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470조 돌파…'칩 굽는 공장'에서 '시스템 통합 플랫폼'으로 대전환
TSMC CoWoS 독점 균열·삼성 2나노 반등 조짐·중국 SMIC 두 자릿수 추격
TSMC CoWoS 독점 균열·삼성 2나노 반등 조짐·중국 SMIC 두 자릿수 추격
이미지 확대보기반도체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한 '파운드리 시장 공급 추적 보고서(Foundry Market Supply Tracker)'는 이 같은 구조적 변화를 수치로 증명해 보여줬다. 디지타임스(DIGITIMES)가 같은 날 보도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파운드리 2.0 시장 매출은 전년보다 16% 증가한 3200억 달러(약 483조 원)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이미지 확대보기'파운드리 2.0'이란 무엇인가, 칩 제조를 넘어 시스템 통합으로
과거의 파운드리, 이른바 '파운드리 1.0'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는 전공정(Front-End) 제조에만 집중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정의하는 '파운드리 2.0'은 차원이 다르다. 순수 파운드리 업체, 비(非)메모리 종합반도체기업(IDM), 후공정 전문업체(OSAT), 포토마스크 공급사까지 반도체 가치사슬 전체를 하나의 통합 생태계로 묶는 개념이다. 요컨대 파운드리 2.0은 '칩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칩 시스템을 설계부터 완성까지 책임지는 통합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뜻한다.
이 같은 변화를 촉발한 근본 원인은 물리적 한계다. 반도체 소자를 2나노미터(nm) 이하로 미세화할수록 전력 누설, 수율 저하, 제조 원가 급증이라는 세 가지 벽이 동시에 높아진다. 단순히 '더 작게' 만드는 방식으로 성능을 높이던 시대가 실질적인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에 업계는 칩렛(Chiplet) 아키텍처와 2.5D·3D 적층 기술로 눈을 돌렸다. 여러 개의 소형 칩(칩렛)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고밀도로 통합하고 실리콘 인터포저(Interposer)로 연결하면, 단일 칩 설계보다 수율이 높고 성능 개선 여지도 크다. AI 반도체가 이 방식을 특히 필요로 하는 것은, 연산 성능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이의 데이터 이동 속도, 즉 인터커넥트 대역폭이 실제 AI 추론 성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병목을 해소하는 열쇠가 바로 CoWoS(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 같은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이미지 확대보기TSMC, 패키징으로 왕좌 굳힌다, CoWoS 2026년 설비 80% 증설 전망
대만 TSMC는 이 시장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연간 매출 성장률은 36%에 달했다. 다만 4분기 들어 성장 속도가 25%로 다소 둔화됐는데, 이는 상반기에 워낙 높은 기저를 쌓은 데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해석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제이크 라이 선임 분석가는 "TSMC를 바라보는 핵심 질문이 웨이퍼 생산능력에서 시스템 수준의 통합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전공정 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병목 현상이 후공정으로 전이됐고, 이에 따라 CoWoS 같은 첨단 패키징 기술이 TSMC의 실적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TSMC는 현재 CoWoS 월 생산능력을 2024년 말 약 3만 5000장에서 2026년 말 13만 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규모 증설을 진행 중이다. 이는 3년 남짓한 기간에 거의 4배 가까이 생산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삼성전자, '메모리+파운드리' 통합 카드로 반격 준비
삼성전자는 2025년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 든 뒤, 2026년부터 본격 반등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톰 강 연구소장은 "삼성의 4나노 공정 수요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가격 협상력을 확보했다"며 "2나노 공정 양산이 본격화하면 AI 및 모바일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설계를 유치해 매출과 수익성이 함께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의 2나노 생산능력은 2028년까지 예약이 채워졌다는 업계 보도가 이어지면서, 엔비디아(NVIDIA)와 테슬라(Tesla) 등이 공급 다각화 차원에서 삼성 파운드리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이 보유한 차별화 카드도 주목할 만하다. HBM 메모리와 첨단 파운드리를 동시에 보유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삼성이 유일하다. 패키징 전쟁에서 '연산 칩과 메모리 칩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성능을 결정한다면, 두 부문을 내재화한 삼성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구조적 강점을 갖는다. 물론 CoWoS를 중심으로 한 첨단 패키징 생태계에서 TSMC 대비 상대적 열세를 조속히 좁혀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SMIC·넥스칩, 내수 보조금 타고 두 자릿수 성장
비(非)TSMC 진영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가장 눈에 띈다. SMIC는 2025년 매출이 전년보다 16% 늘었고, 넥스칩(Nexchip)은 24%의 급성장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화 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6년에도 이들의 두 자릿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중국 파운드리의 한계도 명확하다. 첨단 노광 장비(EUV) 수출 규제로 인해 최선단 공정 진입이 막혀 있고, 첨단 패키징에 필수적인 설계 자동화(EDA) 툴 접근도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 업체들의 전략이 '공정 추격'보다 '성숙 공정 내수 점유 강화'와 '패키징 우회 전략'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삼성과 UMC, 글로벌파운드리를 포함한 비TSMC 순수 파운드리 업체 전체는 2025년 평균 8% 성장에 그쳐 TSMC(36%)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비메모리 IDM 부문은 재고 조정 마무리 단계에서 2%에 그쳤으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13%, 인피니언이 5% 반등하며 업황 바닥 통과를 알렸다.
한국, '메모리 강국'에서 '패키징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나
이번 보고서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던지는 의미는 묵직하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워 HBM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HBM 자체가 첨단 패키징의 핵심 부품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이미 '패키징 전쟁'의 한 축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패키징의 또 다른 축인 CoWoS 수준의 2.5D·3D 통합 역량이다. 현재 이 영역은 TSMC가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삼성의 격차 축소 속도가 향후 한국 파운드리 산업의 국제 위상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정부는 반도체 특별법과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통해 설비 투자를 지원하고 있으나, CoWoS·SoIC(System on Integrated Chip) 등 고난도 패키징 공정에 특화된 연구개발(R&D)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 체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첨단 패키징 분야의 글로벌 인력 확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학·연구기관과 기업을 잇는 패키징 전문 인력 트랙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 전쟁의 향방을 가늠하려면 투자자는 세 가지 지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첫째, TSMC CoWoS 월 생산 웨이퍼 수다. 2026년 말 13만 장 목표 달성 여부가 AI 칩 공급 병목 해소의 바로미터다.
둘째, HBM 단가와 가동률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HBM3e·HBM4 단가가 꺾이기 전까지는 대형 메모리·파운드리 중심 포트폴리오가 유효하고, 단가 하락이 시작되는 시점이 OSAT 등 후공정 장비·소재 종목으로 비중을 이동할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셋째, 삼성 2나노 수율 개선 속도다. 2나노 공정에서 안정적인 수율이 확보되는 시점이 삼성 파운드리가 TSMC의 대안으로 본격 부상하는 변곡점이다. 이 세 지표가 동시에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실질적 반격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출발선이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 문법이 바뀌었다. '더 작게 만드는 경쟁'은 '더 잘 연결하는 경쟁'으로 전환됐고, 이 흐름은 2026년을 기점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조립과 검사를 포함한 통합 솔루션 없이는 AI 가속기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전문가는 "AI 플랫폼의 요구 수준이 높아질수록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이어지는 통합 솔루션의 무게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기업들은 생산 원가 절감이라는 단기 목표를 넘어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과 총소유비용(TCO) 절감에 사업 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2026년 파운드리 전쟁의 최종 승자는 공정 미세화의 한계를 패키징 혁신으로 돌파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