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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 공연 '재회(再會)'…그와 춤 인생 함께했던 150여명 춤꾼들의 '헌정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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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 공연 '재회(再會)'…그와 춤 인생 함께했던 150여명 춤꾼들의 '헌정무대'

[나의 신작연대기(31)] 정용진(벽사춤 대표, 제4대 벽사,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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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승무)
5월 2일(목)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벽사춤’ 주최,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주관의 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 공연 '재회(再會)'를 선보인다. 정재만(1948~2014)은 전통춤에 천착한 열정의 무용가였다. ‘벽사(碧史)춤’은 한성준-한영숙-정재만-정용진으로 4대째 벽사류 춤의 정통성을 이음하는 단체의 이름이다. 이번 공연은 정재만 선생의 춤을 이어가는 ‘승무’ 이수자·전수자,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벽사춤 지부, 벽사춤 전승반 외 세종대·숙명여대 졸업생, 경기도립무용단,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한예종, 워커힐무용단, 삼성무용단, 국립무용단, 국악계 선후배 등 선생과 춤 인생을 함께했던 150여 명의 헌정 무대로 진행된다.

타고난 춤꾼 정재만은 전통춤의 대모 한영숙과 인연(1971년)을 맺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1969년)됐던 한영숙은 한성준류의 계보를 잇는 남성 전통춤꾼 정재만을 제자로 삼았다. 이 인연으로 정재만은 평생의 과업이 되는 ‘벽사(碧史)춤꾼’의 길로 접어든다. 정재만류 벽사춤은 ‘승무’, ‘살풀이춤’, ‘큰태평무’를 전통춤의 기본축으로 삼는다. 이후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산조’, ‘광대무’, ‘훈령무’, ‘허튼살풀이’ 등과 같은 벽사류 춤의 정립과 수많은 제자 양성을 통해 춤의 계승·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압도적인 규모의 공연진은 연습량을 배가했고, 시대감을 담은 복식의 색상과 영상이 국악단의 연주와 만나 추모의 열기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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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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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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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태평무)


추모의 대상 벽사 정재만, 그의 활동 영역은 국내외로 광범위했으며 늘 한국춤의 세계화에 주력했다. 그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안무 총괄을 맡았고, 월드컵 전야제 안무(2002), 부산아시안게임 개·폐회식 무용 총감독(2002),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폐회식 무용 총감독(2003) 등을 역임했다. 이런 업적 외에도 프랑스 디종 국제 민속예술제 대상, 폴란드 민속예술제 안무상, 대한민국 무용제 대상 수상과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상, 체육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정재만, '3대 벽사' 물려받아 국내외 공연통해 벽사춤 소개


벽사(碧史)는 한영숙의 호(號)다. 정재만은 그녀의 조부 한성준의 춤을 벽사춤의 원류로 보았다. 한영숙의 제자 정재만은 한영숙에게서 3대 벽사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정재만은 벽사류 춤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실기와 이론에 걸쳐 혼신의 힘을 발휘했다. 정재만은 사단법인 ‘벽사춤 아카데미’(1991년 창립, 현재 ‘벽사춤’으로 명칭 변경)를 통해 숱한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통춤을 바탕으로 우리 춤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국내외 공연을 통해 벽사춤을 알리면서 우리 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켰다. 그는 1996년 내림 춤판을 통해 아들 정용진에게 4대 벽사를 내려주었고, 정용진은 200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1기 이수자가 되었고, 벽사춤 대표이자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회장이다.

벽사춤의 핵심 사상은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이다. 서울·경기·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벽사춤은 삼재(三才)를 중시하고 천신(天神)·지신(地神)·인신(人神)과의 소통과 화평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작품들,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나 풀어내야 할 한(恨)을 신께 고하고 풀어내는 제의작(祭儀作)을 다수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벽사춤의 외연적 확장은 송범·한영숙·김백봉에게서 사사한 정재만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정재만은 세종대·숙명여대 교수를 거치면서 벽사춤에 대한 착근력을 보여주었고, ‘승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벽사춤 전승 활동에 전격 임하게 되었다. 정년 퇴임 이듬해 갑작스러운 그의 타계는 무용계의 커다란 손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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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광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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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허튼 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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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훈령무)

4대 벽사 정용진은 벽사춤의 ‘정통성과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사군자(매(梅, 학춤), 란(蘭, 태평무), 국(菊, 살풀이춤), 죽(竹, 승무)) 가운데 학춤을 제외한 3무(3舞), 벽사 특유의 춤 기교와 흥을 실은 ‘광대무’, 훈령무’, ‘한량무’, ‘월하정인’(산조춤), ‘허튼살풀이’에 벽사의 제자들을 과감하게 투입해 웅비하는 제자들의 면면을 살피도록 하였다. 벽사 정재만 타계 이후, 벽사의 후학들은 쉼 없이 정진하여 벽사의 춤 정신을 이어왔다. 정용진을 투사한 벽사춤은 거침없는 행보로 연마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전통춤 계승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춤으로 보여주었다. 정용진은 대극장 춤의 흐름을 조율하며, 벽사춤에 대한 자신감과 차별성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벽사 정재만춤보존회 주관


