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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5000원 크림 앞에서 멈칫한 손… ‘가성비’에 맡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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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5000원 크림 앞에서 멈칫한 손… ‘가성비’에 맡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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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부 황효주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시내 한 다이소 매장 뷰티 코너. 5000원대 저가 화장품 진열대 앞에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소비자들이 몰려들었다. 가격표보다 먼저 뒷면 성분표를 들여다보며 “이거 SNS에서 뜬 거라던데”, “이건 써봤는데 괜찮더라”는 대화가 이어졌다. 값은 가볍지만 소비는 가볍지 않았다.

올해 들어 주요 유통업체들은 PB 화장품 라인을 잇따라 늘리고 있다. 한 유통업체는 올해 초 기초 케어 라인을 새로 낸 뒤 3분기 기준 PB 화장품 매출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했다고 전했다. 브랜드 화장품 매출이 정체인 가운데 가격이 절반 수준인 PB가 카테고리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가와 금리 부담 속에 소비자 선택은 더 촘촘해졌다. 색조는 줄이고 기초 위주로만 사거나 “성분만 괜찮으면 굳이 비싼 브랜드를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유통사가 PB 화장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PB는 기획과 유통을 모두 쥔 만큼 가격을 공격적으로 낮춰도 마진을 방어하기가 쉽다. 광고비, 모델료, 입점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기존 브랜드와 구조가 다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같은 1만 원짜리 크림이라도 브랜드 상품은 판촉비와 수수료를 떼고 나면 남는 게 많지 않다”면서 “PB는 유통단계를 줄이고 자체 채널로 마케팅을 할 수 있어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브랜드 입장에선 입지가 좁아진다. 유통 채널에 내는 프로모션 비용 부담은 커지는 반면 정가의 의미는 예전만 못하다. 할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품 노출이 줄고, 참여하면 수익성이 악화되는 딜레마를 호소하는 브랜드도 있다.

겉으로만 보면 ‘가성비’는 소비자 편이다.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다. 대부분의 PB 상품은 브랜드 인지도 대신 유통사의 신뢰에 기대는 구조다. 어떤 등급의 원료를 사용했는지, 성분 함량은 어떻게 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곳은 많지 않다. 화장품 성분표를 꼼꼼히 읽어야 안심이 되는 소비자들은 “싸서 좋은 건지, 싸니까 이 가격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가격 경쟁이 심해질수록 품질보다 단가에 더 민감해지는 구조도 무시하기 어렵다. 단기간에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내 화장품 업계의 연구·개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황효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yoju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