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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의 아침] "1억이 우스운 시대"… 걷어차인 ‘마이카’ 사다리와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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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의 아침] "1억이 우스운 시대"… 걷어차인 ‘마이카’ 사다리와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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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윤 기자
"3000~4000만 원대로 살 만한 차 좀 추천해 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개할 만한 게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딱히 없다. 물가가 올라서라기보다 대중 차가 없어서다. 기자가 타는 차도 5년 된 3000만 원 이하 수입차다.

단편적으로 ‘수입차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폭스바겐의 현재는 초라하다. 한때 도로를 수놓았던 티구안이나 파사트의 영광은 옛말이다. 현재 라인업은 전동화 라인업 ID.4, ID.5, 해치백 '골프'와 대형 SUV '아틀라스' 정도가 전부다. 그마저 남아있는 투아렉과 나눠 먹기를 하는 상황. 대중적 선택지를 넓혀 주겠다던 과거의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팔릴 만한 고수익 모델로 명맥만 유지하는 모습이다.

프리미엄이라고 다를까. 벤츠는 진입 장벽을 낮춰주던 A-클래스를 단종했고, BMW 역시 소형보다는 고수익 차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아우디는 라인업은 갖췄으되 한국 시장에서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반면, 소위 '넘사벽'이라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성적표는 비현실적이다.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만의 리그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극적인 사례가 포르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데이터에 따르면, 포르쉐코리아는 2023년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1만 대(1만1355대)를 돌파했고 작년에 잠시 주춤(8284대)하는가 싶더니 올해는 10월까지 누적 판매량만 8900대를 돌파, 다시금 1만 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법인차 번호판 규제라는 악재 속에서도 인기는 여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싼 차만 출시하고 비싼 차만 남는다.
한국 시장이 럭셔리 브랜드들의 핵심 '캐시카우(Cash Cow)'로 떠오르자 글로벌 본사 거물급 인사들의 발걸음도 부쩍 잦아졌다. 전동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배터리 및 전장 파트너사(LG·SK·삼성)와의 미팅"을 최우선 방한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속내는 따로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방한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은 국내 일정 내내 미디어를 동원해 브랜드를 홍보하고 럭셔리 시장 입지를 다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마이바흐 판매량도 늘고 있고 한국이 세계 2위, S-클래스 세계 3위 시장이니 회장이 직접 챙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며칠 전에는 폴스타의 글로벌 CEO 마이클 로쉘러 역시 방한했다. 폴스타4 부산공장 위탁 생산을 점검하겠다는 의도였지만, 공장 대신 짧은 미디어 인터뷰만 진행했다. 여기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 것이 럭셔리 라인업으로 자리 잡는 폴스타3·5의 한국 시장 출시 예고다. 정체된 전기차 수요 속에서 브랜드의 반등을 위해 강력한 세일즈 메시지를 던지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

한편, 좀 더 뼈아픈 사실도 있다. 소비자의 마지막 보루인 국산차마저 수입차와의 가격 경계를 허물며 고급화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그랜저 가격은 하이브리드 풀옵션 기준 6000만 원에 육박하고, 싼타페나 쏘렌토 같은 패밀리 SUV도 옵션을 조금만 넣으면 50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제네시스 GV80 같은 모델은 1억 원을 가볍게 웃돌며 웬만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사실 이 기형적인 시장 구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업들이 마진이 적은 소형차 대신 수익성이 확실한 럭셔리 카에 집중하는 '믹스(Mix) 개선' 전략을 취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전동화'와 '환경 규제'라는 거대한 덫도 있다. 전기차 개발에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회수하려면 고가 정책은 필수다.

정부가 등 떠밀고 기업이 실행한다지만, 탄소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이들은 비싼 차를 팔아 잇속을 챙기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되는 셈이다. 1억 원이 우스운 시대, 당신 연봉은 그 정도로 올랐나? 평범한 월급쟁이가 탈 만한 차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박탈감으로 다가오는 때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