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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9)] '목포~제주 해저터널' 못할 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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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9)] '목포~제주 해저터널' 못할 것도 없는데

현대건설이 건설한 6.9㎞의 보령해저터널.이미지 확대보기
현대건설이 건설한 6.9㎞의 보령해저터널.
*...‘목포에서 제주까지 해저터널을 놓자’는 방안은 매년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목포에서 해남과 보길도를 잇고 추자도를 거쳐 제주까지 17㎞의 해저터널을 건설한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이 해저터널을 고속철도와 연결한다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2시간 28분 만에 갈 수 있다. ‘목포~제주’ 해저터널이 만들어진다면 물류 이동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제주로 몰려드는 외국관광객의 수송을 이원화 시켜 만성적인 제주공항의 포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세이칸 해저터널’의 건설 비화를 들춰보면 ‘목포에서 제주까지’의 해저터널 건설은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심사숙고 할 일이다. 해저터널은 경제성과 편의성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해저터널 건설 아이디어의 근저에는 첨단의 토목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 엄청난 자금과 안전성을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 더하여 터널 공사에 필요한 철강재를 적재적소에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철강기업이 버티고 있다면 투자비용은 대폭 절감된다.

*...우리나라의 해저터널은 ‘통영해저터널’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경남 통영시 당동에서 미수2동을 연결하는 ‘통영해저터널’은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불행하게도 이 터널은 일본이 만든 것이다. 1927년 5월 터널 공사에 착수하여 1932년 12월까지 5년 만에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의 ‘통영해저터널’이 탄생됐다. 당시만 해도 해저터널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우선 판대목(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해협) 양쪽에 방파제를 설치하고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했다. 그리고 방파제 공간에 거푸집의 설치와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터널을 구축했다. 터널이 완성된 이후에는 다시 방파제를 철거하는 과정을 택했다. 이 공사는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더욱이 일제치하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되어 인명 피해와 사고를 당했다. 안타까운 것은 일제가 주관한 공사여서 사고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통영해저터널의 개통 이후 사람들의 이동 편의와 우마차, 차량 통행, 지방과 지방을 잇는 물류 거래가 원활해졌다. 그러나 이 터널의 원래 목적은 한국의 질 좋은 곡식을 일본으로 손쉽게 운송하기 위해 만든 해저 길이었다. 암튼 이 해저터널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터널 안으로 바닷물이 스며들고 터널은 노후되어 1967년 ‘충무교’의 완공을 계기로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지금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재탄생했다. 통영터널 양쪽 입구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란 글이 쓰여 있다. 잉어가 거친 여울목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말이다. 결국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이라는 뜻이다. 고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면 통영해저터널을 거닐면서 ‘용문달양’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 용의 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속설에 위안을 받자는 소리이다.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은 간몬(關門)터널이다. 1944년에 완공된 이 터널은 도보로 15분 걸린다. 한자 이름 ‘관문’(간몬으로 읽음)처럼 이곳을 도보로 건너면 취업과 결혼 등 인생의 관문을 잘 넘을 수 있다는 풍습이 있다. 간몬(關門)이란 이름은 ‘시모노세끼시’(下關市)의 두 번째 글자 ‘간’과 ‘기타규슈시 몬지구’(門司區)의 첫 글자 ‘몬’을 합친 것이다.

‘간몬해협’의 바다 밑에는 두 개의 터널이 있다. ‘간몬 철도터널’과 ‘간몬 국도터널’이다. 그리고 서쪽에는 ‘간몬교’가 해먹처럼 걸려있다. ‘간몬 철도터널’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상에서 미리 만들어 바다 밑에 장착시킨 케이손 공법 등이 적용됐다. 터널의 전체 길이는 약 3,600m. 그 중 해저부분은 1,140m이다. 1936년에 착공하여 8년만인 1944년에 개통했다. 일본 최초의 해저 터널이며, 세계 최초의 해저 철도터널이기도 하다.

‘간몬 국도터널’은 ‘간몬해협’ 동단의 ‘시모노세키’와 ‘모지’ 간 780m의 ‘하야토모노세토’의 해저에 개설됐다. 1939년에 착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8년에 완성되었다. 무려 19년이나 공사를 진행한 셈이다. 전체 길이 3,461m 중 780m가 해저부분인데, 해저부분은 너비 3.8m의 인도(하단)와 7.5m의 차도(상단) 등 2단으로 되어 있다.

*...‘간몬해협’의 바다 밑에 해저터널이 있다면 해협 위에는 ‘간몬교’가 높이 걸려있다.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를 연결하는 ‘간몬교’는 길이 1,068m, 폭 26m, 높이 61m의 대형 현수교이다. ‘간몬 국도터널’의 혼잡을 해소할 목적으로 1973년 11월에 개통되었다. 일본도로공사가 발주한 ‘간몬교’의 케이블공사는 신일본제철과 (주)신호제강소에서 맡았다.

