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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훔쳤다가 형사 유죄 확정된 에버라이트, 이번엔 미국서 서울반도체에 역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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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훔쳤다가 형사 유죄 확정된 에버라이트, 이번엔 미국서 서울반도체에 역소송

대만 업체, 美 텍사스 법원에 특허 7,554,126호 침해 소송…자동차 LED 정조준
한국 대법원 벌금 6000만 원 확정 6개월 만의 반격…마이크로LED 라이선스 패권 다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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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반도체 로고. 사진=서울반도체
한국 기업의 핵심 기술을 빼내 형사 유죄 판결까지 받은 기업이, 오히려 원래 피해 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특허 소송을 낸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대만 에버라이트(Everlight Electronics)가 지난 13일(미국 시각) 서울반도체를 상대로 미국 동부 텍사스 연방지방법원 마셜 지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대만 디지타임스가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한국 대법원이 에버라이트의 기술 탈취 혐의에 대해 최종 유죄를 확정한 지 꼭 6개월 만의 역공이다.

에버라이트는 지난 22일 공시를 통해 서울반도체의 자동차용 및 고출력 LED 제품이 자사 미국 특허 제7,554,126호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사건번호 2:26-cv-00119). 에버라이트는 침해행위 금지 명령과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에버라이트는 "특허권자 이익 보호와 지속적 침해 방지를 위한 조치"라면서 "현재 평가 기준으로는 재무 상태나 영업에 중대한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왜 하필 텍사스 마셜 지원인가


에버라이트가 소송 법원으로 택한 미국 동부 텍사스 마셜 지원은 특허 소송 업계에서 '원고 친화 법원'으로 통한다. 배심원단이 특허권자의 손을 들어주는 비율이 다른 연방법원보다 높고, 예비 금지명령이 받아들여지는 속도도 빠른 편이다. 글로벌 특허 소송에서 이 법원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사례는 반도체·통신 업계에서 이미 수십 건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에버라이트가 한국 형사 판결의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 가장 유리한 법정을 골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달리 말하면, 이번 소송은 법리적 승소보다 서울반도체를 방어 모드로 끌어들여 소송 비용과 시간을 소진시키려는 압박 전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 유죄 확정된 기업의 역소송, 배경은


지난해 8월 한국 대법원은 에버라이트가 서울반도체 전직 임직원 3명을 매수해 노와이어(No-wire) 등 LED 2세대 기술과 자외선(UV) LED 관련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을 최종 확정, 에버라이트에 벌금 60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벌금 5000만 원을 2심에서 6000만 원으로 올린 뒤 대법원이 이를 그대로 굳혔다. 기술을 유출한 서울반도체 전직 임직원 3명은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3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법원은 외국 법인이라도 국내에서 범죄행위 일부가 이뤄졌다면 한국 형사재판권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기술 탈취 외국 기업에 대한 국내 형사 처벌 선례를 처음 만든 판결이었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창업자는 당시 "특허침해 기업에는 죽을 각오로 엄정히 대응하겠다"면서 "마이크로LED를 생산하려면 우리 라이선스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7년 16전 전승 기록 뒤의 더 큰 전쟁


수치로만 보면 서울반도체의 성적표는 압도적이다. 2018년부터 7년 동안 한국·독일·영국·이탈리아 등 5개국에서 에버라이트를 상대로 낸 16건의 특허 소송에서 단 한 건도 지지 않았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에서는 에버라이트 LED 제품의 판매금지와 기존 판매 제품 회수 명령도 받아냈다.

서울반도체가 보유한 LED 관련 특허는 현재 1만8000여 개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LED 관련 특허만 1000개가 넘는다. 서울반도체는 글로벌 LED 백라이트와 UV LED 분야에서 세계 1위, LED 종합 분야에서 세계 3위다.

그러나 이번 미국 소송은 서울반도체가 쌓아온 '법정 불패' 기록에 처음으로 미국 전선을 추가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미국 특허 소송은 배심원 평결,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비용 등에서 여타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부담을 양측 모두에게 안긴다.

국내 특허 전문가들은 이번 분쟁이 단순 특허 침해 다툼이 아니라 차세대 마이크로LED 라이선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시각이 많다. 마이크로LED는 스마트폰, 자동차 디스플레이, 확장현실(XR) 기기에 적용되는 핵심 소자로 시장 규모는 2030년을 전후해 수십조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누가 이 시장의 라이선스 문을 쥐느냐에 따라 LED 산업 전체의 수익 구조가 뒤바뀔 수 있다.

대법원 유죄 확정에도 에버라이트가 미국 법정에서 반격에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서울반도체가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의 위력을 상대방 스스로 인정한 결과로도 읽힌다. 텍사스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두 회사의 마이크로LED 기술 격차가 어디까지 벌어질지가 이 법적 전쟁의 진짜 승부처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