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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업 접은 월풀, 美 주택침체·부채에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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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업 접은 월풀, 美 주택침체·부채에 흔들

북미 매출 비중 65%…2분기 순매출 7% 감소·조정 주당 21센트 손실
인싱크이레이터 인수 뒤 순부채 8조6000억원 넘어…신제품·가격 인상 승부
미국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에 있는 월풀 세탁기 공장의 관리동. 월풀에 따르면 이 공장은 지난 1952년부터 가동해 온 세계 최대 규모의 세탁기 공장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에 있는 월풀 세탁기 공장의 관리동. 월풀에 따르면 이 공장은 지난 1952년부터 가동해 온 세계 최대 규모의 세탁기 공장이다. 사진=로이터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수익성이 낮은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북미 시장에 집중한 전략으로 미국 주택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인수로 불어난 부채까지 겹치면서 신제품 출시, 가격 인상, 비용 절감에 성패가 달린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난 1911년 세탁기 제조업체로 출발한 월풀은 올해 창립 115주년을 맞은 미국 대표 가전기업이다. 월풀, 키친에이드, 메이태그, 아마나, 젠에어, 인싱크이레이터 등 유력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으며 미국에 본사를 둔 유일한 대형 주방·세탁가전 제조업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풀이 글로벌 확장 전략을 포기하고 미국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결과 3년째 침체한 미국 주택시장에 회사의 실적이 크게 좌우되고 있다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주택 거래가 둔화하면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대형 가전제품 수요도 감소한다. 소비자들은 이사하거나 주택을 개조할 때 고가 가전을 주로 구매하고 평소에는 기존 제품이 고장 날 때까지 교체를 미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주의 부동산 투자자 칼린 리지웨이는 과거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때 주방 가전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지만 최근에는 작동하는 월풀 냉장고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새 냉장고를 사는 데 600달러(약 86만원) 이상을 쓰는 대신 30달러(약 4만원)어치 페인트로 외관을 새것처럼 손질했다. 주택 구매자들이 가전제품보다 낮은 매매가격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월풀의 매출과 이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하락세를 이어왔다. 올해 2분기 순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 감소했고 조정 주당순손실은 21센트(약 300원)를 기록했다.

다만 두 지표 모두 1분기보다는 개선됐다. 마크 비처 월풀 최고경영자(CEO)는 신제품 출시, 가격 인상, 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한 회복 전략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초기 신호라고 평가했다.

◇해외 사업 정리하고 북미 매출 비중 65%로 확대

미시간주 벤턴하버에 본사를 둔 월풀은 아르헨티나부터 폴란드까지 세계 각국의 가전업체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이를 기반으로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한국의 LG전자·삼성전자 등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했다. 2015년에는 전체 순매출의 절반이 북미 이외 지역에서 나왔다.

그러나 중국 사업은 정부 지원을 받는 현지 경쟁업체에 밀려 손실을 냈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 사업에 타격을 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러시아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2017년 취임한 비처 CEO는 글로벌 확장 대신 수익성이 높은 지역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월풀은 2021년 중국 자회사의 지분 과반을 매각했고 이후 유럽 사업을 튀르키예 가전업체 아르첼릭이 지배하는 법인에 넘겼다.

사업 영역이 축소된 월풀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서반구에 집중했다. 지난해 북미 사업부가 전체 순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65%로 약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비처 CEO는 개별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비용은 늘어난 반면 세계 시장에 진출해 얻는 이점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2위보다는 규모가 큰 한두 개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북미 집중 전략은 월풀의 실적을 미국 주택시장에 더 강하게 묶어놓았다. 글로벌 경쟁업체들도 북미 사업을 강화하면서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시장조사업체 오픈브랜드에 따르면 월풀의 미국 주요 소매업체 내 시장점유율은 최근 몇 년 동안 하락했다. 월풀은 전자상거래와 건설업체 대상 판매까지 포함한 자체 집계로는 점유율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거론 객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시장에서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북미 사업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며 “성장 기회가 있는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경쟁 압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4조3000억원 인수 뒤 순부채 8조6000억원 넘어

WSJ에 따르면 월풀의 재무 부담은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한 뒤 추진한 대형 인수로 더욱 커졌다.

월풀은 2022년 음식물 분쇄기 제조업체 인싱크이레이터를 현금 30억달러(약 4조29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대금 가운데 25억달러(약 3조5700억원)는 차입금으로 마련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인수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비처 CEO는 음식물 분쇄기를 식기세척기와 함께 판매할 수 있고 제품 교체 주기가 통상 8년이어서 경기 침체기에도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래 직후 금리 급등으로 미국 주택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월풀의 순부채는 60억달러(약 8조5700억원)를 넘어섰다.

월풀은 2023년 부채를 줄이기 위해 한때 핵심 성장동력으로 평가했던 인도 자회사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월풀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추자 회사는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70년 동안 지급해온 배당도 중단했다. 두 조치가 발표된 뒤 주가는 급락했다.

비처 CEO는 인싱크이레이터를 기업가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에 인수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이 회사가 두 자릿수 이익률과 북미 시장점유율 65% 이상을 확보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주택시장이 결국 회복할 것이며 시장이 반등하면 인싱크이레이터가 우수한 사업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투자자는 월풀이 주택시장 회복만 기다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월풀 주식 1만1000주를 보유한 프로메튬어드바이저스의 크리스토퍼 포치는 회사가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제품·가격 인상·인력 감축으로 회복 모색

월풀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신제품 출시를 앞세워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신제품에는 카메라로 조리 상태를 확인해 쿠키가 완성되는 시점을 알려주는 오븐, 씹어 먹을 수 있는 작은 덩어리 형태의 얼음을 만드는 냉장고 등이 포함됐다.

물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이익률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월풀은 미국 정부가 수입 가전제품에 부과하는 25% 관세로 외국 경쟁업체들도 가격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는 경쟁업체들이 실제로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비용 절감도 병행하고 있다. 월풀의 전 세계 직원 수는 지난 5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해외 시장에서 철수한 영향이 크지만 미국 내 생산시설도 감원 대상에 포함됐다.

아이오와주 아마나 냉장고 공장의 직원 수는 약 3000명에서 650명으로 감소했다.

월풀은 감원이 공장 현대화를 위한 사전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측은 새로운 설비나 장기 투자계획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비처 CEO는 “아마나 공장에서 냉동실이 아래쪽에 배치된 냉장고 한 종류를 집중 생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는 오하이오주에서는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전제품 유통업체들은 월풀의 회복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가전 유통업체 퀸시티홈스토어의 로디 플레이어 CEO는 재고 공급 부족과 월풀의 소비자 직접 판매로 갈등을 겪었지만 월풀이 수십 년 동안 중요한 협력업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월풀이 가전산업에서 핵심적인 기업인 만큼 회사가 겪는 어려움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