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가 먹어치운 메모리, 이젠 당신의 노트북값에 불 붙인다
이미지 확대보기레노버, 2월 28일이 마지노선…3월부터 PC 가격 공식 인상
세계 최대 PC 제조사 레노버(Lenovo)가 유통 파트너사들에 3월부터 일부 제품군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공식 통보했다. 테크레이더(TechRadar)·CRN 등 정보기술(IT) 전문 매체가 지난 24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레노버 측은 "2월 28일까지 접수된 주문만 현행 가격으로 처리하며, 이 시한 내 접수 건이라도 3월 31일까지 출고되지 않으면 인상가가 적용된다"고 못 박았다.
레노버 북미 채널 담당 웨이드 맥팔랜드 부사장은 "시장 상황 변화에 대응해 주기적으로 가격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조정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게이밍 신제품 '리전 고(Legion Go) 2' 등 소비자 기대가 높은 휴대용 PC도 당초 예상보다 높은 출시가가 책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램 쇼크' 전선 확대…델·HP·에이수스도 15~20% 인상 대열 합류
특히 델의 행보가 주목받는다. 델 최고운영책임자(COO) 제프 클라크는 지난해 11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 정도 속도로 원가가 오르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델은 이미 지난해 12월 중순을 기점으로 32GB 메모리 탑재 노트북 가격을 130~230달러(약 18만~33만 원), 128GB 구성 모델은 최대 765달러(약 11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
HP의 엔리케 로레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메모리 칩이 PC 원가의 15~18%를 차지한다"며 2026년 하반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에이수스는 올해 1월 5일부터 가격 조정을 이미 단행했다. 조립식 노트북 스타트업 프레임워크는 메모리에 이어 저장장치 가격까지 연이어 올리며 "향후 수년간 가격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이터센터가 삼킨 메모리…소비자 시장엔 찬바람
이 연쇄 인상의 뿌리는 AI 데이터센터가 촉발한 메모리 수요 폭증에 있다. 챗GPT 등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구동하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수적으로 탑재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익성이 월등한 HBM 및 서버용 DDR5 생산으로 생산 라인을 대거 전환하자, 소비자용 일반 D램 공급이 급감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공급 부족 규모는 현재 수요 대비 10%를 웃돌고 있으며, DDR5 계약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0% 급등했고 일부 품목은 170%까지 치솟았다. SK하이닉스는 내부 분석 자료를 통해 HBM·SOCAMM을 제외한 범용 D램의 공급 비트(bit) 성장이 2028년까지 제약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생산 시설이 가동되기까지 최소 수년이 걸리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단기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 소비자·수출 기업 동시에 타격받는 '이중 충격' 구조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국내 소비자의 PC 구매 비용도 함께 높인다. 국내 반도체 수출은 호조를 보이지만, 수입 완제품 가격 상승과 IT 기기 보급 둔화라는 부담이 내수 시장에 고스란히 전가되는 '이중 충격' 구조다.
HBM 칩 한 개를 생산하는 데는 일반 DDR5 모듈 대비 최대 3배의 웨이퍼 생산 설비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진율 60%를 넘는 HBM 생산에 라인을 집중 전환하면서, 소비자 PC용 범용 D램 공급량은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26년 메모리 수요는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 증가는 20%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글로벌 PC 시장 조사 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이러한 비용 압박이 반영된 결과로 2026년 노트북 출하량 전망치를 당초 전년 대비 1.7% 성장에서 2.4% 감소로 전격 하향했다. IDC도 2026년 평균 PC 가격이 최대 8% 추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호조라는 거시 지표와 소비자가 노트북 한 대를 살 때 느끼는 지갑의 무게는 같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국내 반도체 수출 호황이 무역수지에는 플러스로 잡히지만, 수입 완제품 가격 상승과 IT 기기 보급 둔화라는 형태로 내수 시장에는 찬바람이 분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반도체 생산국의 이중 충격 구조"라고 부른다.
트렌드포스는 이러한 비용 상승세를 반영해 2026년 노트북 출하량 전망치를 당초 전년 대비 1.7% 성장에서 2.4% 감소로 전격 하향 조정했다. IDC 역시 올해 평균 PC 가격이 최대 8% 추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기업의 수익 개선이라는 호재가, 최종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을 갉아먹는 악재로 순환되는 구조"라고 진단한다.
램값 급등세가 꺾이지 않는 한, PC 제조사들의 연쇄 가격 인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 애널리스트 아브릴 우는 "지금 바로 사라. 나 자신도 이미 스마트폰을 사뒀다"고 말할 정도로 구매 시점이 촉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이다호에 마이크론이 건설 중인 신규 팹(fab)이 가동되는 2027년이 공급 회복의 실질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노트북·PC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이달 안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유리하다. AI가 먹어치운 메모리 공급 공백이 채워지기까지, 화면 너머의 청구서는 계속 두꺼워질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