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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에너지 전쟁] 유가 114달러·호르무즈 봉쇄… '제2 오일쇼크' 한국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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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에너지 전쟁] 유가 114달러·호르무즈 봉쇄… '제2 오일쇼크' 한국 덮친다

이란, 카타르 LNG·사우디 정유시설 정조준… 배럴당 150달러 초읽기
원화 17년 만에 최저, 전략비축유 방출에도 "환율 붕괴 막을 수 없다"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로 꺼내든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 오일쇼크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시나리오가 2026년 3월 중동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배럴당 114달러를 돌파한 국제 유가는 이제 150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로 꺼내든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 오일쇼크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시나리오가 2026년 3월 중동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배럴당 114달러를 돌파한 국제 유가는 이제 150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로 꺼내든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 오일쇼크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시나리오가 20263월 중동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배럴당 114달러(약 16만 9600원)를 돌파한 국제 유가는 이제 150달러(223400)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들은 유가 급등과 환율 폭락이 동시에 덮치는 '이중 충격'의 한가운데 서 있다.

세계 경제 '비대칭적 타격'… 주요국 긴급 대응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경제 '비대칭적 타격'… 주요국 긴급 대응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이란의 보복, 중동 에너지 심장부를 강타하다


이란·미국·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3주째로 접어든 19(현지시간), 이란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두 곳을 잇달아 공격했다. 첫 번째 타깃은 카타르 북동부에 자리한 라스라판 산업단지였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수출 허브인 이곳을 운영하는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시설이 심각하게 파손돼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두 번째 표적은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연안에 위치한 얀부 정유시설(SAMREF)이었다.

에너지 시황 분석기관 케플러(Kpler)의 아메나 바크르 중동 수석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급 차질 규모는 시장이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가격이 공급 붕괴의 현실을 뒤쫓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란의 공격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18일 이란의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스가 공습을 받은 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감행된 정밀 보복이었다. 공격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리가 잃으면 너희도 잃는다(If we bleed, you bleed).'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과 에너지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전쟁의 비용을 국제 사회 전체에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호르무즈 봉쇄… 세계 원유 5분의 1이 멈췄다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 및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19(현지시각) 보도를 종합하면,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19일 기준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6% 급등하며 배럴당 114달러(169700)를 돌파했다.

네덜란드계 금융그룹 ING의 워렌 패터슨 원자재 전략가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직접 타격은 미국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유가 억제 수단을 사실상 무력화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업계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달 말까지 전쟁이 지속될 경우 배럴당 150달러 돌파가 기정사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공급망 마비가 장기화하면 200달러(297800)이라는 극단적 수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가별 충격 비교, 미국의 '방파제'와 한국의 '직격탄'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에너지 충격의 본질을 '비대칭 전쟁(Asymmetric Economic War)'으로 규정했다. 세계 최대 원유·가스 생산국인 미국은 자국 내 에너지 자급 체계 덕분에 충격을 크게 완충할 수 있지만,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아시아·유럽 국가들은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제이콥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사실상 '경제적 방패'가 됐지만, 그 결정에 따른 경제적 고통은 다른 나라들이 짊어지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한국 경제 '삼중고'… 환율·유가·물가의 연쇄 붕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19일 원화 가치는 17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정부는 가스비 상한제를 긴급 도입하고 전략비축유 2246만 배럴의 단계적 방출을 결정했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하고 원유 수급 차질이 구조화하면 환율은 정책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자재 가격 충격은 이미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 신에츠화학(Shin-Etsu Chemical)은 주요 제품 가격을 20% 일괄 인상했으며, 동북아 공급망을 공유하는 국내 화학·전자 업계도 원가 부담 급증에 직면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경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유지한 채 전쟁이 여름까지 지속될 경우, 전 세계에서 4500만 명이 추가로 기아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 충격이 에너지를 넘어 식량 안보 위기로 전이되는 최악의 경로가 현실화하고 있다.

1973년과 2026, 다른 듯 같은 오일쇼크의 경고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당시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는 4개월 만에 12달러로 치솟으며 한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충격의 속도와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당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LNG와 정유시설이 동시에 타격받는 '복합 에너지 쇼크'라는 사실이다. 과거의 오일쇼크가 원유 하나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원유·가스·정제유가 동시에 흔들리는 '에너지 삼중 위기'.

한국 입장에서 더욱 뼈아픈 것은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카타르는 한국 LNG 수입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공급국이다. 카타르 라스라판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가스비 상한제나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에너지 대란을 막기 어렵다.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고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수십 년 된 숙제가 이번 위기를 통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중동에서 불붙은 에너지 전쟁의 불씨가 한국 경제의 어디까지 번질지, 그 임계점은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