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공정 칩 수직 적층으로 성능 한계 돌파, 장비 봉쇄 무력화하는 중국식 우회로
칩 미세화 대신 시스템 최적화 주력하는 중국, 범용 반도체 시장 수익 구조 파괴 우려
칩 미세화 대신 시스템 최적화 주력하는 중국, 범용 반도체 시장 수익 구조 파괴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의 반도체 봉쇄망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7나노미터급 성능을 중국이 레거시 공정 칩의 수직 적층이라는 정교한 기술적 우회로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 회피를 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해온 범용 반도체 시장의 수익 구조를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정학적 공세로 평가받는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과 실리콘밸리 현지 동향에 밝은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2026년까지 자국 내 인공지능 칩 생산 역량을 대폭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공급망 자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의 로드맵이 단순한 선언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내놓는 하드웨어 결과물들은 한국 반도체의 전략적 요충지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규제의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시스템적 혁명
중국은 미국의 첨단 공정 장비 반입 제재에 맞서 28나노와 14나노 등 구공정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시스템적으로 7나노급 효율을 내는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최신 미세 공정 장비를 도입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존 장비로 생산한 칩을 다층으로 연결해 성능을 극대화하겠다는 중국식 물량 및 설계 전술이 실체화된 결과다. 이는 화웨이와 중신인터내셔널(SMIC)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반도체 자립 생태계가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성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조 공정 한계 극복하는 패키징 기술의 부상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적층 기술을 적용한 서버용 가속기의 생산 효율을 높이며 실전 배치 가능한 수준의 물량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일본 등 주요국들이 차세대 미세 공정 선점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사이, 중국은 이미 확보된 레거시 공정을 활용해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고성능 칩을 시장에 공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첨단 기술 확보 경쟁과 물량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소프트웨어 최적화 통한 하드웨어 제약 극복
최근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들이 자국산 적층형 칩에서 최신 대형언어모델을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기술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과거의 자립 시나리오가 이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을 통해 특정 해외 기업의 생태계를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음을 시사한다. 기술 봉쇄 상황에서도 설계 최적화를 통해 고성능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장비 신화 무너뜨리는 후공정의 힘
그동안 반도체 업계는 네덜란드 ASML의 EUV 장비 없이는 첨단 공정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노광 장비의 공백을 후공정(OSAT) 기술로 메우는 전략을 택했다. 개별 칩의 미세화에 집중하는 대신, 칩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연결 통로를 고도화하는 패키징 기술에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적 접근은 첨단 장비의 부재 속에서도 설계 최적화를 통해 실질적인 성능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대안적 경로를 보여주었다.
범용 시장의 가격 경쟁 심화와 수익성 타격
중국이 구공정 칩을 활용해 구현한 저가형 고성능 칩들이 글로벌 중저가 서버 및 가전 시장에서 기존 점유율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시장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생산 역량 확대가 실제 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경우, 기술 격차를 통해 수익을 보전해온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범용 제품군 실적에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기술 샌드위치 위기에 직면한 한국 반도체의 과제
글로벌 선두 그룹의 추격과 중국의 추격이 동시에 벌어지는 가운데, 한국은 유례없는 기술 샌드위치 상황에 직면했다. 단순히 나노 단위의 미세화 경쟁에만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의 시스템적 접근에 대응할 수 있는 독보적인 차세대 패키징 기술력 확보와 더불어, 레거시 시장의 점유율을 지켜낼 수 있는 효율적인 제조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중국의 기술적 우회 시도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생존 전략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edang@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