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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포스트 반도체'는 로봇… 현대차·삼성 앞세워 국가 명운 건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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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포스트 반도체'는 로봇… 현대차·삼성 앞세워 국가 명운 건 총력전

현대차, 1조원대 M&A로 포문... 삼성· LG·두산 참전하며 판 커져
정부, 3조원 투입·인재 양성… 저출산·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기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현대차는 4년 전 약 1조3000억 원에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뒤, 로봇개 '스팟' 상용화와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현대차는 4년 전 약 1조3000억 원에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뒤, 로봇개 '스팟' 상용화와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한국 대기업들이 '포스트 반도체' 시대를 이끌 차세대 먹을거리로 로봇 산업을 낙점하고 주도권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고 포브스가 지난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앞세운 이들의 야망은 정부, 학계와 힘을 합쳐 이제 나라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과시성 투자로 비쳤던 11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짜리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가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미래를 건 국가 야망의 신호탄이 됐다.

◇ 너도나도 '로봇 기업' 선언… 속도 내는 재벌들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142위인 현대차는 로봇 사업의 선봉에 서 있다. 4년 전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11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에 사들인 현대차는 로봇개 '스팟'을 이동형 건설 현장 감독관으로 쓰는 등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으며, 이르면 2028년까지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대량 생산·판매할 목표다.

현대차 로보틱스랩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외부 전력 없이 구동하는 새로운 방식의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X-ble)'이 그 예다. 지난해 말 선보인 '엑스블 숄더'는 작업자 근력을 30% 이상 덜어주며, 재활용 슈트인 '엑스블 멕스'는 보행 약자의 회복을 돕는다.

삼성전자(21위) 역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세운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35%를 확보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AI·반도체 기술 융합을 위해 '미래로봇사무국'을 새로 만드는 등 차세대 로봇 기술력 축적에 힘쓰고 있다. LG전자(910위)는 물류 로봇인 '클로이 캐리봇(CLOi CarryBot)'과 아이들과 교감하는 가정용 로봇 'Q9'을 선보이며 일상 속 로봇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두산로보틱스(1713위)는 이미 용접, 샌딩, 수하물 처리 등 여러 산업 현장에서 활약하는 협동로봇 '코봇'을 팔고 있으며, 세계 여러 기업과 손잡고 자동화 시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

◇ '인구절벽' 위기감, 국가 명운 건 생존 전략으로


대기업들이 로봇에 총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국가 위기감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1% 미만)으로 심각한 노동력 부족과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로봇은 이를 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침체된 경제 상황도 로봇 산업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률을 0.8%로 예측했으며, 코스피 지수는 지난 5년간 34% 오르는 데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300억 달러 규모의 기술 부양책 역시 이러한 위기 극복 의지로 읽힌다.

한국은 노동자 1만 명에 로봇 1000대를 보유한, 세계 1위의 로봇 밀도 강국이다. 제조업 근로자 10명 중 1명 이상은 이미 로봇과 함께 일하는 셈이다. 이제 대기업과 정부는 공장 담장 밖, 우리 삶 곳곳으로 로봇 영역을 넓히려 한다.

◇ 민관 총동원 'K-로봇 생태계'... 세계로 뻗어나간다


정부와 기업은 'K-휴머노이드 얼라이언스'라는 민관 협력체를 통해 힘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대학, 연구기관이 모두 참여한다. 2028년까지 무게 59kg 미만에 18kg의 물건을 들고 초속 3m로 걸을 수 있는 이족보행 로봇 상용화가 목표다. 특히 모든 국산 로봇에 쓸 공통 AI '두뇌'를 개발하고, 부품과 소프트웨어 같은 핵심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약 3조 원(23억 달러) 이상을 들여 로봇 전문 인재 1만5000명을 키우고, 핵심 부품 국산화와 새 시장 만들기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은 위험한 산업 현장을 순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며, 미국 비밀경호국이 마러라고 리조트 경비에 쓰기도 했다. 세계 물류 기업인 DHL은 소포 처리를 위해 '스트레치' 로봇 1000대를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현대차는 21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전략에 따라 미국 시장에 로봇 수천 대를 추가로 배치한다.

로봇을 중심으로 한 산업 간 협력도 활발하다. 한국 제1 철강 회사 포스코는 현대차와 손잡고 58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짓는다. 방산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율 무기 시스템 개발을 선언하며 로봇 기술 응용 범위를 국방으로까지 넓혔다. SK스퀘어, 크래프톤 같은 새 기업까지 뛰어들면서 로봇 산업 경쟁은 모든 분야로 번지고 있다.

머지않아 로봇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