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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전통문학의 뿌리…부흥운동 통해 한국문학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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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전통문학의 뿌리…부흥운동 통해 한국문학 세계화"

[스페셜]정통시조의 맥 잇는 조희식·이광녕 원로 시조시인

신라 향가에 뿌리…1200여년 역사 가진 가장 한국적인 문학


초장·중장·종장의 정형화 된 律格으로 독창적인 음악성 강조


자유시조 유행 '시조 현대화' 이름아래 무책임한 파격은 금물


학교현장서 고전문학 비중줄어 시조 접할 수 있는 기회 사라져

역사 짧은 日 '하이쿠' 국민문학으로 사랑받는 것 보면 부러워


▲조희식원로시조시인(오른쪽)이시조사랑국민운동본부이광녕박사와최근서울동작구보라매공원에서전통문학의뿌리인시조의현대적의미와시조부흥운동에대해이야기를나누고있다./사진=윤나연기자
▲조희식원로시조시인(오른쪽)이시조사랑국민운동본부이광녕박사와최근서울동작구보라매공원에서전통문학의뿌리인시조의현대적의미와시조부흥운동에대해이야기를나누고있다./사진=윤나연기자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시조(時調)는 격조와 운치가 넘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문학이다. 초장 중장 종장 3장으로 나누어져 초‧중장에서는 기본 율격인 3‧4 또는 4‧4조의 반복적인 리듬으로 이어지다가 종장에서는 3‧5조로 꺾어지면서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마지막에서는 4‧3조의 리듬으로 마무리되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뿌리문학인 시조가 그 우수성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근래 들어 학교 교육현장에서 시조문학에 대한 지도가 소홀해짐에 따라 시조가 우리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외래 문물의 유입과 그에 따른 외풍의 영향으로 형식이 자유로운 자유시를 선호하면서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의식의 흐름도 그 주된 원인이다. 또 일부 지각없는 작가들은 율격이 엄격한 정통 시조의 습작에서 일탈하여, ‘형식실험’이라는 미명 아래 자유시를 닮은 기형시조를 창작함으로써 시조와 자유시의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그들의 전통문학 ‘하이쿠(俳句)’에 대한 국민적 사랑은 각별하다. 하이쿠는 계절을 나타내는 어휘(季語)를 넣어 17글자를 5․7․5의 음수율로 구성한 짧은 정형시다. 하이쿠는 우리 시조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매우 짧고 표현이 간결하여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 시조에 비해 정서 표현의 폭이 좁고 제한적이어서 시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어린 학창시절 때 시조를 배우고 암송하면서 문학적 소양과 정서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요즘 신세대들은 우리의 전통문학인 시조를 외면하고 있어 우리의 정체성과 뿌리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국민문학 시조를 살려내기 위하여 원로 시조시인들이 나서서 시조의 부흥과 바로세우기 운동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시조 이론서 <현대시조의 창작기법>과 시조집 <하늘다리 건너다>를 펴낸 문학박사 이광녕 시조시인과, 시조집 <산행의 서정>과 <팔순의 서정>을 펴낸 시조시인 조희식 선생님을 만나 시조문학의 현주소와 시조부흥운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시조문학의 전통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시조는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오는 유일한 전통문학 장르로서 역사가 아주 오래됐어요. 국문학사적으로 고려가요, 경기체가, 가사문학 등은 현재 다 사멸되고 말았지만 시조 만큼은 생명력이 있어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니 한국 전통의 뿌리문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시조는 일반적으로 3장6구 45자 내외의 형식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정형시입니다. 특히 시조는 우리 민족의 호흡과 성정에 알맞은 뿌리문학인데, 개화기 이래 멋모르고 외래적인 풍조에 따라 겉멋만을 추구한 나머지 우리 고유의 시조는 멀리하고 자유시 쪽으로 선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시조시인들조차 ‘시조의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무책임한 파격을 일삼고 있어 시조문학의 혼란을 자초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조라는 명칭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시조는 고려말에 그 기틀이 정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그 중흥기를 맞아 활짝 꽃을 피웠던 우리 고유의 시가 양식입니다. 고시조는 본래 문학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창사적(唱詞的) 목적의 글이었습니다. 시조는 단가(短歌), 신번(新飜), 신성(新聲), 신조(新造) 등으로 불려왔으며 이는 고악에 대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의미했습니다. 신성, 신조, 단가 등은 새로운 노래라는 범칭으로 쓰였고 시조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근세에 와서 ‘시절가(時節歌)’ 또는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용어를 줄여 ‘시조’라 했습니다. ‘시절가조’는 당시의 새로운 창법을 가리키는 말로서 5장으로 부르는 가곡창과 더불어 3장으로 부르는 시조창이 있었지요.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 가객 이세춘이 처음으로 썼고, 그 근거는 신광수가 남긴 시문집 ‘석북집(石北集)’의 관서악부(關西樂府)에 나옵니다.”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자유시와 시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자유시가 일정한 형식적 틀이 없는 내재율의 글이라면, 시조는 일정한 운율적 틀을 지니고 있는 정형률이자 외형률의 글이지요. 무엇보다 시조는 자유시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된 우리 뿌리문학으로서의 가치가 큽니다.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 시조인 셈이지요. 자유시는 1908년 최남선 선생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시작되어 1919년 주요한의 ‘불노리’가 자유시의 효시라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조의 역사는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신라의 향가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무려 1200년 이상이나 됩니다. 학자마다 다소 견해가 다르겠지만 신라의 십구체(十句體) 향가 형식에서부터 시조의 모형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죽은 누이를 제사 지내는 노래인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살펴보면, ‘생사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 (중략) - 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에서 ‘아-’ ‘아으’ 등의 감탄사가 훗날 시조 종장의 ‘어즈버’라는 감탄사로 변하게 되지요. ‘제망매가’ 등 10구체 향가들을 분석해 보면 3장 6구체라는 시조의 모형을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현대시조를 전공한 이광녕 박사의 설명은 이어졌다. 신라 때의 향가에서부터 비롯된 시조의 모형은 백제가요 <정읍사>와 고려가요 <정과정>, <만전춘별사>,<청산별곡>등으로 변형․전래되어 오다가 고려말 우탁(禹倬 1262~1342)의 시조 ‘탄로가(歎老歌)’에서 시조 모형의 정형이 정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한 손에 가시 쥐고 /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 오는 백발 막대로 치랴터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 지름길로 오더라’라는 시조가 바로 우탁의 작품입니다. 이 같이 시조가 지금의 모형처럼 완전히 정착된 시기부터만 따지더라도 그 역사는 700년 이상이나 됩니다.”

