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의 인프라법은 지난 1년 동안 미국의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저탄소 경제로 전환을 촉진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폴리티코는 16일(현지 시간) 인프라법이 그간 전력 부문과 전기차 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촉발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성과가 있었지만, 전기 그리드의 확장, 공공 충전 인프라의 확장, 노동력의 가용성, 정치적 갈등, 무역 상대국과 긴장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우리 정부와 기업도 인프라법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간 큰 성과와 함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남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인프라법과 반도체법 시행 이후 대미 투자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한국이었다. IRA 시행 이후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실제 가속화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북미 지역의 배터리 생산능력 비중이 2022년 6%에서 2035년 31%로 성장할 것으로 봤다.
FT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지난 1년간 1억 달러(약 1340억원) 이상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20건이나 발표했다. 생산기지 확보는 곧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민간투자 덕에 전기차 일자리 5만 개 등 총 8만 6000여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는 미국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는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태양광 업체들도 미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신성이엔지는 태양광 패널 공장을 건설 중이다. 건설 장비 기업들도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은 건설 장비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인프라법은 중국에서 시장을 잃고 있는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제공했다.
미국 배터리 제조업을 단기간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광물을 생산하기 위한 광산 개발 등 공급망 확보는 분명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우리는 한미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획득했다.
인프라법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가 핵심 광물 및 구성 요소에 대해 특정 조건을 충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부터는 핵심 광물의 최소 40%가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 또는 가공되어야 하며, 2027년 이후에는 이 비율이 80%로 증가한다. 마찬가지로 2023년부터는 배터리 부품의 최소 50%는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되어야 하며, 이 비율은 2029년 이후 100%에 도달할 때까지 매년 증가한다.
그런데 인프라법 관련 미국이 한국 업체들이 요구한 입장을 대체로 반영해 세부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됐다. 배터리 기준에 양극판·음극판이 부품으로 포함되고 양극활물질은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는 광물 규정에서 배터리 부품을 음극판, 양극판, 분리막, 전해질, 배터리 셀, 모듈 등으로 정의했다. 음극판이나 양극판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구성 재료’는 배터리 부품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 업체들은 구성 재료인 양극활물질 등은 국내서, 이후 양극판·음극판을 만드는 단계는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 업체들은 현재 공정을 바꾸지 않아도 인프라법의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나 아르헨티나 등 미국과 FTA가 없는 나라에서 수입한 광물을 한국이 가공해서 부가가치 기준(50%)을 충족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 우리 기업에 예상되는 난제와 위험 요소
이런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북미 지역에 생산기지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IRA를 활용해 미국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핵심 광물 등 공급망 혼란을 막는 조기 경보체계 신설과 정상회담과 각급 장관 정례회의도 합의했기 때문에 배터리 원재료 및 부품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의가 가능해져 일단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와 기업에 도전과제를 주는 부분도 있다.
우선 미국 기업에 제공하는 인센티브의 역효과이다.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금 감면, 연구개발과 인재 지원 등이다. 이는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보다 더 저렴하게 생산하고,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미국 기업들에 다양한 보호무역 조치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기업은 자국산 제품에 관세 면제, 정부 조달 우선권 등을 받는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기술 유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 기업과 기술 협력을 장려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 협력은 한국 기술이 미국에 유출될 위험을 증가시킨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는 시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지만, 국내 일자리 확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매출은 늘지만, 국내 일자리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할 소지가 있다.
인프라법 관련 ‘해외우려단체(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 상세안 발표가 인프라법 시행 1년이 지났음에도 발표되지 않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은 인프라법 백서에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FEOC로 지정했다. FEOC는 미국에서 세액 공제를 비롯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FEOC로 지정된 국가의 ‘어떤 기업을 어떤 조건으로 제재할 것’인가에 대한 상세안이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특히 중국 기업들이 장악한 각종 핵심 광물 공급망과 복잡하게 얽힌 기업 간 연결고리 때문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광물은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이 꼽히는데, 세계 시장에서 이들 광물의 가공 및 공급 규모 절반 이상을 모두 중국이 틀어쥐고 있다.
물론 최근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탈중국’을 기치로 국내 기업 간 합작에 노력하고 있지만, 공장의 예상 가동 시기, 충분한 물량과 수율 확보까진 수년 이상이 필요하다. 시장이 요구하는 전기차와 배터리 물량을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
배터리 업계에선 부담이 크다. 당장 확보한 수십조원 규모의 제품 수주 물량을 소화하려면 설비 및 생산능력 확충이 필수 불가결한데, 이 과정에서 중국산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값싼 소재를 완전히 배제할 경우 원가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2024년 미국 대선의 향방도 중요하다. 미국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한 마당에 친환경 정책 기조와 다른 정책을 선호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할 경우 인프라법 수정이나 폐지 등도 발생할 수 있어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