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 공연 '재회(再會)'는 ‘설장고’, ‘허튼살풀이춤’, ‘살풀이춤’, ‘큰태평무’, ‘한량무’, ‘산조춤’(월하정인), ‘훈령무’, ‘광대무’, ‘승무’로 구성되어 있는데 벽사 정용진의 벽사류 춤 전승 의지와 현재적 실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은하의 ‘설장고’는 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 윤회(輪廻)의 춤이었으며, 고석진의 ‘대북’은 울림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떠난 연대의 동참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용진 독무의 ‘허튼살풀이’는 정재만의 ‘허튼소리춤’(1980년)을 모태로 재창작된 작품으로서 전통 살풀이 기법을 남성적인 허튼가락으로 풀어 즉흥적이며 역동적인 춤사위가 돋보인다. ‘살풀이춤’은 신과 교감하여 높낮이와 내면계를 오가며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춤으로서 대극장 무대에서 군무로 인간 내면의 다층적 구조를 표현하며 절미의 극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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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월하정인, 산조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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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살풀이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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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한량무)


‘큰태평무’는 정재만에 의해 계승·발전되고 재복원된 군무의 태평무다. 이 춤은 매머드급 군무로 화려한 복식, 완전히 가동된 조명, 하이키 라이트, 무대까지 확장한 장엄한 ‘큰태평무’의 면모를 보였다. ‘한량무’는 한예종 안덕기 교수와 K-atrs 단원들이 고(故) 정재만 선생께 올리는 헌무(獻舞)다. 옛 선비의 고고한 자태와 굳건한 기상을 표현해 풍류, 흥과 멋을 과시한다. 거문고 가락과 굿거리·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춘 춤은 중량감 있는 전통춤의 깊이로 다가온다. ‘산조춤’(월하정인)은 정재만 원작의 ‘청풍명월’을 아들 정용진이 재구성한 작품이다. 신윤복 화(畵)의 ‘월하정인’ 느낌으로 재안무해 달빛에 비친 여인의 심경을 표현한 서정적인 춤으로서 춤사위 구성이 화려하며 여인의 단아하고 아련한 마음을 고조시키는 감정표현과 공간감을 확장했다. 감정을 확장시키는 부채와 담백한 춤사위가 특징이다. 정용진은 ‘산조춤’(청풍명월) 음악을 신쾌동류 가야금 산조에서 ‘산조춤’(월하정인)에서는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가락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

‘훈령무’는 경기도립무용단 남자 단원들이 담당한다. 조선조 말 한성준이 구군(舊軍)의 훈련 장면을 보고 무용화한 작품으로 한영숙 선생의 고증을 받아 1983년 정재만이 독무로 재현한 작품이다. 당시 대표적인 남성 춤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활기차고 박진감 넘치는 역동적인 춤이다. 1987년, 정재만 남무단 창단 때 군무화(群舞化)해 더욱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서 극작 묘미가 있다. 한성준 창안의 ‘광대무’는 패랭이에 깃털을 꽂고 춤추는 한성준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손녀 한영숙의 고증으로 정재만 재안무의 남성 독무가 되었다. 무용극 '놀당갑서'로 정재만이 초연했으며, 정용진이 계승했다. 광대가 줄에서 내려와 부채를 들고 추는 춤으로 역동적인 춤사위가 주를 이룬다. 인생의 외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명을 풀어내고 다시 인생의 외줄로 돌아간다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정용진의 ‘광대무’는 군무 구성과 요란한 사운드로 역동적이고 힘 있는 춤사위로 흥신을 주조했다.

설장고•큰태평무•산조춤 등 전승 의지•현재적 실존 확인


‘승무’는 한국춤의 백미인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한국 춤사위를 집대성한 춤이다. 벽사류 ‘승무’는 정용진까지 4대째 계승되며, 기원무·제의무로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이 내재한 담백하고 우아하며 정제된 고품격의 춤이다. 중용(中庸) 숭상의 춤은 인간 내면 철학의 경지로 승화되었다. 4대 벽사 정용진이 의미를 만들어낸 추모 공연은 꼿꼿한 정신의 표상이자 한국 춤사위를 집대성한 ‘승무’로 마감한다. 공간 구성미가 돋보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한국춤의 백미라 불리며 미학적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용진의 ‘승무’는 진법과 편제, 복식을 운용하며 우아하고 담백한 고품격의 춤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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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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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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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공연(승무)


정용진은 국립국악고를 졸업하고 세종대 무용학 박사다. 그는 벽사춤 대표이자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회장으로서 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 추모 공연 '재회(再會)'를 인상 깊게 마무리한다. 정용진의 벽사춤 전승 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공연 활동의 수범이 되고 있다. 정용진은 전통과 창작의 조화를 이루어 내면서 색다른 연출 기법을 통해 전통춤의 진정한 가치와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벽사춤’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재도약하는 조짐과 함께 해외에서도 ‘벽사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것 같다. 이번 공연 '재회(再會)'의 출연진은 ‘벽사춤’의 깊이와 춤사위를 알리면서 다양한 장르와의 경계 허물기로 무사(舞師) 정재만 정신에 가까워질 수 있는 자신감을 보여줄 계획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