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밴스 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화당 참패의 원인을 단 한 문장으로 규정했다. “우리가 패배한 이유는 이란과의 전쟁 때문이다.” 현직 부통령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안보 사안이자 현재 진행형인 군사 작전을 선거 참패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례적일 만큼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이 공개 성명은 단순한 선거 패배 분석이나 자성론으로 읽히지 않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되는 변곡점에서, 고립주의 진영의 적통을 독점하고 2028년 차기 대권을 향해 독자적인 깃발을 올린 사실상의 ‘조기 대권 출사표’에 가깝다.
투표율의 신화를 깨고 드러난 ‘배신당한 유권자들’의 분노
선거 직후 공화당 내부에서는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익숙한 변명들이 고개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없었기 때문에 핵심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른바 ‘투표율 저조론’이었다. 그러나 밴스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당내 주류의 안이한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밴스가 지적했듯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공화당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은 민주당보다 여전히 높았으며, 2024년 대선 당시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지지층의 기권이 아니라 ‘이탈’이었다. 2024년 트럼프-밴스 티켓에 표를 던졌던 수많은 유권자가 불과 2년 만에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교차 투표를 감행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는가. 밴스가 인용한 여론조사 데이터는 명확히 세 가지 요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이란과의 전쟁, 날카롭지 못했던 경제 메시지,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재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가능케 했던 핵심 동력은 대외 개입 종식과 물가 안정을 약속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였다. 유권자들은 끝없는 해외 전쟁에 미국의 혈세와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치는 구시대적 네오콘(신보수주의) 외교의 종언을 기대하며 트럼프와 밴스를 선택했다.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중동에서의 긴장 고조 끝에 발발한 이란과의 무력 충돌로 인해 미군 장병 23명이 전사하고 865명이 부상을 입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적 타격과 무력 대치는 국제 유가의 불안정성을 키웠고, 이는 고물가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미국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삶에 직격탄이 되었다. 결국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자신들이 약속받았던 ‘평화와 번영’ 대신 ‘전쟁과 인플레이션’을 안겨준 집권 여당에 가혹한 징벌적 투표를 행사한 것이다.
네오콘을 향한 공개 저격과 당내 노선 투쟁의 서막
이번 밴스의 발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당내 개입주의자들과 매파 인사들을 겨냥한 서늘한 경고다. 그는 “만약 이란 전쟁이 향후 6년간 상원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 만큼 가치 있는 대가였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동의하든 아니든 그것이 최소한 정직한 태도다”라고 일갈했다. 이는 행정부 내 안보 라인과 공화당 주류 매파들이 주도한 대이란 강경 노선이 당의 정치적 기반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 정면으로 책임을 묻는 발언이다.
더 나아가 밴스는 분노한 핵심 지지층을 향해 “우리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고 싶은 분들의 말이 맞다. 여러분의 경고가 옳았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어 “그 분노의 에너지를 여러분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공화당원들을 선출하는 데 쏟아달라”고 호소했다.
이 문장에 담긴 정치적 함의는 실로 막중하다. 현직 부통령이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지지자들의 분노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분노를 동력 삼아 ‘자신과 같은 세계관(비개입주의·신고립주의)을 가진 정치인’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자고 선동한 셈이기 때문이다. 해병대원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밴스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우크라이나 지원과 중동 군사 개입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해 온 인물이다. 행정부 출범 이후 부통령이라는 직책의 한계로 인해 대이란 군사 작전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지만, 중간선거 참패라는 결정적 국면이 도래하자 지체 없이 자신의 본래 이념적 고향으로 복귀하며 매파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 존중’과 ‘정책적 결별’이라는 고도의 줄타기
그렇다면 밴스의 이러한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기인가. 표면적으로 밴스는 정교한 수사학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그는 성명에서 “대통령 자신도 어젯밤 전쟁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말했다”는 구절을 영리하게 삽입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이란 전쟁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거취를 측근들에게 묻는 등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밴스는 이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대통령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행정부가 추진한 전쟁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고도의 정치적 줄타기를 선보인 것이다. 이는 역사상 수많은 미국 부통령들이 차기 대권을 준비하며 겪어야 했던 딜레마를 돌파하는 밴스만의 방식이다. 과거 현직 부통령들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행정부의 실정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차기 대선에서 침몰하곤 했다.
반면 밴스는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일찌감치 행정부의 최대 실책인 ‘이란 전쟁’과 자신을 분리하는 손절매를 단행했다. 전쟁의 책임은 행정부 내 네오콘 참모들과 당내 주류 매파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초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순수한 고립주의 정신을 지키는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려는 포석이다. 실제로 밴스가 이란 전쟁을 패인으로 지목한 직후, 미국이 조만간 확전을 멈추고 출구 전략을 모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며 국제 유가가 하루 만에 8% 이상 급락해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통령의 발언 하나가 글로벌 원자재 시장과 지정학적 판도를 즉각 뒤흔들 만큼, 이미 권력의 무게중심이 미래 권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2028년을 향한 시계, 그리고 남겨진 과제
이제 워싱턴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2028년 대선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하원 양원을 모두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고 이란 전쟁 수행 권한을 제한하려 들 것이며,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백악관과 의회의 극한 대치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탄핵 추진 가능성을 경계하며 방어전에 몰두하는 사이, 공화당 내부에서는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둘러싼 차기 주자들의 노선 투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밴스 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의 잿더미 위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이란 전쟁에 대한 그의 통렬한 자기고백은 참패의 책임을 통감하는 반성문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행간에는 202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향한 강렬한 권력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정직한 대화는 바로 여기(전쟁으로 인한 패배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향후 공화당의 정체성과 차기 대선 어젠다를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밴스의 승부수가 온전한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경제적 타격이 지속될 경우, 행정부의 2인자인 그 역시 국정 운영의 공동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2026년 중간선거의 패배가 중동에서의 전쟁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이었으며, 밴스는 그 민심의 파도를 타고 가장 먼저 대권이라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돛을 올렸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던져진 밴스의 화두가 미국 보수 진영의 재건을 이끌 구원의 동아줄이 될지, 아니면 권력 누수를 가속하는 분열의 씨앗이 될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