케이블의 총 길이는 1,162m이며, 케이블의 직경은 67㎝이다. 케이블을 구성하는 와이어 한 가닥의 직경은 5.04mm. 교각을 떠받치는 스트랜드의 총수는 154본이며, 1개 스트랜드의 소선수(素線數)는 91본이다. 1개의 케이블 수는 14,014본이다. 전체 케이블의 중량이 5,080톤인 것으로 보아 와이어로프 등의 철강재가 5000톤 이상 사용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이칸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이다. 철도, 도로를 합산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길다. ‘영불해협 터널’과 비교하면 해저구간은 짧지만, 전체 53.85㎞라는 길이는 경이적이다. 그동안 가장 길었던 터널은 30㎞ 수준이었다. 이 터널이 만들어진 것은 해상 선박사고로 엄청난 인명사고가 난 이후 본격화 됐다는 점에서 세월호 침몰사건과 흡사하다. 사고 이후의 조치는 양국이 다르다. 일본은 해저터널을 구상하고, 한국은 세월호 법의 개정을 위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일본은 교통망이 잘 구축된 나라이다. 육지에서는 철도, 바다와 강에서는 페리라는 기본적인 교통망을 갖고 있다. 부관페리, 다렌-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페리선, 그리고 일본의 주요 4대 섬 간을 연결하는 상당한 양의 철도-페리 등 교통망이 연결되어 있다. 이런 연결고리도 일본 열도가 풍랑이 거센 특징 때문에 기상 악화에 따라 페리 운항이 종종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자연스럽게 해저터널을 만들자는 논의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해저터널에 소요되는 엄청난 자금에서부터 긴 공사기간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쉽게 덤비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54년에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태풍 마리호 때문이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 마리호의 접근이 있었음에도 기상 정보를 오판한다. 그 오판은 항해 중이던 ‘토야마루’(洞爺丸) 등의 페리연락선이 조난되어 무려 1,139명의 사망자와 행불자를 남겼고, 전체 조난 피해자를 합치면 1,430명에 이른다. 말 그대로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해저터널 건설의 찬반양론은 일시에 수그러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주변 국가들의 조롱에 얼굴 붉힐 사이도 없이 일본은 ‘토야마루호’ 조난 사고 7년 만에 지질 조사 등과 설계를 거쳐 1961년 3월 23일 ‘세이칸 터널’ 착공식을 갖는다. 그리고 약 24년이나 걸려 총연장 53.85㎞라는 세계 최장거리의 ‘세이칸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세이칸 해저터널’은 최신공법으로 진행됐다. 공사는 탐사와 굴삭을 함께 실시했고, 터널 굴삭은 ‘나툼’(NATM)방식을 사용했다. ‘나툼’방식은 1980년대에 국내 건설기업들이 사우디에 진출하면서 실행했던 공법이다. 최근 서울 시내도로 곳곳에서 싱크홀이 발견된 원인도 지반을 고려하지 않고 ‘나툼’방식의 터널 굴삭이 한 원인이라고 밝혀진바 있다. 아무튼 터널 굴삭을 하면서 만들어진 터널 벽면에 콘크리트를 분사하여 보강하는 숏 크리트 타설 방식은 이때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대규모로 사용한 사례는 ‘세이칸’이 최초란다.

또 해저이기 때문에 지층에 함유된 물이 많아 공사 중에 해수가 새어 들어오거나 굴삭 중 갑자기 물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지질이 좋지 못해 굴삭 루트를 변경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터널에는 화재와 소방 구난을 위해 2개의 역도 만들어졌다. 1985년 본갱이 관통되고, 1988년에 완전 개통됐지만 ‘세이칸 해저터널’은 뜨거운 박수를 받지 못했다. ‘세이칸 해저터널’이 수용해야 할 북해도행 교통을 항공기가 장악했기 때문이다. 연락선은 로컬 교통이나 화물 정도로 연명하는 시대가 됐다. 한마디로 해저터널을 만들기는 했으나 효용가치가 땅에 떨어져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어디다 쓰느냐”

“쓸모없는 장물(長物)이다”

“전함 야마토, 이세만 간척, ‘세이칸 해저터널’은 쇼와 3대 바보 짓이다”는 말까지 나왔다.

‘세이칸 해저터널’ 건설에 소요된 6890억 엔(약 5조7000억 원)의 어마어마한 투자비용을 터널 통행료로 회수하기는 애초부터 어렵게 됐다.

*...터널의 획기적인 활용방안을 강구하다 탄생한 아이디어가 해저철도 수송이다. ‘세이칸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열차는 시속 140㎞까지 낼 수 있다.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해저터널’은 국내를 잇는 터널이지만 국경을 넘는 해저터널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영불 터널’50㎞,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외레순 터널’(17㎞)등이 있다.

그밖에 터키 ‘보스포러스 해저터널’(14.6㎞)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스페인과 모로코를 잇는 ‘지브롤터해협의 터널’(39㎞)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공사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해저 터널을 구상하고 미국과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벌인 적이 있다.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시베리아를 잇는 ‘베링해협 해저터널’(85㎞)을 말한다. 중국도 다롄과 옌타이를 잇는 123㎞의 터널도 건설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는 부산과 후쿠오카를 연결하는 약 200㎞의 해저터널을 만들자는 논의를 일본과 진행한바 있다.

해저터널은 배를 이용한 물자 수송에서 기차와 도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수송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양국 간이나 대륙 간의 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양 국가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주변 국가에게 장기적으로 매우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물살이 거센 지역에 해저터널을 놓아 아무 걱정 없이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한다면 진도 앞 바다에서 통곡했던 어미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저터널시대라고 할 만큼 붐을 이루고 있는 해저터널 공사가 우리나라에도 하루속히 건설되기를 기대한다.


김종대 글로벌철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