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비롯해 공화당이 주지사와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는 보수 성향이 강한 주는 즉각 SE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 상공회의소, 미국농업인연맹(AFBF) 등을 비롯한 경제계는 SEC의 이번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환경 단체와 진보 진영도 이번에 통과된 기후 공시 규정이 초안에서 대폭 후퇴했다며 불만을 표시한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이날 보도했다.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 발생량은 측정 대상과 범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제조 과정에서 직접 배출되는 직접 배출원(스코프 1)과 전력, 냉난방 등 간접적인 탄소 배출량까지 포함된 간접배출원(스코프 2), 제품 생애주기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기타 간접배출(스코프 3)이다. 스코프3는 회사 공급 과정뿐만 아니라 고객이 제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온실가스 전부를 아우른다. 기업 측은 스코프 3 기준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기 어렵고, 기업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주장해 왔다.
SEC는 기업 측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스코프 3을 보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새 규정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이 SEC에 해마다 제출하는 연례보고서에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인 스코프(Scope) 1·2 규모를 담도록 한 것이다. SEC는 애초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중대(material)하거나 스스로 온실가스 배출량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치를 설정한 기업이 더 넓은 범위의 배출량인 스코프 3도 공개하도록 하려다가 한발 물러섰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날 “최종안이 투자자에게 더욱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스코프 3을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 철회했다”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 공개를 의무화한 법 시행에 착수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023년 10월 7일 이 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5300개 넘는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를 의무화한 법안에 서명해 이를 발효시켰다.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SB 253 법안’은 비즈니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했다. 그 대상은 5300여개 기업과 연간 수입이 10억 달러가 넘은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스코프 3 탄소 배출량을 공개해야 한다.
유럽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도 유럽연합(EU) 규정에 따라 스코프3 탄소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EU는 2023년 1월부터 이 규칙을 시행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EU 규칙에 영향을 받는 미국 기업이 3000개 가량이고, 캐나다 기업이 1300개가량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관련 규정을 곧 마련한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6년 이후 도입하기로 한 ESG 공시 기준 초안을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한다. 현재 금융위는 미국 SEC의 결정 등을 참고해 국내 공시 기준을 만들고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