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인물 열전] 블랙록 래리 핑크 "월가의 진짜 황제"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인물 열전] 블랙록 래리 핑크 "월가의 진짜 황제"

래리 핑크 블랙록 CEO/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래리 핑크 블랙록 CEO/사진=로이터

전 세계 자본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블랙록(BlackRock)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Laurence Douglas Fink)일 것이다. 운용 자산(AUM) 규모만 14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를 이끌며 ‘월가의 진짜 황제’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는 현대 금융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1952년 11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평범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핑크는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그는 화려한 금융 가문의 배경이나 막대한 초기 자본과는 거리가 멀었다. 캘리포니아 UCLA에서 정치학 학사와 부동산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뉴욕의 투자은행 퍼스트 보스턴(First Boston)에 입사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대학원에서 전공한 부동산 지식을 십분 발휘하여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ies)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새로운 파생상품 시장을 개척했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공격적인 트레이딩은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약관 31세의 나이에 투자은행 최연소 임원(전무)이자 채권 부서 공동 책임자로 발탁되며 월스트리트의 떠오르는 별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월가의 정상에서 만끽하던 승차감은 곧 치명적인 추락을 잉태했다. 1986년 승리를 확신했던 핑크의 부서는 금리 방향성에 대한 뼈아픈 예측 실패로 인해 단숨에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이 거대한 실패는 그의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을 냈다. 결국 1988년 자신이 청춘을 바쳤던 퍼스트 보스턴에서 쫓겨나듯 퇴사해야만 했다.

이 뼈아픈 좌절은 래리 핑크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철저한 리스크(위험) 관리'와 '집단지성'이 금융업의 흔들리지 않는 닻이 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결코 투자해서는 안 된다." 는 깨달음은 훗날 그가 세우게 될 금융 제국, 블랙록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자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래리 핑크는 1988년, 사모펀드 그룹 블랙스톤(Blackstone)의 스티븐 슈워츠먼 등의 지원을 받아 동료 7명과 함께 자산운용 부문인 '블랙록(BlackRock)'을 공동 창립했다. 초창기 블랙록의 핵심 무기는 핑크의 참담한 실패 경험에서 탄생한 독보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 ‘알라딘(Aladdin)’이었다. 알라딘은 단순히 자산을 운용하는 것을 넘어, 수천만 개의 경제 지표와 변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투자 포트폴리오의 잠재적 위험을 진단하는 거대한 신경망이었다.블랙록은 알라딘의 압도적인 데이터 분석력을 바탕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으며 팽창했다.

1994년 노선 갈등 끝에 블랙스톤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블랙록은 1999년 성공적으로 기업공개(IPO)를 단행했다. 이후 핑크의 과감하고 천재적인 인수합병(M&A) 감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6년 메릴린치 투자운용 부문(MLIM)을 인수하며 주식 운용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혼란 속에서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BGI)와 그 핵심 자산인 상장지수펀드(ETF) 브랜드 '아이셰어즈(iShares)'를 전격 인수했다. 이 결정적인 승부수를 통해 블랙록은 단숨에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로 등극하며 월가의 패권을 쥐게 된다.

오늘날 래리 핑크의 위상은 단순히 거대한 자본을 굴리는 펀드 매니저의 수준을 초월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재무부는 부실 자산 평가와 시장 구제를 위해 가장 먼저 핑크와 그의 알라딘 시스템에 구원을 요청했다. 국가의 경제 위기마저 민간 기업인 블랙록의 통제력에 의존했던 것이다. 해마다 연초 전 세계 주요 기업 CEO들에게 보내는 ‘래리 핑크의 연례 서한(Annual Letter to CEOs)’은 글로벌 경제의 어젠다를 설정하는 막강한 위력을 지닌다. 기부변화에 대한 투자와 ESG 즉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핑크가 이 편지에서 주창한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도 핑크의 작품이다. 블랙록의 막대한 자본이 곧 세계 시장의 심판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글로벌 대기업들은 그의 서한 한 장에 경영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래리 핑크는 최근 사모시장(Private Market)과 인프라 투자로 과감하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주식 및 채권 투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GIP)를 인수하는 등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래리 핑크의 삶은 가장 깊은 추락이 어떻게 가장 높은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완벽한 텍스트다. 1억 달러의 손실을 낸 젊은 트레이더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를 해부하여 전 세계 자본의 방패가 된 '알라딘'을 창조했고, 수십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를 전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키워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