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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원유’가 된 시대, 대한민국은 ‘산유국’인가 ‘대리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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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원유’가 된 시대, 대한민국은 ‘산유국’인가 ‘대리점’인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벼랑 끝에서 움켜쥔 인공지능 주권의 ‘5대 핵심 기술’
반도체 수율 80% 못 잡으면 한국은 미국·대만 지능 떼다 파는 ‘소매상’ 된다
애플이 구글 제미나이 기반의 시리를 올 후반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은 애플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오픈AI와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애플이 구글 제미나이 기반의 시리를 올 후반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은 애플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오픈AI와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사진=로이터
인류는 지금 전기가 발명된 이래 가장 거대한 인공지능(AI) 인플레이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던지는 사소한 질문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 데이터센터에서는 수천 개의 반도체가 비명을 지르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인공지능의 지능이 높아질수록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전기 요금과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은 오직 극소수 부유층만이 누리는 특권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다섯 가지 핵심 기술은 바로 이 인공지능의 생산 비용을 낮춰 지능을 공기처럼 자유롭게 쓰게 만들려는 거대한 도전이다.

메모리와 연산의 거리를 0으로 좁히는 마법


그동안 컴퓨터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곳과 계산하는 곳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비유하자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에서 읽고 다시 갖다 놓는 과정이 반복된 셈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체와 에너지 소모가 전체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예 도서관 책상 위에 책을 펼쳐 놓고 그 자리에서 읽는 방식인 지능형 메모리(PIM) 기술에 사활을 걸었다. 메모리 반도체 자체에 연산 기능을 심어 데이터가 이동할 필요를 없애는 것이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인공지능의 답변 속도는 수십 배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칩을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의 미학


반도체 미세 공정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제는 옆으로 넓히는 대신 위로 높이 쌓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라 불리는 이 기술은 칩 사이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데이터를 수직으로 실어 나른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이동할 수 있지만 그만큼 열이 많이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이 뜨거운 열을 식히면서도 칩을 더 얇고 촘촘하게 쌓기 위해 화학 공학과 소재 공학의 정수를 쏟아붓고 있다. 칩이 더 높이 쌓일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추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로직과 메모리의 경계를 허무는 이종 결합의 혁명


과거에는 반도체 종류마다 만드는 곳과 방식이 엄격히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제 서로 다른 성격의 반도체를 한 몸처럼 붙여야 한다. 삼성이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동시에 보유한 강점을 앞세워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대만의 생산 거인들과 손을 잡으며 칩과 칩 사이의 간격을 머리카락 굵기보다 좁게 만드는 패키징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결합해 세상에 없던 초거대 인공지능을 탄생시키려는 이 전략은 지능의 가성비를 결정짓는 최종 승부처가 된다.

냉혹한 현실과 수율 전쟁의 패배 가능성


현실은 장밋빛 전망보다 훨씬 차갑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2나노 이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은 원자 단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난제로 인해 수율 확보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만이 국가 전체를 TSMC화하여 전력과 용수 그리고 정치적 자산까지 총동원하는 총력전 체제인 반면 한국은 기업의 고군분투를 관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언론조차 현장의 기술적 장벽과 인프라 고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같은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수율 80퍼센트 전쟁에서의 패배는 막연한 우려가 아닌 확정된 미래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 자강론과 기술 독립을 향한 국가적 총력전


기술 식민지화를 막기 위해 삼성전자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공정 오류를 잡아내는 극비의 지능형 팹(Intelligent Fab) 프로젝트를 가동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수율 복구를 시도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내 연산 기술인 핌의 상용화를 통해 설계 주권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것은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전력과 용수라는 반도체의 생명줄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직접 책임지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역시 반도체 요충지를 나의 경제적 생존권을 지킬 최후의 요새로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이 거대한 전환점에 국력을 쏟아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인공지능을 구걸하며 연명하는 초라한 반도체 변방으로 퇴보하게 될 것이다.

지능의 경제적 식민지화를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

결국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엔비디아가 장악한 설계의 영역을 파고들거나 TSMC가 독점한 미세 공정의 전력 효율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 사투에서 패배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가졌으면서도 정작 그 위에서 돌아가는 인공지능은 외세에 의존하는 껍데기만 남은 디지털 강국이 될 뿐이다. 인공지능 주권은 영토 주권만큼이나 엄중하다. 우리가 지금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확보 전략에 국가적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의 국민이 지불해야 할 비참한 청구서가 이미 작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