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 급등에 알루미늄 부상…테슬라·중국 전기차 업체 이어 대체 확산
JP모건 “2030년 구리 수요 6% 대체 가능”
JP모건 “2030년 구리 수요 6% 대체 가능”
이미지 확대보기자동차 전기 배선의 주력 소재가 구리에서 알루미늄으로 일부 이동하고 있다.
페라리와 BMW가 새 전동화 모델에 가볍고 저렴한 알루미늄 배선을 확대하면서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앞서 시작한 소재 대체 흐름에 합류했다.
전기차의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구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자동차 업계의 원가 절감 압박이 배선 소재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페라리와 BMW가 신차에 알루미늄 배선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자동차 전기 배선의 핵심 소재였던 구리 의존도를 낮추는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구리는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배터리와 전기 시스템이 등장한 이후 200년 가까이 전기 배선의 표준 소재로 쓰여 왔다. 그러나 전기차, 전력망,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구리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가격도 크게 뛰었다.
JP모건은 올해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약 2%가 알루미늄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오는 2030년에는 이 비율이 6%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자동차 배선의 변화가 단순한 부품 선택을 넘어 글로벌 원자재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 구리 1t 2313만원, 알루미늄은 478만원
소재 교체의 가장 큰 배경은 가격이다.
구리 가격은 지난 1월 말 t당 1만5000달러(약 2313만원)에 근접하며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반면 알루미늄 가격은 현재 t당 약 3100달러(약 478만원)로 구리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프랑스 전선업체 넥상스의 자비에 마티외는 “구리 가격이 알루미늄보다 약 3.5배 이상 비싸지면 제조업체들이 알루미늄 구매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업체 입장에서는 소재비 절감 효과가 작지 않다. 전기차는 배터리, 모터, 인버터, 충전 시스템, 고전압 케이블 등 전기 부품 비중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크다. 차 한 대에 들어가는 구리 사용량도 많다. 차량 가격 인하 경쟁이 거세질수록 배선과 부품 소재를 바꾸려는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 페라리 “최대 20% 배선 무게 절감”
페라리는 이미 차체, 엔진, 섀시에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기업이다. 최근에는 전동화 모델의 전력 케이블에도 알루미늄을 쓰기 시작했다.
페라리는 지난해 296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의 전력 케이블에 알루미늄을 적용했고, 지난달 공개한 첫 순수 전기차 루체를 포함한 다른 모델에도 알루미늄 배선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페라리의 다리오 에스포지토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은 “알루미늄 배선을 통해 전체 배선 무게를 최대 2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알루미늄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가격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성능을 내는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서 무게 절감은 주행거리와 성능에 직접 연결된다. 같은 배터리를 쓰더라도 차량이 가벼우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고 가속 성능과 효율도 개선된다. 고성능차 브랜드인 페라리가 알루미늄 배선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 BMW, 2011년부터 알루미늄 도체 확대
BMW도 알루미늄 배선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BMW는 2011년 소형차 1시리즈에 알루미늄 도체를 처음 사용한 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로 적용 범위를 넓혀 왔다. 지난해 선보인 최신 e드라이브 전기차 기술에는 고전압과 저전압 시스템 모두에 많은 알루미늄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스텔란티스도 최근 구리 배선을 알루미늄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알루미늄 배선 활용을 확대해온 업체로 평가된다. 2019년형 모델Y에서 알루미늄 배선을 도입했고 이후 사이버트럭에도 관련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자동차 업계도 테슬라를 벤치마킹해 알루미늄 배선 확대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선두
알루미늄 대체 흐름에서 가장 앞선 곳은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정책 문건을 통해 기업들에 구리 대신 알루미늄 사용을 장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최대 금속 소비국인 중국은 구리 가격 상승과 수입 의존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재 대체를 정책적으로 밀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가운데 아바타, 샤오펑, 샤오미 등이 알루미늄 배선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가격 전쟁이 극심해 업체들의 이익률이 크게 낮아진 상태다.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부품과 소재 변경은 생존 전략에 가깝다.
중국 전기차 부품업체 존버는 알루미늄 배선 제품 매출 비중이 2023년 약 20%에서 올해 약 30%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중국 내 전기차 업체들이 알루미늄 배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컨설팅업체 줘촹은 “2030년까지 전력, 자동차, 가전 분야에서 현재 구리로 만들어지는 부품의 25~30%가 금속 사용량 기준으로 알루미늄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전기차 배선은 아직 구리가 주류
그럼에도 자동차 배선의 대부분은 여전히 구리다.
노르웨이 알루미늄 생산업체 하이드로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와 차량 시스템을 연결하는 버스바 등 전기 배선 부품의 약 85%는 아직 구리로 만들어진다. 알루미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전면 대체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유는 성능 차이다. 알루미늄은 구리보다 가볍고 싸지만 전기 전도성은 낮다. 같은 전류를 흘리려면 더 많은 알루미늄이 필요하거나 더 굵은 배선을 써야 한다. 공간이 제한된 부품이나 고성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구리가 여전히 유리한 이유다.
알루미늄 생산에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커질 수 있어 친환경 이미지를 중시하는 자동차 업체에는 또 다른 고민이다. 미국 관세와 공급망 문제도 기업들의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구리에서 알루미늄으로의 전환은 한 번에 이뤄지는 대체가 아니라 차종과 부품별로 경제성과 성능을 따져 진행되는 점진적 변화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 전기차 원가 전쟁이 소재 전쟁으로
전기차 산업에서 소재 선택은 점점 더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배터리 원가를 낮추기 위한 리튬인산철 배터리 확대, 희토류 사용을 줄이는 모터 개발, 철강과 알루미늄 차체 설계, 고전압 배선 소재 변경이 모두 같은 흐름에 있다. 전기차 업체들은 주행거리와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낮춰야 한다.
특히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격 인하 경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업체들은 배터리, 차체, 전장 부품, 배선까지 모든 영역에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 알루미늄 배선은 이런 압박 속에서 떠오른 선택지다.
◇ 구리 시장에는 구조적 변수
알루미늄 대체는 구리 시장에도 구조적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구리는 전기차, 전력망,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인프라에 모두 필요한 금속이다.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장기 부족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수요가 알루미늄으로 이동하면 구리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가 구리 부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준은 아니다. 알루미늄은 모든 용도에서 구리를 대신할 수 없고, 고효율과 고신뢰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구리 수요가 계속 남는다.
다만 자동차와 전력, 가전 등 대량 생산 분야에서 알루미늄 적용이 늘면 구리 수요 증가 속도는 일부 늦춰질 수 있다. JP모건이 2030년 구리 수요의 6%가 알루미늄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본 것도 이런 맥락이다.
◇ 전기차 시대의 배선 공식이 바뀐다
자동차 배선은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는 부품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에는 배선과 전력 시스템이 차량 성능과 원가를 좌우하는 핵심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구리는 여전히 가장 뛰어난 전기 배선 소재다. 그러나 가격이 치솟고 전기차 업체들의 원가 압박이 커지면서 알루미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볍고 싸다는 장점은 전기차 산업의 요구와 맞아떨어진다.
페라리와 BMW의 알루미늄 배선 확대는 이 변화가 더 이상 일부 중국 업체나 테슬라만의 실험이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