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5개사 5년간 자본지출 4조 달러… 연 매출 2.7조 달러 필요
삼성·SK하이닉스 HBM 수혜 vs 빅테크 투자 둔화 시 직격탄 우려
삼성·SK하이닉스 HBM 수혜 vs 빅테크 투자 둔화 시 직격탄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이 한 가지 사건은 지금 글로벌 경제가 처한 구조적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빅테크가 AI 데이터센터에 9조 달러(약 1경 3580조 원)를 쏟아붓겠다는 '역대 최대 평시 투자'가 실제로 수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과거 닷컴 버블이나 통신망 버블처럼 대규모 손실로 끝날지, 그 판단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심층 분석 기사를 통해 이 질문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FT의 결론은 이렇다. 빅테크는 투자금을 전부 회수하지 못할 수 있지만, 사업이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 낙관론의 전제는 단 하나, AI 수요가 계획대로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가 빗나가는 순간, 9조 달러짜리 확신은 버블의 증거로 돌변한다.
이미지 확대보기수치로 본 실태, 9조 달러는 어떻게 나왔나
메타·알파벳(구글 모회사)·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오라클 등 빅테크 5개사가 향후 5년간 자본지출에 쏟아부을 금액은 총 4조 달러(약 6030조 원)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 비지블 알파(Visible Alpha)가 집계한 월가 애널리스트 추정치다. 올해 이들 5개사의 자본지출 합계는 6020억 달러(약 908조 원)에 이를 전망이며, 이는 지난해보다 36% 늘어난 수치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그룹(Dell'Oro Group)은 이달 17일 보고서에서 "아마존·구글·메타·MS 등 미국 4대 클라우드 사업자의 데이터센터 자본지출이 2025년에만 76% 급증했고, 오라클은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 구축에 자본지출을 세 배 넘게 늘렸다"고 밝혔다. 델오로그룹은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자본지출이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약 150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AI 관련 컴퓨팅 시설에 5조2000억 달러(약 7840조 원)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FT는 이 수치조차 과소 추정이라고 지적했다. 1년 전만 해도 데이터센터 1기가와트(GW) 구축에 칩·하드웨어 250억 달러(약 37조 원), 부지·전력 150억 달러(약 22조 원)를 예산으로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각각 350억 달러(약 52조 원), 200억 달러(약 30조 원)로 올랐다. 이 기준을 2030년까지 125GW에 적용하면 총비용은 6조9000억 달러(약 1경 410조 원)가 된다. 여기에 빅테크 자본지출 4조 달러의 절반을 더하면 약 9조 달러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 규모는 2016~2021년 중국 주택 부동산 투자 총액과 맞먹는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닷컴 버블 직전 5년간 미국이 컴퓨팅 장비에 쏟아부은 금액의 두 배도 넘는다.
이미지 확대보기냉정한 산수, 연간 2조7000억 달러 매출을 벌어야 본전
9조 달러를 투자했을 때 최소 수익을 내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FT는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따져봤다.
연 10% 수익률을 목표로 잡으면, 에너지·감가상각 등 비용을 제하고도 연간 9000억 달러(약 1350조 원)의 이익이 남아야 한다. 이익률을 3분의 1로 가정하면 뒷받침에 필요한 연 매출은 2조7000억 달러(약 4070조 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미국이 소프트웨어 부문 전체에 쓴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 교수는 "경기 변동과 연동된 현금흐름을 지닌 자산이라면 15% 이상의 수익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익률 기준을 15%로 높이면 필요한 연 매출은 4조 달러(약 6030조 원)를 넘는다.
수익원은 기업마다 구조가 다르다. MS는 AI 모델 판매와 클라우드 임대를 병행하고, 아마존과 구글은 클라우드 임대 수입에 기댄다. 자체 클라우드 사업이 없는 메타는 데이터센터를 오직 내부 용도로 쓴다. 웰스파고(Wells Fargo) 분석가들은 "인터넷 광고 업계 전반의 연 15% 성장 가운데 메타가 25% 성장한다면, 그 차이인 약 200억 달러가 AI 효과"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메타 주가는 지난해 10월 자본지출 전망을 올리자 11% 급락했다가, 올해 1월 재차 올렸을 때는 10% 뛰었다. MS 주가는 최근 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을 웃돌았는데도 10% 떨어졌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MS·구글·아마존의 클라우드 수주잔고는 지난해 두 배로 늘었다. 당장의 현금흐름은 줄지만, 미래 매출 기반은 커지는 양면적인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욜로 베팅은 파산 부른다"… 경고와 리스크 목록
낙관론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경고음이 나온다.
