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재창조의 정치가 만든 북부의 왕”…버스 개혁·코로나 대립은 자산, 경찰 실패·공약 번복은 부담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노동당의 차기 총리 유력 주자로 떠오른 앤디 버넘 전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의 10년 정치 실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한때 밀려났던 정치인이 맨체스터 시장직을 발판으로 대중성을 회복했고 이제는 다우닝가 10번지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넘의 맨체스터 시장 시절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가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정치적 변신을 거듭해왔다고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는 버넘이 대중과 직접 연결되는 능력, 선명한 서사 만들기, 약자 편에 서는 정치적 감각을 앞세워 ‘북부의 왕’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진단하며 이같이 전했다.
버넘은 최근 메이커필드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의회에 복귀했다. 영국 노동당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에 빠진 가운데 버넘은 키어 스타머 총리를 대체할 인물로 급부상했다. FT는 “이르면 다음 달 버넘이 영국을 이끌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 웨스트민스터 비판하던 정치인, 맨체스터에서 재기
버넘은 당초 중앙정치 무대의 인물이었다. 노동당 정부와 야당 시절 보건부 장관, 문화부 장관, 그림자 내각 보건부 장관 등을 지냈고 노동당 대표 선거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총선 패배 이후 당대표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시며 정치적 입지가 흔들렸다.
그가 재기의 무대로 택한 곳은 그레이터맨체스터였다. 2017년 초대 직선 시장으로 당선된 뒤 버넘은 런던 중심 정치에 맞서는 북부 대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FT는 “버넘은 맨체스터의 지역 정체성과 자신의 정치 브랜드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의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레이터맨체스터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애초 직선 시장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부 장관이 지방분권 권한을 넘기는 대가로 시장직 신설을 요구한 결과였다. 버넘은 이 복잡한 지방권력 구조 속에서 처음에는 상당한 반감을 마주해야 했다.
특히 보건 서비스 지방분권을 둘러싼 태도 변화는 그의 정치적 유연성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버넘은 2015년에는 그레이터맨체스터의 보건 권한 이양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시장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같은 지방분권 구조를 활용해 사회복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버스 공영화로 대표 브랜드 구축
버넘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분야는 버스 개혁이다. 그레이터맨체스터의 버스망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규제 완화 이후 민간 사업자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노선과 요금, 서비스가 지역별로 크게 달라졌고, 특히 저소득 지역의 불만이 컸다.
버넘은 시장 취임 후 버스 프랜차이즈 제도를 통해 버스망을 공공 통제 아래 되돌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런던에 충분히 좋은 제도라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좋다”는 메시지로 지역 불평등과 생활비 문제를 하나의 정치 서사로 엮었다.
FT는 버스 개혁이 버넘의 총리 도전 서사에서도 핵심 자산이 됐다고 분석했다. 단순한 교통 정책을 공공 통제와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으로 만든 점이 그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버넘은 이를 영국 전역에 적용할 수 있는 공정성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당시 중앙정부와 벌인 공개 대립도 버넘의 정치적 위상을 키웠다. 2020년 영국 정부가 그레이터맨체스터에 강력한 지역 봉쇄를 요구하면서도 충분한 소득 보전을 약속하지 않자 버넘은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존슨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장면은 그를 전국적 인물로 끌어올렸다. FT는 버넘이 당시 “소외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성실한 북부 노동자들”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북부의 왕’ 이미지가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 노숙자·주택·경찰 문제는 약점
그러나 버넘의 맨체스터 10년이 성공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첫 시장 선거 때 그는 2020년까지 거리 노숙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뒤 관련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행정의 관심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고 코로나19 직전 거리 노숙은 상당 폭 줄었다.
하지만 약속 달성은 어려웠다. 노숙 문제의 주요 원인은 지방정부보다 중앙정부 정책과 주택시장 구조에 더 깊게 연결돼 있었다. 이후 버넘은 “거리 노숙을 끝내겠다”는 표현에서 “끝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수위를 낮췄고, 지난해 11월 거리 노숙인 규모는 2016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FT는 전했다.
주택 정책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버넘은 저렴한 주택 확대와 그린벨트 보존을 내세웠지만 실제 지역 계획은 일부 그린벨트 개발을 포함했다. 그는 이를 중앙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 탓으로 돌렸다. 최근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는 다시 그린벨트 개발 반대 입장을 부각했다.
그레이터맨체스터 경찰 문제는 시장 재임기의 가장 큰 오점으로 꼽힌다.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이후 경찰 대응과 범죄 기록 누락 문제가 뒤늦게 드러났고 그레이터맨체스터 경찰은 한 해 8만건의 범죄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특별관리 대상에 올랐다.
FT는 “버넘은 초기에는 경찰 수뇌부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고 문제의 심각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뒤에야 책임론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과 어려운 결정을 미루는 약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 대중성은 강점, 국정 운영은 미지수
버넘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대중과의 직접 접촉 능력이다.
FT는 그가 사람들의 문제를 듣고 즉각 반응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주변 인사들은 버넘이 시민과 직접 연결되는 데 강하고 지역 현장의 감정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감정적 반응성이 일관성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FT와 인터뷰에서 “버넘은 아침에 만난 사람에게 공감했다가 오후에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그가 인기를 얻는 데 능하지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버넘은 그레이터맨체스터에서 기존 지방정부 프로젝트를 물려받아 이를 대중적 언어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맨체스터 도심 성장, 대중교통 개혁, 지역 정체성 강화는 모두 그가 새로 만든 것이라기보다 이미 진행되던 흐름에 정치적 서사를 입힌 측면이 크다.
총리직은 다르다. 시장으로서는 중앙정부를 비판하며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었지만, 총리가 되면 비판의 대상이던 중앙정부 자체를 이끌어야 한다. FT는 버넘이 맨체스터에서 보여준 협업과 대중 소통 능력이 영국 전체 국정 운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가 핵심 질문이라고 짚었다.
버넘은 시장 재임 내내 “다르게 하겠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이 구호는 맨체스터의 자기 신화와도 잘 맞았다. 이제 그가 총리직에 오를 경우, 같은 구호가 전국 정치에서도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FT는 버넘이 “언제 문이 열려 있는지를 아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맨체스터 시장직이 그에게 재기의 문이었다면 지금은 다우닝가 10번지의 문이 열려 있다. 다만 그 문을 통과하는 버넘이 어떤 모습일지는 곧 확인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