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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인들 ‘탈미국’ 가속…“올해 순유출 15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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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인들 ‘탈미국’ 가속…“올해 순유출 15만명”

지난 2022년 6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이 항공편 탑승을 앞두고 체크인 구역에 모여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2년 6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이 항공편 탑승을 앞두고 체크인 구역에 모여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하는 미국인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역사상 이민 순유출이 공식 통계상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나타났고 최근에는 미국 시민권자들의 해외 이주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고 있다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순이민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미국으로 들어온 인구보다 떠난 인구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2025년 미국의 순유출 인구를 약 15만명으로 추산했고 올해는 이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기준 미국 유입 인구는 약 260만~270만명으로 2023년 약 600만명에 육박했던 정점 대비 크게 줄었다.

미국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추방은 67만5000건, 자진 출국은 220만건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는 이를 불법 이민 단속 강화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단속 흐름과 별개로 미국 시민권자들 사이에서 해외 이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WSJ는 전했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400만~9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단일 통계는 없지만 각국의 체류 허가, 주택 구입, 대학 등록, 시민권 신청 자료 등을 종합하면 증가세가 뚜렷하다.

멕시코에는 2022년 기준 약 160만명의 미국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미국 국무부는 추정했다. 캐나다에는 25만명 이상, 영국에는 32만5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유럽 전체로는 15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해외거주미국인협회는 집계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대부분에서 미국인 체류자는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포르투갈의 미국인 거주자는 팬데믹 이후 500% 이상 증가했고, 2024년 한 해에만 36% 늘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10년간 거의 두 배로 증가했고, 체코에서는 두 배를 넘었다.

지난해 독일로 이주한 미국인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인구보다 많았다. 아일랜드는 2025년 미국 출신 이주자를 1만명 받아들였는데 이는 2024년의 약 두 배다.

미국인들의 영국 시민권 신청은 2004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6600명이 영국 시민권을 신청했다. 아일랜드 여권 발급 건수도 2024년 3만1825건, 지난해에는 약 4만건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단순한 팬데믹 시기의 ‘원격 근무 실험’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 정부에는 시민권 포기 신청이 수개월째 적체돼 있으며, 2024년 신청 건수는 전년 대비 48% 급증했다. 2025년에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이주를 돕는 업체들도 급성장 중이다. 알바니아 이주 설명회에는 한 번에 400명 가까운 미국인이 신청했다. 일부 기업은 올해 수십 차례의 단체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 이유는 복합적이다. 높은 생활비와 주거비, 의료비 부담, 총기 범죄 우려, 정치적 양극화 등이 거론된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을 영구적으로 떠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1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0%로 상승했다.

특히 젊은 층과 자녀를 둔 가구의 해외 이주가 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 미국인은 “미국이 임금은 높지만 유럽이 삶의 질은 더 높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유럽 각국은 미국 고소득 인력 유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은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5억 유로(약 8555억 원)를 배정했다. 일부 국가는 미국 시민에게 세제 혜택이나 특별 비자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유입이 급증하면서 현지에서는 주택 가격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반발도 나오고 있다. 포르투갈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은 최근 5년간 두 배로 뛰었다.

미국이 오랜 기간 ‘이민의 나라’로 불려왔지만 최근에는 자국민이 해외로 재정착하는 ‘역이주’ 흐름이 구조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경제의 높은 임금과 자산 가치가 해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관 변화가 이를 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