ▲중요 기술 리더십 확보 ▲민감 정보 및 인프라 보호 등을 꼽았다. 이는 사실상 중국 자본의 무분별한 유럽 내 기술 탈취와 인프라 장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공 단계 중국 의존도 100%... 수치로 확인된 '공포'


EU가 이처럼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중국에 목덜미를 잡힌 원자재 공급 구조가 있다. 집행위가 공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5년 기준 EU의 영구자석 대중국 의존도는 90%에 이른다. 희토류 채굴은 95%, 가공 및 재활용 단계에서는 무려 100%를 중국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스테판 세주르네(Stephane Sejourne) EU 집행위 수석부위원장은 "수출 허가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그마저도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제공해야만 가능한 현재의 단일 국가 의존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마로스 세프코비치(Maros Sefcovic) 유럽연합 무역 담당 집행위원 역시 "무역의 무기화와 국가 주도의 과잉 생산 위험 속에서 유럽이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인 공급 충격을 막으면서 위험한 의존도를 꾸준히 낮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EU는 이번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30년까지 영구자석 의존도는 80%, 희토류 채굴은 42%, 가공은 6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29~89%에 달하는 배터리 및 방산 원자재 의존도 역시 2030년에는 0~64%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새로운 '경제 안보 독트린'... 미국 IRA와 궤를 같이해


이번 조치는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선 EU의 새로운 '경제 안보 독트린' 선포로 해석된다. EU는 외국인 직접투자 심사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마련하고, 무역 방어 조사 시 경제 안보 요소를 핵심 지표로 반영하기로 했다. 특정 제3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프로젝트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통상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이는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유럽 또한 역내 생산과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프렌드 쇼어링) 구축에 사활을 걸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캐나다와 같은 자원 부국이자 서방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배제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자원 전쟁, 韓 기업엔 '비용 청구서'이자 '기회'


EU'리소스EU' 선언은 글로벌 광물 시장과 한국 산업계에 즉각적이고 복합적인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첫째, ()중국산 광물 확보 경쟁의 격화와 가격 상승이다. EU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지의 광물 프로젝트 선점에 나서면서, 동일한 공급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포스코홀딩스, LG에너지솔루션 등)에는 매입 비용 상승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 비용으로 인해 배터리와 방산 제품의 원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국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 입지 강화다. EU는 광물 채굴뿐만 아니라 '가공 및 정제' 기술이 절실하다. 중국을 제외하면 고순도 정제 기술과 양산 능력을 갖춘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따라서 한국의 배터리 소재 기업과 방산 업체들이 EU의 자금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에 파트너로 참여하거나, 현지 합작 법인을 설립할 기회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셋째, 공급망 블록화에 따른 밸류체인 재편이다. 현지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중국산 소재를 쓴 제품이 유럽 시장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의 풍력, 방산, 배터리 완제품 기업에는 반사이익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다만, 중국의 보복성 수출 통제(갈륨, 게르마늄 등)가 강화될 경우 원자재 수급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정교한 리스크 관리가 요구된다.

결국, 이번 EU의 조치는 한국 기업에 '원자재 확보 비용 증가'라는 숙제와 '유럽 시장 내 중국 대체재로서의 부상'이라는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