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트세일룰은 지난 1988년부터 존재해온 미국 세관법 조항으로 수입자가 동일 물품에 대한 거래 중 가장 첫 번째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중국 공장에서 만든 티셔츠가 5달러(약 7000원)에 홍콩 중간 유통업자에게 판매되고, 이후 이 중간업자가 미국 소매업자에게 10달러(약 1만4000원)에 다시 판매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미국 소비자에게 40달러(약 5만5000원)에 팔리더라도 미국 세관은 기본적으로 10달러를 기준으로 관세를 매긴다.
그러나 퍼스트세일룰을 적용하면 최초 판매가인 5달러 기준으로 관세를 산정할 수 있어 수입업자는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법률회사 밀러앤셰벌리에 소속된 브라이언 글라이허 변호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서 “공장과 유통업자 간 거래가격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중간 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마진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우회 수단으로서 퍼스트세일룰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였던 2018년 무렵 대중국 25% 관세가 도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추가 관세 정책으로 인해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 모스아담스의 파트너 시드 파루티는 “이전 관세 인상 시기에도 문의가 폭증했다”며 “최근 다시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제도를 활용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해외 생산자와 중간 판매자 간 최소 두 건 이상의 독립된 판매가 있어야 하며, 이 거래들이 서로 무관한 제3자 간의 정상적인 거래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해당 물품이 미국 수입용이라는 사실과 최초 판매가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가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거래 상대방이 최초 가격 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려할 경우 수입자가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중국 닝보 지역에서 포춘 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문 활동을 해온 기업 컨설턴트 리치 테일러는 “관세를 줄이려면 수입업자와 공급자 간 신뢰가 필요하다”며 “공급업체 입장에서도 거래처를 유지하려면 이 제도 활용을 돕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경쟁사는 이 제도를 써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자신만 쓰지 않는다면 그 차이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퍼스트세일룰은 고가 소비재나 명품처럼 제조원가와 소매가격 간 격차가 큰 상품군에서 특히 유용하다는 평가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는 지난달 16일 실적 발표 당시 “퍼스트세일룰을 통해 비용 구조에 큰 이점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루치아노 산텔 몽클레르 최고기업책임자(CCSO)는 “공장도 기준 가격은 소매가에 비해 절반 수준이고, 중간 거래가보다도 낮아 매우 큰 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스위스 제약기업 쿠로스 바이오사이언스는 이달 13일 실적 발표에서 자사의 공급망 거점을 취리히로 옮기며 퍼스트세일룰 적용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으며, 미국 바비큐 제조업체 트레이거와 제조 스타트업 픽티브도 각각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이 제도를 ‘공급망 리스크 완화’ 또는 ‘관세 절감 수단’으로 언급했다.
퍼스트세일룰은 합법적인 제도지만 관세 수입 확대와 제조업 회귀(리쇼어링)를 장려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