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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조선산업 부활” 선언했지만…美 선박, 아시아보다 5배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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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조선산업 부활” 선언했지만…美 선박, 아시아보다 5배 비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조선 경쟁에서 뒤처진 미국 산업을 되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미국 내 선박 제조 비용이 아시아 대비 5배에 이르고 생산 속도도 크게 떨어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7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국은 조선 분야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조선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마련하고 특정 상업용 선박에 대해서는 미국 내 건조를 의무화했다. 여야 의원들도 조선업 보조금을 포함한 포괄적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 대기업 한화가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한 해 평균 1.5척의 선박을 만들지만 한화의 한국 내 대형 조선소에서는 일주일에 1척씩 건조된다.
한화 필라델피아 조선소의 데이비드 김 최고경영자(CEO)는 NYT와 인터뷰에서 “미국 조선산업이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지속적인 선박 발주가 전제돼야 하며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조선소는 지난해 한화가 1억 달러(약 1350억원)에 인수했지만 신규 주문은 오는 2027년까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른 미국 조선소들 역시 미 해군 발주 물량에 집중하고 있어 민간 선박 생산 여력이 없다.

미국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콜린 그래보우 부국장은 “1995년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폐쇄 이후 정부 주도로 상업용 조선업을 키우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이번 조선 부흥 시도도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 조선소는 6765척의 상업용 선박을 인도했으며 일본은 3130척, 한국은 2405척을 각각 건조했던 반면에 미국은 고작 37척에 그쳤다. 미국 내에서 항구 간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선박은 100년 넘게 유지된 ‘존스법’에 따라 미국산 선박만이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수요가 크지 않다.

현재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존스법 준수 컨테이너선 3척은 척당 3억3000만 달러(약 4455억원) 수준이며 같은 크기의 선박을 아시아에서 제작하면 7000만 달러(약 945억원) 정도라는 게 선박금융 자문업체 캐벌리어 쉬핑의 제임스 라이트본 설립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미 의회는 미국산 선박 250척과 미국 선원을 운용하는 ‘전략 상업함대’ 구성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국방부가 이를 보급선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법안을 공동 발의한 민주당 마크 켈리 상원의원은 “이번 조선·해운 산업 부흥 법안은 한 세대 만에 가장 야심찬 시도”라며 “중국의 해양 지배를 견제하는 전략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한국 등 우방국에서 제작된 선박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 CEO는 이에 대해 “미국 내 제조비용이 비싼 건 조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다”며 “조선업을 해외에 맡겨온 탓에 미국 내 생산기반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단지 비즈니스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노동, 전략적 선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화는 이미 한국에서 200척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으며 필라델피아 조선소의 드라이도크도 일부 LNG선 건조가 가능한 규모다. 그러나 김 CEO는 “생산기술을 미국에 이전하더라도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회사 측은 현재 1500명 수준인 인력을 향후 10년 안에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훈련생 규모도 내년에 24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현재 시급 22달러(약 2만9700원)를 받는 견습생도 이미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미 해군에서조차 1년 차 조선 인력의 이직률이 높다는 점에서 인력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선박에서 일할 선원 양성 정책을 확대하고 미국 선원 고용에 따른 비용을 보조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미국 해운노조인 해양기술자노조의 롤런드 렉사 사무총장은 “중국은 조선업을 완전히 보조금으로 키우고 있다”며 “미국도 화물 유인 정책을 중심으로 해운 부흥 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선박의 항로 장교들은 연간 20만 달러(약 2억7000만원) 이상을 벌고, 20년 근무 시 연금도 받을 수 있다”며 “3개월 항해 후 3개월 휴가라는 근무 환경도 가족과 함께하기에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