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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돈 더 준대도 안 찍는다…삼성·SK하이닉스, 역대급 호황에도 '증산' 거부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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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돈 더 준대도 안 찍는다…삼성·SK하이닉스, 역대급 호황에도 '증산' 거부한 속내

D램 품귀 2028년까지 간다…'공급 과잉' 트라우마에 설비투자 속도 조절
글로벌 점유율 70% 쥐고 '수익성' 올인…"AI 거품 꺼질 때 대비, 치킨게임 없다"
글로벌 D램 시장 호황 속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격적인 증산 대신 설비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며 수익성 중심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AI 수요 급증에도 '공급 과잉' 트라우마를 경계하며 치킨게임을 피하겠다는 포석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D램 시장 호황 속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격적인 증산 대신 설비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며 수익성 중심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AI 수요 급증에도 '공급 과잉' 트라우마를 경계하며 치킨게임을 피하겠다는 포석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전 세계 D램(DRAM)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 코리아'의 두 거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메모리 호황' 앞에서도 냉정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거처럼 공격적인 설비 확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대신, 철저한 '수익성 우선(Profitability-focused)' 전략으로 선회했음을 공식화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램(RAM) 가격이 소비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등하고 있지만, 공급사들은 인위적인 증산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공급 제한 기조가 최소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문법이 '물량 공세'에서 '가격 방어'로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시사했다.

소비자 비명에도 굳게 닫힌 빗장…"장기적 수익이 먼저"


지난 1일(현지 시각) 관련 업계와 디지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진행 중인 메모리 붐에 대응하는 전략의 핵심을 '장기적 수익성 확보'에 두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당장의 수요 폭발에 맞춰 공장을 풀가동하고 라인을 증설하던 과거의 호황기 대응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D램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심각한 공급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은 지난 몇 주 사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램 가격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제품은 이미 '구매 불가능(Unaffordable)'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공급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D램 제조사들은 언론을 통해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내놨다. 핵심은 "부족 현상이 앞으로 수 분기 이상 지속되더라도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시설을 급격히 확장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수익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며 "고객 수요와 가격의 균형을 맞춘 설비투자(CAPEX) 전략을 통해 공급 과잉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시장의 초과 수요를 용인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유지함으로써 가격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과거와 같은 점유율 경쟁(치킨게임)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코로나 호황' 뒤의 악몽…공급 과잉 트라우마


양사가 이토록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뼈아픈 '학습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비대면 수요 폭증에 맞춰 생산을 늘렸다가, 엔데믹 이후 수요 절벽에 부딪히며 혹독한 불황을 겪었다.

당시의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단행했던 대규모 감산(Production Reduction) 조치는 현재까지도 생산 라인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번 줄인 생산 라인을 다시 정상화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여기에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문제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심리적 저지선도 높다.
외신은 "삼성전자가 언급했듯, D램 기업들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다가 현재의 'AI 열풍(AI Hype)'이 사그라들 경우, 시장은 또다시 재앙적인 공급 과잉(Oversupply)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메모리 수요가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이 거품이 꺼질 때 발생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 기업들이 현재의 호황을 '구조적 성장'이 아닌, 언제든 변동 가능한 '사이클'의 일부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8년까지 계속될 '공급 부족'…고물가 뉴노멀 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러한 보수적 기조는 향후 수년간 메모리 시장의 지형도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공급업체들은 D램 공급 부족 현상이 2028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과 PC·가전 완제품 업체들에게는 비보(悲報)다. 단기간 내에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외신 분석에 따르면, 램과 GPU(그래픽처리장치) 같은 핵심 부품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공급 제약 상태에 놓일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계약 방식의 변화다. 제조사들은 장기 계약 대신 '단기 계약(Short-term contracts)'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는 시장 가격 상승분을 고객사 견적에 더 빠르고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다. "가격을 올려받을 수 있을 때 확실히 챙기겠다"는 철저한 실리주의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장기적 수익성'은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보고서는 "소비자들은 적어도 향후 한두 분기 내에 D램 공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의 고용량 SSD 할인 판매 등 일부 프로모션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는 전체적인 메모리 시장의 공급 부족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반도체 공룡'들의 전략 수정으로 인해, IT 기기 가격 상승과 부품 수급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뉴노멀(New Normal)'로 굳어질 공산이 커졌다. AI라는 거대한 수요처가 버티고 있는 한, 그리고 공급사들이 '과잉 공급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는 한, D램 가격의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