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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표류③] 보험사 "의료데이터 규제 장벽 높다" VS 의료계 "환자 정보 마음대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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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표류③] 보험사 "의료데이터 규제 장벽 높다" VS 의료계 "환자 정보 마음대로 사용"

공공의료데이터 대립 격화…헬스케어 발전 저해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이 보험사의 새로운 핵심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높은 규제 장벽에 부딪혀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이미지 확대보기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이 보험사의 새로운 핵심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높은 규제 장벽에 부딪혀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 보험 헬스케어가 표류하는 것은 규제장벽 뿐아니라 공공의료데이터 제공 관련 의료계와 대립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활성화되려면 막혀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가 개방되고 관련 의료법 개정이 함께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비의료기관의 헬스케어 서비스는 전문성이 인증돼 있지 않아 위험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 건보 데이터가 보험사에 넘어가면 고위험군의 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인상되는 등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관련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규제와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막혀 시장 발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단순히 걸음 수와 연계해 리워드를 제공하던 방식에서 최근에는 건강위험 예측 및 만성질환·정신건강 관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서비스 범위를 차츰 넓혀 나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고도의 서비스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높은 규제 장벽에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활성화되려면 막혀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개방하고 관련 의료법 개정이 함께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국내 보험사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지난 2021년 9월 건보공단은 보험사들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요구를 거절했고 이에 보험사들이 다시 재신청했으나 2022년 1월 끝내 심의가 유보된 이후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보험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승인을 받은 상태지만 건보공단이 보유한 데이터 양이 더 방대한데다 심평원에는 없는 자료도 있기 때문에 심평원의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이 보유한 공공의료데이터는 해외에 비해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가 축적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보험업계는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가 보험사의 새로운 위험률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롭게 산출된 위험률에 기반해 보험사가 차별화된 신상품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보 부족으로 위험률 산출이 힘들어 보험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병자를 위한 상품 등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공의료데이터가 개방되면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때 소비자 개개인에게 딱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하는 것이 용이해진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한테 맞는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세밀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건보에서 데이터 제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이 정보를 활용할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보험사들은 대안으로 몇몇 해외의 유사 자료를 활용해 위험률을 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위험률은 국내 데이터를 사용해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산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확한 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한 상태로 상품을 설계하게 되면 보험사는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할증을 보험료에 부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보험료가 비싸지고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찌저찌 공공의료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더라도 장벽은 남아있다. 데이터를 활용해 고도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보험사가 고객의 의료정보를 바탕으로 질병을 예측하거나 특정할 경우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는 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으로 한정돼 있는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격렬하게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비의료기관의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은 전문성이 인증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건보 데이터가 보험사에 넘어가면 고객의 건강 정보를 활용해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위험군의 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인상되는 등 보험사의 입맛대로 상품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라지만 공공의료데이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일 뿐 장기적으로는 공공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건보공단 데이터를 가명 처리해 제공한다 해도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쉽게 재식별될 수 있는데다 특히 의료정보의 경우 더 쉽게 개인이 특정될 수 있고 유출됐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 정보를 영리기관인 보험사에 넘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는 이에 대해 과대한 해석이라며 의료계가 경제적 이권 사수를 위해 헬스케어 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두 업계 간의 확연한 견해차로 인해 보험사의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최근 14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실손보험 간소화 방안처럼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서로 의견을 절충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은 업계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두 업계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공공의료데이터와 같은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를 어떻게 안전하고 발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또한 데이터를 활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혜택과 수익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제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소비자 관점의 측면에서 더 심도 깊은 대화와 업계 간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규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bal4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