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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감시’ 논란…보험사,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겸직’ 떼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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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감시’ 논란…보험사,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겸직’ 떼어낸다

‘내부통제’ 약화 지적…책무구조도發 지배구조 개편
KB라이프·메리츠 등 겸직 해소…교보생명 겸임 유지
임원 수 적은 중소형사 부담…일부 차등 적용 목소리
보험사들이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이사회 의장과 대표 겸직 구조를 분리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보험사들이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이사회 의장과 대표 겸직 구조를 분리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보험사들이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 분리에 나섰다. 지난 3일부터 자산 5조 원 이상 보험사를 대상으로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른 조치다. 그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구조가 내부통제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겸직 해소를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13일 보험업계 따르면 이달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보험사들이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책무구조도란 각 임원별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한 문서로,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회사 운영과 내부통제 전반을 책임지며,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이행 여부를 점검·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 두 직책을 동시에 수행할 경우, 경영진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KB라이프생명은 최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선출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기존에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정문철 대표는 대표이사만 수행하고, 김영선 사외이사가 신임 의장으로 선임했다. KB손해보험 역시 지배구조 내부규정을 개정해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하도록 했고, 메리츠화재도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분리해 성현모 사외이사를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 밖에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주요 대형 보험사들은 올해 초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농협생명도 이사회 내 내부통제위원회를 통해 책무구조도 작성 및 변경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규정을 새롭게 마련했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다만 겸직 구조를 떼어내지 못한 보험사도 여전하다. 교보생명의 경우, 신창재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교보생명 측은 각자 대표 체제 하에서 대표이사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어 있어 내부통제의 실효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생명도 여승주 부회장이 최근 그룹 경영지원실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새로운 대표이사가 내정된 상태이며, 다음 달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의장직 분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임원 수가 적어, 책무구조도 도입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보험사는 등기·비등기 임원을 포함해 60명 안팎의 임원진을 두지만, 중소형사는 10~20명 수준에 그친다. 이로 인해 소수 임원에게 인수, 심사, 판매 등 이질적인 업무 책임이 동시에 부여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책임 분담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현재로서는 보험사 규모나 조직 구조에 따라 규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학계에서도 회사 규모나 조직 특성에 따른 단계적, 차등적 적용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 호주 사례처럼 일정 기준 이하 회사에 대해 책임 체계 일부 항목을 완화하거나 시행 시기를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