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새 관세 12.5%…손전등은 중국 20%·동남아 19%
태국 생산비 최대 15% 더 들어…부품·물류·규모 경쟁력에 중국 재부상
태국 생산비 최대 15% 더 들어…부품·물류·규모 경쟁력에 중국 재부상
이미지 확대보기지난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한때 145%까지 치솟자 미국 기업들은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그러나 중국과 동남아시아산 제품의 관세 격차가 크게 줄면서 중국의 낮은 생산비와 촘촘한 부품 공급망이 다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각) 중국을 포함한 38개 경제권의 대상 수입품에 12.5%의 새 관세를 적용한 가운데 일부 미국 브랜드가 중국 생산 비중을 다시 늘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9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기존 관세를 무효화한 뒤 무역법 301조에 따라 관세체계를 다시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 145% 관세 피해 태국 갔지만 1년 만에 제동
NYT에 따르면 태국 방콕 남쪽 마프양폰에는 중국 손전등 제조업체 닝보브라이트일렉트릭이 세운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는 미국 소비자에게 판매될 손전등과 작업용 조명이 생산되고 있지만 부지의 절반에만 건물이 들어섰다. 일부 공간과 생산라인은 향후 주문 확대를 기다리며 비어 있다.
이 공장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지난해 145%까지 치솟자 공급망을 중국 밖으로 옮기려는 미국 고객사들의 요구에 따라 건설됐다.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얼라이언스컨슈머그룹(ACG)도 닝보브라이트일렉트릭에 중국 이외 지역의 공장 설립을 요청했다. ACG는 손전등과 헤드램프, 랜턴을 비롯해 보조배터리와 손난로 등을 판매하는 업체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크게 낮아지자 ACG는 동남아시아 생산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이 회사 측은 중국 생산 비중을 다시 늘렸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중국산과 태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미국 관세가 비슷해진 상황에서는 생산비 차이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중국 20%·동남아 19%…관세 격차 축소
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 적용한 중국산 대상 품목의 관세율은 12.5%다. 중국 이외 수십개 국가에도 10% 또는 12.5%의 관세가 부과됐다.
중국산 제품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부과된 관세를 비롯한 다른 세금도 남아 있다.
중국 금융회사 궈진증권은 기존 관세를 모두 포함한 중국산 제품의 미국 가중평균 관세율이 23%를 조금 웃도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실제 관세율은 품목에 따라 달라 일부 상품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차이가 사실상 사라졌다.
손전등의 경우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 적용되는 관세율은 20%다.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산 손전등에는 19%가 부과된다.
중국산을 동남아산으로 바꿔도 관세 부담은 1%포인트밖에 줄지 않는 셈이다.
중국이 가진 생산비 우위를 고려하면 이 정도 관세 차이로는 기업이 동남아시아로 생산을 옮길 유인이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 태국 생산비 중국보다 최대 15% 높아
ACG에 따르면 관세를 적용하기 전부터 태국 등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비용은 중국보다 12~15% 높았다.
원자재와 부품 조달비가 비싸고 항만까지 제품을 운송하는 비용도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면 20%의 관세를 부담해야 하지만 태국에서도 생산과 운송 단계에서 최대 15%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태국산에 적용되는 미국 관세율도 19%여서 전체 비용에서는 중국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중국 경쟁업체들이 아마존에서 ACG가 제품을 미국으로 운송하는 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손전등을 판매하는 점도 부담이다.
공급망을 다변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보다 당장의 가격 경쟁력을 지켜야 하는 경영상 필요가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중국과 대체 생산국 사이의 최종 관세율 격차가 작게 유지되면 중국 밖으로 옮겨간 주문 일부가 다시 중국 공급업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세계 손전등 60%’ 시뎬 공급망의 힘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낮은 인건비보다 특정 지역에 집중된 부품·장비 공급망에서 나온다.
중국 동부 저장성 닝보시 인근의 시뎬은 ‘손전등 도시’로 불린다.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이 지역은 세계 손전등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시뎬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와 인쇄회로기판, 스위치, 알루미늄 외장재 등을 생산하는 수백개 업체가 밀집해 있다.
제조업체는 필요한 부품을 가까운 거리에서 신속하게 조달할 수 있다. 시뎬은 대형 항만과도 가까워 미국으로 제품을 보내는 해상운송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싱가포르 힌리치재단은 중국이 대규모 생산과 집적된 공급망을 통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관세와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경제적 계산만 놓고 보면 상당한 생산 물량을 중국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동남아 공장도 중국산 부품·설비 의존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겨도 중국 공급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태국 손전등 공장에 사용되는 반도체와 알루미늄 등은 중국과 한국에서 들여온다. 생산설비와 상당수 부품도 중국산이다.
중국산 부품을 태국으로 먼저 운송해 조립한 뒤 완제품을 미국으로 보내면 물류 단계가 늘어난다.
동남아시아는 행정절차가 중국보다 복잡하고 도로와 항만 등 기반시설도 상대적으로 부족해 운송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정부 보조금과 낮은 금리의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갖고 있다.
ACG는 18개월에 걸쳐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의 생산설비를 마련하고 공장 인증을 받았다. 2025년에는 전체 제품의 4분의 3 이상을 중국 밖에서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실제 제품의 3분의 2는 여전히 중국에서 생산됐다. 공장 설비만 다른 나라에 마련한다고 생산비와 공급망 경쟁력이 곧바로 중국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이란전쟁 연료난도 중국 회귀 부추겨
미·이란 전쟁에 따른 연료 부족도 동남아시아 생산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검사기업 키마에 따르면 베트남 등 일부 국가의 공장이 연료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자 북미 브랜드들이 최근 중국에서 조달하는 물량을 다시 늘렸다.
동남아시아 공장이 연료와 중국산 부품 공급에 동시에 영향을 받으면서 생산시설을 분산한 효과가 줄어든 것이다.
기업들은 중국 한 곳에 공급망을 집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중국 공장과 항만이 멈추면서 생산과 운송이 동시에 차질을 빚은 경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연료난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부품업체와 기반시설이 밀집한 중국 공장이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 자문회사 APAC어드바이저스는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해본 뒤 중국 제조업이 가진 규모와 공급망의 이점을 새롭게 확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미 무역대표부 “중국 복귀는 위험”
미국 정부는 기업들이 다시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6월 일부 기업이 생산을 중국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그런 결정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안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불과 1년 전 양국이 서로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는 점을 기업들이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 제한으로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낮춘 전례도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위험 요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산업보조금 등 각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에 관한 무역조사를 토대로 앞으로 추가 관세를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은 연간 무역흑자가 1조달러(약 1451조원)를 넘는 만큼 추가 관세의 주요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관세가 지난해 말 수준인 20%를 크게 넘으면 중국이 기존 무역휴전 합의를 위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보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탈중국 포기보다 생산비중 재조정
미국 기업들이 중국 이외 지역의 생산을 모두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ACG는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일부 주문을 동남아시아 공장에 계속 배정해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관세가 다시 오르거나 미·중 관계가 악화할 경우에 대비해 중국 밖 생산기반을 남겨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튬이온 배터리와 인쇄회로기판 등 핵심 부품의 중국 밖 생산 투자는 철회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관세율이 비슷한 상태에서 생산비와 물류비 차이까지 부담하며 공급망 이전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NYT는 “미국의 관세정책이 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생산을 미국으로 되돌리려는 목적과 달리 중국 공급망의 비용 경쟁력을 다시 부각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