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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넘친 물량, ASE·앰코가 싹쓸이…'패키징 양강'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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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넘친 물량, ASE·앰코가 싹쓸이…'패키징 양강' 굳어진다

대만은 'ASE', 한·미는 '앰코'…공정별로 철저한 '일감 나눠먹기'
인텔도 콧대 꺾고 한국 찾았다…앰코 송도 공장에 'EMIB' 첫 외주
미·중 패권 경쟁이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OSAT) 지형도를 '반쪽'으로 갈라놓았다. 첨단 AI 칩 패키징 시장은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ASE)과 미국·한국(앰코) 동맹이 독식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기술 장벽에 가로막혀 레거시(구형) 공정 생태계에 고립되는 모양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미·중 패권 경쟁이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OSAT) 지형도를 '반쪽'으로 갈라놓았다. 첨단 AI 칩 패키징 시장은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ASE)과 미국·한국(앰코) 동맹이 독식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기술 장벽에 가로막혀 레거시(구형) 공정 생태계에 고립되는 모양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지정학적 재편(Geopolitical realignments)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OSAT) 산업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첨단 인공지능(AI) 칩 패키징 역량이 향후 5년 내에 대만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핵심 거점을 중심으로 급속히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 재편의 최대 수혜자로 대만의 ASE홀딩스와 SPIL(Siliconware Precision Industries)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 거점을 둔 앰코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를 지목하고 있다.

8일(현지 시각) 디지타임스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칩 제조사들의 고성능 AI 프로세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이들 OSAT 기업은 TSMC로부터 흘러나오는 막대한 패키징 주문을 양분해 수주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TSMC의 독자적 패키징 기술인 'CoWoS(Chip-on-Wafer-on-Substrate)'의 세부 공정 유형에 따라 물량이 나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TSMC의 CoWoS 플랫폼은 현재 AI 시대의 컴퓨팅 확장을 상징하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TSMC의 공격적인 첨단 패키징 확장은 경쟁자인 인텔의 패키징 기술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까지 되살리는 기폭제가 됐다. 수년간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던 EMIB 기술이 TSMC발(發) 수요 급증에 힘입어 다시금 활력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처럼 파운드리와 패키징 기술이 동시에 부상하는 현상을 '파운드리 2.0(Foundry 2.0)' 모델의 도래로 정의한다. 이 모델하에서 2026년 반도체 산업의 총생산량은 1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첨단 미세 공정 기술과 첨단 패키징에서 창출되는 파운드리 매출이 전체 반도체 공급망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후공정을 담당하는 OSAT 기업들의 성장세는 파운드리 기업보다는 다소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나, 첨단 패키징 시장의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은 이들에게 확실한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6년 OSAT 부문의 생산량은 전년 대비 11%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반도체 생태계 내 기여도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TSMC는 2026년까지 연간 웨이퍼 생산 능력을 110만~130만 장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으나, 엔비디아·AMD·브로드컴 등 빅테크 기업들의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TSMC가 소화하지 못하고 넘치는, 이른바 '낙수효과(Spillover)'에 의한 패키징 물량이 OSAT 기업들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고 있는 배경이다.

ASE vs 앰코, TSMC 낙수효과 '반반'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글로벌 OSAT 양대 산맥인 ASE홀딩스와 앰코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TSMC의 첨단 패키징 외주 물량을 확보하며 시장을 양분할 태세를 갖췄다.

대만의 ASE홀딩스는 TSMC로부터 'CoWoS-R' 공정의 외주 물량을 주로 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의 중심축은 대만 가오슝 캠퍼스와 자회사 SPIL이 보유한 탄케(Tanke), 얼린(Erlin), 더우류(Douliu) 공장이 될 전망이다. 이들 생산 거점은 엔비디아와 AMD를 포함한 주요 AI 반도체 고객사들의 주문을 지원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ASE가 독자 개발한 'FOCoS(Fan-Out Chip on Substrate)' 플랫폼의 약진이다. TSMC의 CoWoS-S, CoWoS-R, CoWoS-L 공정과 유사한 성능을 구현하도록 설계된 이 플랫폼은 이미 AMD와 브로드컴의 일부 제품에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ASE는 이번 분기부터 가오슝 캠퍼스에서 시범 생산에 들어갔으며, 2026년 하반기부터는 FOCoS 플랫폼이 실질적인 매출 기여를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앰코테크놀로지는 한국 인천 송도와 미국 애리조나를 양대 축으로 2.5D 첨단 패키징 역량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애리조나 공장은 2028년 초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앰코는 TSMC가 외주를 주는 'CoWoS-S' 물량 처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2026년 말부터 시작될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프로그램 관련 주문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 의미심장한 변화는 인텔의 움직임이다. 인텔은 자사의 독자 패키징 규격인 EMIB 물량을 사상 처음으로 외주화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첫 번째 파트너로 앰코의 송도 사업장을 낙점했다. 이는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내 생산 거점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된 사례로 풀이된다.

中, 첨단 막히자 '레거시 자립' 선회


미국과 대만이 첨단 패키징 시장을 주도하는 사이 중국 OSAT 업계는 독자적인 생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최첨단 미세 공정 노드와 패키징 기술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2026년 성장률 전망치 역시 대만이나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 당국의 강력한 '반도체 자립' 정책은 중국 OSAT 섹터의 글로벌 위상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 OSAT 산업의 성장은 크게 두 가지 역학관계에 기인한다. 첫째, SMIC를 비롯한 중국 파운드리 기업들이 성숙 공정(Mature-node)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자국 OSAT 파트너사들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둘째, 외국 칩 벤더들이 중국 내 패키징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압박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외부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수직 계열화된 공급망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첨단 AI 칩을 중심으로 한 대만·미국(한국 포함) 진영의 기술 동맹과, 성숙 공정을 기반으로 자립을 꾀하는 중국 진영으로 명확히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정학적 요인이 기술적 우위만큼이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시대, 기업들의 생존 전략 또한 복잡한 셈법 위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