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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본, 영원한 가치 '금'의 재발견…자산·예술 넘어 첨단과학의 심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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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본, 영원한 가치 '금'의 재발견…자산·예술 넘어 첨단과학의 심장이 되다

불멸의 상징에서 권력의 도구로…장인의 손끝과 욕망의 다실에서 빛나다
땅속 '기적의 광산'과 폐가전 속 '도시광산'…미래 기술 핵심 소재로 거듭나
금제품이 진열된 도쿄 긴자의 SGC 갤러리. 전국 백화점을 순회하는 전시 판매회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사진=SGC 갤러리이미지 확대보기
금제품이 진열된 도쿄 긴자의 SGC 갤러리. 전국 백화점을 순회하는 전시 판매회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사진=SGC 갤러리
시간이 흘러도 녹슬지 않고 고유의 빛을 잃지 않는 희소 물질, 금. 인류는 기원전부터 금을 탐했고, 특히 일본에서는 불로불사와 극락정토의 염원,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 최근 역사적인 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금은 이제 중요한 자산 형성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아시아는 8일(현지시각) 단순한 투자를 넘어 인간이 금에 투영해 온 꿈의 역사를 추적, 보도해 관심을 끌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초, 도쿄 긴자 4초메의 한 빌딩에 자리한 금제품 제조·판매사 SGC의 비공개 갤러리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가득했다. 수십 억 엔을 호가하는 금화, 불교 용구, 식기, 인물 상품 등이 즐비했다.

일본 내 금 가격은 1g(그램)에 1만7000엔(약 15만9828원)을 웃돌며 고공행진 중이다. SGC가 금속공예품 사업을 시작한 40여 년 전 2000엔(약 1만8803원)대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매장량이 한정된 희소성과 실물이 존재한다는 안전성 때문에 금의 인기는 세계 정세가 불안해질수록 높아진다.
과거 SGC의 주 고객은 고령층이었으나 최근 몇 년 새 40~50대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쓰치야 유타카 SGC 회장은 "영원히 변치 않고 썩지 않는 금의 속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단순 금괴가 아닌 독특한 형태의 공예품 구매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는 "바라보거나 만지면서 매일 즐기는 동시에 재산이 되고, 자녀나 손주에게도 물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중량의 금괴에 비해 공예품 가격은 2~3배 더 높지만, 자산 가치를 뛰어넘는 만족감을 준다.

◇ 불멸의 염원, 예술로 피어나다


무라카미 다카시 다카오카시 미술관장은 "금의 불변성에 대한 경외심이 인류의 근원적인 불로불사 염원과 결합해 금에서 큰 가치를 찾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금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9년 무쓰국(현 미야기현)에서다. 사금 형태로 발견된 금은 도다이지 대불 도금에 쓰이며 신앙과 결부됐다. 당시 금은 극락정토의 색으로, 더없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지자 일본의 금 미술은 만개했다. 옻칠 위에 금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마키에(蒔絵)'와 도검 장신구는 그 정수로 꼽는다. 무라카미 관장은 "섬세하고 우아한 작품을 금으로 완성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기술로,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던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근대화 이후 도검 수요가 사라지며 금속 공예 장인의 맥은 거의 끊겼다. 수도권의 '이시카와 공방'은 3대째 전통을 잇는 드문 곳이다. 이시카와 고이치, 히로아키, 주에루 3대가 5~6평 남짓한 작은 공방에서 매일 묵묵히 금과 마주한다. 1년 전 합류한 손녀 주에루 씨는 "학교에서는 구리나 놋쇠를 다뤘는데, 금이 너무 부드러워 처음에는 놀랐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히로아키 씨는 "금은 가장 말을 잘 듣는다.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쉽다"고 금의 특성을 평했다.

스모의 금배(金杯) 등을 만들어 온 할아버지 고이치 장인은 "기술이 아니라 압도적인 금의 힘이 먼저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금 작업에는 실패가 없다"라며 "실패하면 녹이면 그만이고, 팔리지 않아도 원래의 금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덧붙였다. 흙이나 돌과 달리 실패를 허용하는 금의 물성이 오히려 예술가에게 대담한 도전의 기회를 주는 셈이다.

◇ 권력의 무대, 황금 다실에 담긴 욕망


회화에서도 금은 핵심 소재였다. 고바야시 유코 오카다 미술관 학예원은 "금병풍은 무로마치 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하며, 대외 무역 공물로 발전한 것 같다"고 해설했다. 사실주의를 중시한 중국과 달리 배경 전체를 금박으로 채우는 일본의 방식은 독특했다. 다와라야 소타쓰의 '풍신뇌신도 병풍’처럼 화려함이 특징이지만, 은과 조합하거나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金泥)'로 차분한 광택을 내는 등 섬세한 표현력 또한 일본 금 미술의 정체성이다.

