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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리튬배터리, 항공안전 최대 위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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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리튬배터리, 항공안전 최대 위협으로

휴대폰·보조배터리 기내 화재 급증
승객당 전자기기 4∼5개…대형 여객기엔 2000개 넘어
여객기 객실에서 승무원이 불이 붙은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를 내화성 가방에 넣어 진화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기내 화재가 세계 항공업계의 주요 안전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여객기 객실에서 승무원이 불이 붙은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를 내화성 가방에 넣어 진화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기내 화재가 세계 항공업계의 주요 안전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챗GPT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전자담배 등 승객이 소지한 전자기기의 발열·화재가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안전 위험으로 떠올랐다.

승객 한 명이 비행기에 가지고 타는 전자기기가 늘면서 기내에 실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도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관련 사고가 지난 2019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올해는 매주 약 2건의 사고가 확인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항공사와 규제 당국이 개인용 전자기기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를 항공 안전의 주요 위험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휴대전화·보조배터리 동시에 불붙어 회항


WSJ에 다르면 올해 초 미국 알래스카항공 2117편에서는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승객의 무릎 위에 있던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났다.

승객은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은 뒤 불이 붙은 기기를 통로에 던졌다. 승무원들은 해당 기기를 내화성 가방에 넣어 불길을 진압했다.

조종사들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기내 산소마스크를 내린 뒤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공항으로 회항했다.

항공기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발생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승객들이 더 많은 전자기기를 가지고 탑승하면서 사고 빈도와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관련 사고는 2019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는 매주 약 2건의 화재나 연기, 과열 사고가 확인돼 지난해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 세계 항공사 기내 사용·선반 보관 제한

항공사들은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보조배터리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보조배터리를 기내 수하물 선반에 넣지 못하게 하고 비행 중 사용도 제한했다.

독일 루프트한자, 홍콩 캐세이퍼시픽, 싱가포르항공도 비슷한 조치를 도입했다.

승객의 손이 닿지 않는 선반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발견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좌석 주변에서 배터리가 과열되면 승객이나 승무원이 냄새, 연기, 온도 변화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각국 항공 당국은 승무원을 대상으로 리튬 배터리 화재 대응 지침을 배포하고 승객에게 위험성을 알리는 조치도 확대하고 있다.

영국 민간항공청은 리튬 배터리 사고를 현재 세계 항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 위험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전자기기 과열 사고가 100건 넘게 발생했다. 2024년과 비교하면 98% 증가한 수치다.

◇ 에어부산 화재 뒤 규정 강화 확산


국제 항공업계의 대응은 지난해 1월 김해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이후 속도를 냈다.

홍콩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에어부산 여객기 기내 수하물 선반에서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긴급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7명이 다쳤고 항공기는 크게 불탔다.

한국 당국에서는 선반에서 발견된 보조배터리 잔해의 전기적 용융 흔적을 토대로 배터리 내부 절연이 파괴되면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사고 이후 보조배터리와 전자담배의 위탁수하물 반입을 금지하고 기내에서 승객이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 규정이 잇따라 도입됐다.

대부분의 객실 화재는 승무원이 신속하게 진압하지만 과열 사고만으로도 항공기가 회항하거나 다른 공항에 비상 착륙하는 일이 늘고 있다.

◇ 노트북·보조배터리·휴대전화 화재 잇따라


지난 4월에는 스칸디나비아항공(SAS) 여객기에서 노트북에 불이 나 이륙 직후 영국 애버딘으로 돌아갔다.

5월에는 미국 뉴어크로 가던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의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나 런던으로 회항했다.

지난달에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던 영국항공 여객기에서 휴대전화가 발화해 객실 내부가 손상됐다.

당시 조종사는 관제 당국에 휴대전화 화재로 객실 내부가 그을렸다며 승객들의 동요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알렸다.

배터리가 과충전되거나 제품에 결함이 있거나 외부 충격으로 손상되면 내부 부품이 분해되면서 많은 열을 방출할 수 있다.

온도가 급격히 올라 주변 배터리 셀까지 연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을 ‘열폭주’라고 한다. 열폭주가 시작되면 불길을 잡더라도 배터리 내부에서 다시 발화할 가능성이 있다.

◇ 대형 여객기 한 대에 전자기기 2000개


항공 당국에 따르면 승객은 여행할 때 일반적으로 4∼5개의 전자기기를 가지고 탄다.

휴대전화와 노트북뿐 아니라 태블릿PC와 무선이어폰, 스마트워치, 전자담배, 보조배터리 등을 함께 휴대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에 따라 탑승 인원이 많은 장거리 여객기에는 화재 가능성이 있는 전자기기가 2000개 넘게 실릴 수 있다.

승객들이 기내 영상시스템 대신 개인 기기를 이용하고 공항 길 찾기와 기내 주문, 도착 뒤 택시 예약까지 휴대전화에 의존하면서 배터리 사용 시간도 길어졌다.

배터리 부족에 대비한 보조배터리 사용과 전자담배 보급도 기내 리튬 배터리 증가를 부추겼다.

열폭주 사고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담배는 전체 과열 사고의 약 28%를 차지했다. 보조배터리와 휴대전화가 차지한 비중도 각각 약 20%에 달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보조배터리와 전자담배의 확산으로 항공기에 실리는 리튬 배터리의 양이 사실상 두 배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 화물칸 화재는 승무원 접근 어려워


객실 아래 화물칸에서 발생하는 리튬 배터리 화재는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객실에서 불이 나면 승무원이 소화기와 물, 내화성 가방 등을 이용해 대응할 수 있지만 비행 중 화물칸에는 직접 접근할 수 없다.

대부분의 상업용 항공기는 화물칸에 화재 억제 설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설비는 불이 번지는 속도를 늦추도록 설계됐으며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지는 못한다.

2010년에는 리튬 배터리 8만개 이상을 실은 UPS 화물기가 두바이에서 추락했다.

적재된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은 4분 만에 항공기의 비행제어 장치까지 태웠고 조종사들은 항공기를 수동으로 조종할 수 없게 됐다.

여객기 화물칸에는 승객이 실수로 위탁수하물에 넣은 보조배터리뿐 아니라 안전 포장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전자제품 화물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는 화물칸의 리튬 배터리 관련 사고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40% 증가했다.

미국 항공화물의 약 4분의 1이 여객기 화물칸으로 운송되는 만큼 객실 승객도 배터리 화물의 화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