-시조와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비교한다면….

“일본의 하이쿠는 시조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와카(和歌)에서 발전된 하이쿠의 내력은 17세기 마쓰오 바쇼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겨우 300년 남짓의 역사밖에 안 되었지요. 그리고 그 시가의 내용들은 대부분 계사(季詞)에 국한되고 있어 정서표현에 한계가 있어요. 시조가 3·4·3(4)·4(초장)/3·4·3(4)·4(중장)/3·5·4·3(종장)과 같은 품이 넓고 완벽한 정형률을 자랑한다면, 하이쿠는 그보다 아주 간단한 5·7·5조의 음수율을 지니고 있지요. 짧은 정형시 하이쿠에도 리듬감이 있지만 품이 넓고 격조 높은 시조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다만 일본 국민들이 하이쿠를 국민시로 사랑하고 세계화시키며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있는데 반해, 시조는 역사성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외면하면서 정체되어 있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시조가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먼저 시조를 한 장르의 현대문학으로 보기보다는 옛 어른들이나 읊는 ‘시조창’으로만 연상하며 고리타분한 문학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시조문학에 대한 그릇된 선입관, 이를테면 자유시는 신식문학이고 시조는 고리타분한 구습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시조문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리화‧간편화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대중심리를 볼 때, 엄격한 정형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탈하려고 하는 심리적 요인도 크지요.

사실 고급문화는 대중문화에 비해 품격과 격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 불편하다고 봅니다. 시조는 자유시에 비해 엄격한 운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자유시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제일 중요한 요인은 학교 교육현장에서의 홀대라고 봅니다. 만약 교과서에서 시조를 예전처럼 많이 다루고 입시에도 정책적으로 많이 반영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은 시조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으로 1992년 이후 학교 교육현장에서 시조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외면 받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시조교육은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어졌고, 학생들은 시조를 암송하며 문학적 바탕 소양을 기르기도 했지요. 실제로 현 시조단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시조시인의 경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소년 시기에 시조교육을 받았던 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도 학교 교육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면은, 교육당국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시조단에서 발 벗고 노력해야 될 사항입니다.”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이광녕시조시인
-시조가 자유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일부 지각없는 시조시인들이 시조의 가장 큰 특징인 정형률을 지키지 않고 자유시처럼 형식을 파괴하며 창작하고 있습니다. ‘시조의 현대화’ 또는 ‘시조의 진화’를 핑계 삼아 각종 문예지에서 국적불명의 자유시조를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어요. 자유시조는 시조라기보다는 자유시에 가까워 시조의 정통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아무리 국경이 사라지는 글로벌 시대라 하지만 시와 시조는 분명히 구분이 다른 문학 장르인 만큼 3장6구로 이루어진 시조의 정통성은 고스란히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혼도 지켜내고 정체성도 유지된다고 봅니다.”