전국시대 다이묘들에게 금은 권력의 원천이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 취미는 유별났지만, 그의 '황금 다실'은 단순한 과시욕의 산물이 아니었다.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이 2022년 복원한 황금 다실은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의 전초기지인 나고야성까지 직접 옮겨와 외교 사절 접견 등에 활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구노 데쓰야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 학예원은 "히데요시는 자신을 연출하는 데 능한 인물이었다"며 "자신의 권세와 재력을 과시하는 중요한 장면에 황금 다실을 무대 장치로 효과적으로 썼다"고 분석했다.

조명을 극도로 낮춘 복원 다실 내부는 상상 속 반짝임 대신 축축하고 윤기 있는, 오히려 와비차(佗茶)의 쓸쓸함마저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구노 씨는 "조도와 시간에 따라 고요함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로 변한다"고 말했다. 빛나는 금의 이면에 담긴 쓸쓸함은, 두 차례의 조선 출병 실패 후 급격히 쇠락한 히데요시의 운명을 투영하는 듯하다.

◇ 다시 부는 골드러시… 땅속과 도시의 '광맥'


일본에는 지금도 가동 중인 금광, 가고시마현 이사시의 히시카리 광산이 있다. 스미토모 금속광산(Sumitomo Metal Mining)이 운영하는 이곳의 금 품위는 광석 1t에 평균 20그램으로, 세계 주요 광산의 평균(3~5그램)을 압도해 '기적의 산'이라 부른다. 1985년 생산을 시작한 후 40년 간 채굴한 금은 273t에 이른다. 400년 간 83t을 생산한 사도 금광을 아득히 넘어섰지만, 광산은 여전히 확장 가능성을 품고 100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최근 금값 급등으로 과거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폐광한 일본 각지의 금광에 외국계 자본의 조사 활동이 활발해지는 등 새로운 골드러시 조짐도 보인다.

일본 스미토모금속광산의 '히시카리 광산' 지하 갱도에서 금을 캐기 위해 착암기 구멍을 뚫고 있다.사진=스미토모금속광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스미토모금속광산의 '히시카리 광산' 지하 갱도에서 금을 캐기 위해 착암기 구멍을 뚫고 있다.사진=스미토모금속광산

땅속 자원이 한계를 보이면서, 사용이 끝난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에서 금을 추출하는 '도시 광산'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도 도시 광산에서 나왔다. 국립연구개발법인 물질·재료 연구 기구에 따르면, 일본의 도시 광산에 잠자는 금은 약 5,400t으로 전 세계 금 매장량의 10%에 이른다.

1900년대부터 귀금속 재활용에 나선 다나카 귀금속 공업 쇼난 공장에는 25년 전 컴퓨터에서 회수한 반도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당시 반도체는 현재보다 금 함유량이 월등히 높아 1t에서 1만 그램 정도의 금 회수가 가능하다. 나가오카 아키오 다나카 귀금속 공업 공장장은 "유한한 것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면서 "금값 상승으로 과거 쓰레기로 버리던 폐액까지 재활용 자원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 재현된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 금박 1만6500장을 사용했다. 사진=사가현 가라쓰시이미지 확대보기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 재현된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 금박 1만6500장을 사용했다. 사진=사가현 가라쓰시

◇ 과학의 빛으로 진화하는 영원한 소재


과학계에서 금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반짝임이 아닌 '불변성' 때문이다.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특성 덕분이다. 오노 아쓰시 시즈오카 대학 교수 연구팀은 최근 금을 나노 입자로 만들어 청·녹·적색을 내는 컬러 필름을 개발했다. 금 입자의 크기를 조절해 색을 구현하는 기술로, 내구성이 뛰어나 차세대 디스플레이나 우주 카메라 등에 응용할 수 있다. 체내에 금 나노 입자를 주입해 암세포만 골라 사멸시키는 의학 연구도 활발하다.

금은 권력 과시, 신앙의 대상, 예술품, 자산을 거쳐 이제는 첨단 과학의 핵심 소재로 진화했다. 이에 대해 무라카미 관장은 "인간은 금에 자신의 욕망을 맡기며 번영해왔다"고 설명한다. 우주로, 난치병 정복으로 향하는 인류의 여정에서 금의 쓰임새는 계속 확장된다. 인류는 지구의 금을 모두 소진할 것인가, 아니면 지혜로 한계를 넘어설 것인가.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