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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은 안전한 곳에 맡긴다"…세계 부호들 자산 싱가포르로 집결, 5년 새 패밀리오피스 5배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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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은 안전한 곳에 맡긴다"…세계 부호들 자산 싱가포르로 집결, 5년 새 패밀리오피스 5배 폭증

글로벌 금융허브 순위 4위 굳히기…반도체·디지털 금융까지 아우르는 자산조율 거점 부상
홍콩 맹추격 속 싱가포르달러 강세 기조 유지, 지정학 리스크 회피 자본 집중 가속
지정학 리스크가 전 세계 자산가들의 피난처를 바꾸고 있다. 그 종착지로 주목받는 곳이 싱가포르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지정학 리스크가 전 세계 자산가들의 피난처를 바꾸고 있다. 그 종착지로 주목받는 곳이 싱가포르다. 이미지=제미나이3
지정학 리스크가 전 세계 자산가들의 피난처를 바꾸고 있다. 그 종착지로 주목받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등록된 패밀리오피스(초고자산가 전용 자산관리 법인)2020400개에서 지난해 말 약 2,000개로 5년 새 5배 늘었다. 헨리앤드파트너스가 최근 발표한 '가장 부유한 50대 도시 2025' 보고서에서도 싱가포르 내 100만 달러(14억 원) 이상 자산 보유자가 242400명으로 10년 전보다 6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뉴욕(45%)·런던(-12%)·홍콩(3%)을 크게 웃도는 증가율이다. 서울은 20259월 발표된 GFCI 38차에서 10위를 기록하며 3년 연속 10위권을 지켰다. 핀테크 부문은 202027위에서 8위까지 올라 역대 최고 순위를 찍었다.

대만 테크미디어 디지타임스는 지난 19(현지시각) 글로벌 투자자문사 아주라(Azura) 최고경영자(CEO) 빈센트 밍 박사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싱가포르가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Z/Yen)2025년 국제금융센터지수(GFCI·글로벌 파이낸셜 센터 인덱스)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며 '자산조율 허브'로 진화하는 과정을 심층 조명했다.

글로벌 TOP5 금융허브. 도표=글로벌이코노믹/출처=GFCI 38차 보고서(2025년 9월, 지옌·중국종합개발연구원 공동 발표)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TOP5 금융허브. 도표=글로벌이코노믹/출처=GFCI 38차 보고서(2025년 9월, 지옌·중국종합개발연구원 공동 발표)

단순 투자처가 아니다…'자산을 조율하는 나라'


CEO"싱가포르로 들어온 자본은 싱가포르 경제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운용되고 조율되는 자산"이라고 잘라 말했다. 수십 년의 정책 설계를 통해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고도로 구조화된 글로벌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이전 '아시아 4' 중 하나였던 대만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꾀하면서 싱가포르를 자산 관리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의 과실을 거두며 자산 규모를 급격히 불린 뒤에는 대중화권 자금까지 싱가포르로 몰렸다. 홍콩에서의 자금 이탈도 이 흐름을 가속했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제도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싱가포르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우세하다.

이에 MAS는 급증하는 패밀리오피스를 관리하는 데이터 기반 규제로 대응하고 있다. 13O·13U 세제 혜택 적용 기준에서 자산 최소 규모를 2000만 싱가포르달러(228억 원)~5000만 싱가포르달러(571억 원)로 끌어올리고, 현지 주식·채권이나 기후 관련 사업 의무 투자 비중도 높였다. 가족 구성원만으로 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 금융 전문인력 채용도 의무화했다. 금융권에서는 "싱가포르가 패밀리오피스를 이민·거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으면서도, 실질적 금융허브 기능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디지털 금융까지…'3중 허브' 전략


싱가포르의 위상 강화에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또 다른 변수도 작용하고 있다. CEO"싱가포르가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생산의 약 20%를 담당한다"고 밝혔다. 지정학 리스크가 커지면서 대만계 반도체 부품·소재 업체들이 행정과 자본 관리 기능을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20개국 이상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관세 절감과 정치적 불확실성 차단막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금융 영역에서는 무분별한 개방 대신 통제된 샌드박스(규제 시험장) 방식을 고수한다. CEO에 따르면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안에서 디지털 자산 거래는 전문·기관 투자자에게만 허용된다. 외부 가상자산을 자유롭게 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법정화폐로 행내에서 구입한 뒤 처분하면 원래 계좌로 대금이 돌아오는 폐쇄형 구조다. 자금세탁방지(AML) 감시 역시 엄격하다. 금융 업계에서는 이 구조가 불법 자금 유입을 막으면서도 핀테크(금융기술) 혁신을 허용하는 싱가포르식 균형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화 운용 방식도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다. 대부분의 나라가 금리를 주된 통화 정책 도구로 쓰는 것과 달리, 싱가포르는 주요 교역국 통화 바스켓 대비 싱가포르달러 환율 변동 폭을 MAS가 직접 관리한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서 통화 강세가 곧 소비자 물가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CEO"싱가포르달러의 장기 강세 기조가 투자자들에게 안전자산으로서의 신뢰를 심어주는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vs 홍콩, '안정성의 싱가포르, 세제의 홍콩' 경쟁 본격화


싱가포르의 부상을 자극받은 홍콩도 빠르게 반격에 나서고 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홍콩에서 운영 중인 단일 패밀리오피스(SFO)2,700개 이상이다. 홍콩 재무국은 지난해 102028년까지 220개 이상의 신규 패밀리오피스 설립 또는 확장 지원을 목표로 세제·투자이민·인재육성 3축 전략을 발표했다. 홍콩의 개인소득세는 약 15%, 법인세는 16.5%로 싱가포르보다 낮고, 상속세는 제로(0).

반면 글로벌 자산관리 업계에서는 두 도시가 경쟁보다는 보완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안정성과 신뢰의 싱가포르' '세제 효율성과 중국 연결성의 홍콩'이라는 구도로 시장이 분화하는 양상"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글로벌 패밀리오피스 시장의 팽창세는 두 도시 모두에게 유리한 여건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인용한 딜로이트 추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패밀리오피스는 약 8030개로 운용 자산(AUM) 규모가 55000억 달러(7960조 원)에 이르며, 2030년에는 95000억 달러(1376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아주라(Azura)2019년 알리 자말(Ali Jamal)이 설립한 독립형 글로벌 투자자문사다. 모나코·제네바·런던·두바이·싱가포르 등 9개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약 60억 달러(86900억 원)의 자산을 운용한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ADQ 산하 루네이트(Lunate·운용자산 1100억 달러, 159조 원)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경영권은 창업팀이 그대로 유지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