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조금 가난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제 어머니께서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만 덜 가지면 한 사람 몫이 더 나온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우리 식탁에는 항상 한 사람 몫의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도로시 데이는 신문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남다른 점은 사회의 편견을 깨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옳은 일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이면서 가톨릭교도이기도 했던 도로시 데이는 단순히 종교적 신앙을 넘어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월간지 <가톨릭 노동자>를 창간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웠고,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 전쟁과 징집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환대의 집’은 도로시 데이가 대공황으로 인해 허덕이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기 위해 직접 세운 안식처였다. 사람과 물질에 버림받은 그들이 마음만은 영적으로 충만하길 바랐던 그녀는 말한다.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 세계성체대회 강연장에서 마더 테레사와 함께 진행했던 강연을 끝으로 그녀는 스테튼 섬의 그리스도 부활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중에는 장례비용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돈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삶의 철학과 헌신을 이 세상에 남긴 것이다. 그녀의 묘비에는 빵과 물고기 문양과 함께 ‘데오 그라티아스(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미정 세종국제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