-현대시조의 현주소와 외풍과도 관계,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시조는 우리 말과 글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온통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외래어 투성이에요. 아파트 이름이라든지, 음식 이름이라든지, 예식장 이름이라든지 온통 국적불명의 외래어가 판을 치고 있어요. 모든 분야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보다는 외풍이 압도하게 되면서 전통시인 시조도 홀대 받고 있는 것이지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전통문학인 시조를 부흥시키면 아리랑, 김치, 국악, K-팝 등이 세계로 뻗어나간 데 이어, 이제는 문학분야에서의 시조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한류 붐을 타야 됩니다. 이제 세계인들도 누구나 다 아는 자유시 대신, 유럽의 소네트,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와 같이 한국 고유의 ‘시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조시인으로 활동하는 분은 몇 명이나 됩니까?

“자유시를 쓰는 시인과 시조를 쓰는 시조시인의 비율은 대략 6대 1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시조집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조시인은 대략 1000여 명 남짓에 불과해요. 그것도 대부분 60대 후반의 고령층이라는 점에서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시조시인이 많이 나와야 시조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지금 시조부흥운동과 보급운동을 펼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시조를 살리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고 계신데….

“2009년부터 현대시조부흥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아 나름대로 현대시조 부흥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한국시조사랑국민운동본부’라고 명칭을 바꿔 활동하다가, 2013년도에 다시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로 확대․재조직하여 현재 여러 가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간의 활동으로는 2010년부터 학교를 방문해 시조에 대한 교육을 하고, 시조 백일장도 많이 개최했습니다. 지난 해는 시조백일장에 7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여 시조 부흥운동이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올해에도 20여 개 학교를 방문하여 시조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며, 그밖에 시조문학상 제정, 시조유래비 설치, 시조연간집 발행, 시조문하생 배출, 교육현장의 시조교육 활성화 추진, 홍보활동 전개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실천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조교육을 뿌리 내리기 위해서 교과 과정의 반영을 위한 교육 당국과의 협의 추진 등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현대시조는 언제 태동했습니까?

“일반적으로 고대문학과 현대문학을 구분지을 때, 1894년 갑오개혁 시기를 분기점으로 봅니다. 그런데 현대시조는 갑오개혁 이후부터 따지면 문제가 있습니다. 갑오개혁부터 1920년대까지는 개화기로서 개화기의 시조를 현대시조로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시조가 시조창을 목적으로 했다면 현대시조는 문학적 표현이 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개화기 당시의 시조는 독립이나 충국 등의 계몽성이나 이념성을 강조한 나머지 작가의 내면성이나 개성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대시조라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시조의 기점은 개화기의 실험적 형태를 다 거치고 정리되어 정제된 육당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년에 발표된 최초의 개인시조집)부터 보아야 옳습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고 계몽이나 이념성에서 벗어난 작가의 내면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고시조는 단시조가 주류를 이루고, 현대시조는 연시조가 비교적 많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고시조는 자연경관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과 안빈낙도 등 선비 풍류의 정서가 많은 반면에 현대시조는 소재가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하지요. 또 고시조는 대부분 제목이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현대시조는 제목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현대시조는 시행의 배열도 다양하고 형식상의 변화가 많은데 3장 6구 형식을 파괴하는 형식실험은 금지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조희식원로시조시인
-(조희식 선생님께)시조를 써오시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고 계시는지요?

“시조에 대한 관심은 일찍이 가졌어요. 고등학교 교사로서 고문수업을 할 때마다 느낀 점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리듬(율격) 감각이 정말 탁월했어요. 시조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막상 시간이 없어 창작활동을 미루었다가 1999년 배재고에서 정년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지요. 저는 산행을 많이 하고, 공원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그날의 느낌을 시조로 남깁니다. 두 권의 시조집을 펴냈고, 시조가 저를 지탱해주고 이끌어가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