앤트로픽(Anthropic)의 공동 창업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실제 수치가 기대를 빗나가면, 자본지출을 향한 욜로(YOLO) 투자 열풍 탓에 일부 대형 지출 기업이 파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욜로 투자란 기업들이 미래의 불확실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인공지능(AI) 인프라 등 장기 자산에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오픈AI(OpenAI)는 대표적인 변수다. 챗GPT(ChatGPT)를 만든 샘 올트먼(Sam Altman) 최고경영자(CEO)는 한때 최대 250GW, 잠재적으로 10조 달러(약 1경5090조 원)를 웃도는 데이터센터 구축을 구상했다. 이후 8년간 임대에 1조4000억 달러(약 2110조 원)를 쓰겠다는 계획을 4년간 6000억 달러(약 905조 원)로 절반 이하로 줄였다. 최근 출시 몇 달 만에 AI 동영상 생성 서비스 '소라(Sora)'를 중단한 것도 재정 긴축의 신호로 읽힌다. 메타가 임원 상여금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같은 흐름이다.
리스크 목록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MIT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 내 AI 프로젝트의 약 95%가 실패한다는 수치가 나왔다. 1990년대 말 통신망 버블 당시 '인터넷 트래픽이 90일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전제가 실제로는 연 1회 두 배 증가에 불과했다는 교훈도 되살아난다.
크레딧사이츠(CreditSights)는 "빅5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이 자유현금흐름을 넘어서면서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해졌다"며 "2025년 채권 발행으로만 1080억 달러(약 160조 원)를 조달했다"고 분석했다. 구글은 채권시장에서 320억 달러(약 48조 원)를, 메타는 지난해 11월 300억 달러(약 45조 원)를 빌렸다. 재무 구조가 가벼웠던 빅테크가 대규모 부채를 끌어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기술 변수도 등장했다. 구글 리서치·딥마인드·뉴욕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인수 교수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AI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는 AI 추론 과정에서 쓰이는 메모리를 정확도 손실 없이 최대 6배 줄인다. 이 기술이 업계 전반에 확산되면, 같은 데이터센터 인프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어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추론 단가 하락은 AI 에이전트 시장 성장을 가속해 결국 더 많은 컴퓨팅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이슈를 AI 버블론을 재점화하기보다는 연초 랠리에 따른 차익실현 명분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고 진단한다.
"이번엔 다르다"는 근거, 그리고 한국 반도체의 기회와 함정
그럼에도 이번 투자 열풍이 과거 버블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빅테크는 차입금으로만 설비를 지은 1990년대 말 통신 기업들과 달리, 광고와 클라우드 수입이라는 실물 현금흐름에서 재원을 충당한다. 메타의 지난해 광고 매출은 약 2000억 달러(약 300조 원)에 이른다. 오픈AI와 달리 메타·MS·구글·아마존에는 투자가 빗나가도 버틸 사업 기반이 있다는 얘기다.
KKR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내 데이터센터 가용 공간은 JLL리서치 데이터 기준 적어도 2027년까지 부족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2025~2027년 하이퍼스케일러 자본지출 합계가 1조 1500억 달러(약 17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애널리스트들은 2년 연속 지출 규모를 과소 예측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광풍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세계 HBM 시장 점유율 1위 SK하이닉스는 올해와 내년 생산 물량 전량이 이미 선계약으로 소진된 상태라고 밝혔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62%로 삼성전자(17%)·마이크론(21%)을 크게 앞선다.
그러나 기회와 함정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구글·MS 등 하이퍼스케일러와 체결한 다년 공급 계약은 수입을 안정시키는 반면 특정 고객사 의존도도 높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빅테크의 투자 속도가 조금이라도 꺾이면 한국 메모리 기업들이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며 "HBM의 가격 결정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FT도 짚었듯이, 엣지 AI(개인 기기에서 직접 작동하는 AI) 전환이 가속화한다면 데이터센터 수요 자체가 예상보다 빨리 정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FT는 결론적으로 "빅테크가 투자금을 전부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업이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과잉 공급이 시작되거나 AI 수요가 기대보다 더디게 늘거나, 터보퀀트처럼 예상 밖의 기술 변수가 수요 구조를 바꿀 경우, 지금의 낙관론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메타 CEO는 자신이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투자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역사는 그 고백이 선견지명이었는지, 아니면 버블의 서막이었는지, 시간이 판정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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