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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 유로 팹 꿈꾸던 유럽, 韓 반도체 유치 대신 손잡기 택한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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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 유로 팹 꿈꾸던 유럽, 韓 반도체 유치 대신 손잡기 택한 속사정

- 獨 인터페이스 보고서, 삼성·SK 대형 팹 유치보다 소규모 합작사업 우선 권고
- 아시아보다 제조단가 30% 높고 반도체법 2.0 보조금 불투명해 투자 유인 부족
- 6월 출범한 한·EU 파트너십 발판 삼아 설계·친환경·방산 등 기술 상용화 집중
유럽연합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형 제조공장을 직접 유치하려던 구상을 접고, 소규모 합작사업과 공동 연구개발 중심으로 협력 노선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4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형 제조공장을 직접 유치하려던 구상을 접고, 소규모 합작사업과 공동 연구개발 중심으로 협력 노선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4

유럽연합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형 제조공장을 직접 유치하려던 구상을 접고, 소규모 합작사업과 공동 연구개발 중심으로 협력 노선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유럽 현지 언론인 이유 퍼스펙티브스는 2026년 10월 1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소재 기술정책 싱크탱크 인터페이스가 발표한 정책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는 높은 제조 단가와 보조금 정책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유럽 내 메가팹 유치는 양측 모두에 실익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 아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추진하는 국내 설비 확충 규모가 약 900조 원(5100억 유로)에 달하는 상황에서, 유럽과의 협력은 공장 건설이 아닌 칩 설계와 기술 상용화 중심의 실리 외교로 재편될 모양새다. 이번 발표는 한국 기업의 공식적인 투자 철회 발표가 아니라 독일 연구기관의 정책 분석이자 제언이다.

높은 제조비와 까다로운 규제에 막힌 대형 팹 유치

보고서는 유럽연합 반도체법 2.0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경제적 한계를 통계 지표로 짚었다. 독일 전기·디지털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반도체 생산 비용은 아시아 최적 생산지보다 15%에서 30%가량 비싸다. 특히 독일은 아시아와 비교해 인건비가 3~4배, 전기요금이 2~3배 높고 공장 건설비도 20~25% 더 들어간다.

유럽집행위원회가 추산한 첨단 반도체 공장 1기 건설 비용은 200억~400억 유로(약 29조 5000억~59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2028년부터 2034년까지 이어지는 유럽연합 장기 예산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실제 지급될 공공 지원금 규모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원금을 받을 때 따르는 조건도 글로벌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유럽연합 반도체법 2.0 제안에 따르면 자금을 지원받는 외국 기업은 핵심 공급망 정보를 당국과 공유해야 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 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 내 주요 산업 주문을 우선 배정하도록 요구받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세계 디램 시장의 3분의 2를 공급하고 인공지능 가속기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이끄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 경영 간섭과 원가 부담을 안고 현지 생산시설을 지을 유인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실리형 3대 협력 축으로 전환… 기술 상용화 집중


인터페이스는 무리한 공장 유치 대신 세 가지 방향의 실리 협력을 제시했다. 우선 유럽연합이 자체 경쟁력과 취약점을 면밀히 분석해 한국에 제공할 수 있는 강점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양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한·EU 반도체 기업협의회'를 신설하고, 칩 설계, 친환경 제조 기술, 화합물 반도체, 방위산업 응용 등 4대 분과별 실무조직을 상설 가동하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인공지능 하드웨어 공동 연구개발을 늘리고 이를 합작법인 설립이나 분사기업 육성, 소규모 지분 투자로 연계해 기술을 상용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기업 간 협력은 이미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07년부터 벨기에 나노전자연구소 아이멕과 차세대 공정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네덜란드 노광장비 기업 ASML은 2025년 11월 한국에 1500명 규모의 연구개발 캠퍼스를 열고 현지 밀착 지원에 나섰다.

보고서는 2026년 6월 양국이 맺은 한·EU 경쟁력 파트너십이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무 기구를 뒷받침하는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 파급과 거시 리스크


이번 정책 전환 제안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입장에서 무리한 해외 분산 투자를 피하고 자본 효율성을 지키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한다. 평택과 용인 거점을 중심으로 대규모 국내 투자가 집행되는 상황에서, 유럽 현지 공장 설립에 수반되는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덜어낼 수 있어서다. 세계 첨단 극자외선 장비 공급망을 쥔 유럽과 설계·소재 중심의 연구를 심화할 경우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 협력 폭도 넓어진다.

반면 기술 보호주의 흐름에 따른 리스크도 공존한다. 유럽연합이 첨단 공장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 현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증설을 계기로 역외산 반도체에 대한 탄소발자국 규제나 역내 부품 의무 조달 비율을 높일 수 있다.

독일 산업계 전망대로 2040년까지 유럽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수요가 약 3배 불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 기업들은 현지 공장 없이도 규제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유연한 기술 합작법인 모델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유럽연합이 반도체법 2.0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보조금 수령 조건을 얼마나 완화할지가 1차 변수다. 아울러 2026년 6월 출범한 한·EU 경쟁력 파트너십 실무협의체가 연내 구체화할 분과별 연구개발 지원 규모와 탄소 배출 규제 면제 범위가 향후 한국 기업들의 합작 참여 여부를 가를 핵심 분기점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