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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희토류 휴전은 ‘허상’…美 방산업체, 유럽 희토류 재고 ‘싹쓸이’ 구매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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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희토류 휴전은 ‘허상’…美 방산업체, 유럽 희토류 재고 ‘싹쓸이’ 구매 쇼크

“미국은 3일, 유럽은 4주”… 자금·속도전에서 완패한 EU, 원자재 고갈 ‘비상’
“돈 있어도 못 산다” 유럽 희토류 재고 바닥… 美 정부·기업 ‘합작’ 사재기
미국 방산업체들이 유럽 현지 희토류 재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유럽 재고가 바닥이 나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방산업체들이 유럽 현지 희토류 재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유럽 재고가 바닥이 나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미국과 중국이 희토류를 둘러싼 무역 분쟁에서 일시적 휴전에 합의했음에도, 미국 방산업체들이 유럽 현지 희토류 재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방산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유럽 내 희토류 재고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3~4일이면 계약을 끝내는 미국의 속도전에 비해, 유럽은 행정 절차와 자금 부족으로 3~4주가 걸려 물량 확보 경쟁에서 완패하고 있다.

블록체인·경제 전문 매체 크립토폴리탄(Cryptopolitan)2(현지시간) 미국이 자금력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앞세워 유럽 내 핵심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정제 기술 통제가 여전한 가운데, 유럽 방산업계의 원료 고갈이 가속화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불균형이 심화할 수 있다.

미국은 3, 유럽은 4… 속도와 현금에서 갈린 승부


현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조달 속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베를린에 본사를 둔 원자재 기업 노블 엘리먼츠(Noble Elements)의 팀 보르그슐테 최고재무책임자(CFO)유럽 파트너에게 테르븴 1(t)을 판매하는 데는 보통 3주에서 4주가 걸리지만, 미국 기업들은 3일에서 4일이면 계약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속도 차이는 미국 기업들의 과감한 자금 운용 능력에서 비롯된다. 프랑크푸르트 소재 트라디움(Tradium GmbH)의 얀 기제는 미국 기업들은 자금력과 영향력을 활용해 공급망 상류의 계약을 선점하고 있다그들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거래를 진행해 중국의 보복 위협으로부터 공급업체를 보호하는 전략을 쓴다고 설명했다.

반면 유럽 방산업체들은 여전히 구매 절차와 계획 수립 단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보르그슐테 CFO많은 유럽 고객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희토류의 종류나 정확한 양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이는 결국 급박한 거래와 물량 부족,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독일 방산업계의 한 소식통은 미국 경쟁사들이 이미 시장 물량 대부분을 가져갔으며, 남은 것은 비싸고 구하기 힘든 자재뿐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보증 서는 미국, 서류 작업만 하는 EU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사격도 기업들의 기민한 움직임을 뒷받침한다. 미국 국방부는 자국 내 유일한 희토류 채굴 기업인 ‘MP 머티리얼즈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10년간 최소 구매 가격을 보장해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EU)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EU는 지난해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과시키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원은 미미하다. 독일 국영개발은행(KfW)이 지난해 원자재 투자 지원을 위해 10억 유로(17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으나, 민간 부문은 여전히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의 아르민 파퍼거 최고경영자(CEO)현재 우리 재고에는 수십억 달러어치 물량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방산업체들은 재고를 쌓아둘 여력이 없어 공급난에 그대로 노출된 실정이다.

정제 기술없는 유럽, 캐나다 협력으로 돌파구 찾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한 자원 보유량이 아니라 정제 역량에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스 크리스토프 아츠포디엔 독일 방위산업협회장은 유럽 지하에도 희토류는 있지만, 정제 과정을 항상 중국에 맡겨왔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희토류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기술 부족 탓에 유럽 국가들은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프랑스 기업들은 은퇴한 기술자들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들이고 있으며, 독일은 1500만 톤 이상의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한 캐나다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토르스텐 베너 글로벌 공공정책연구소(GPPi) 소장은 유럽 대륙 전체가 과거 유로존 위기 때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whatever it takes)’의 자세로 위기 모드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긴박함을 인지하고 행동에 나선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뿐이라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