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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중동 의존도 80%의 역습… 'K-화학' 공급망 붕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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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중동 의존도 80%의 역습… 'K-화학' 공급망 붕괴 위기

호르무즈 봉쇄 공포에 원가 2배 폭등… 생필품 도미노 가격 인상 '비상'
정부, 미국·호주산 대체 수입 확대… 에틸렌 감산 등 산업계 고육지책
여수 국가산업단지.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여수 국가산업단지.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아시아 석유화학 산업의 실물 경제를 강타하면서 원유에서 나프타, 기초 화학제품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반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15일(현지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NHK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아시아 제조 현장의 원자재 수급 차질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석유화학 거점의 실질적인 중동 나프타 의존도는 약 80%에 육박해 사태 장기화 시 산업 전반의 가동 중단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日) 나프타 수급 '비상'… 한국 석유 화학계도 "남 일 아니다"
아시아 석유화학의 한 축인 일본의 수급 상황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수급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일본 내 나프사 총수요는 3347만 킬로리터(kl)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일본 정유사 자체 생산 물량은 40% 수준에 그치며, 나머지 60%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문제는 한국 역시 일본과 판박이인 공급망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나프타 자급률 역시 50%를 밑돌며, 수입 나프타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국내 생산 나프타의 원료인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일 양국 모두 나프타 공급망의 80%가량이 중동 정세에 저당 잡힌 셈이다.

국내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급 위기 경보는 곧 한국 화학 산업의 미래"라며 "호르무즈 해협 긴장으로 중동발 물량이 끊길 경우, 국내 12기의 에틸렌 생산 설비(나프타 크래커) 가동률 조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스팟 가격 2배 폭등… 식품·가전 등 최종재 가격 인상 도미노

닛케이는 지난달 29일 보도를 통해 원료 수급 불안이 즉각적인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나프타 가격의 지표가 되는 '도쿄 오픈 스펙' 가격은 지난달 21일 기준 톤당 1000달러(약 149만 원) 선을 위협하며 연초 대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원가 상승 압박은 공급망 하단인 최종 소비재 단계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우선 식품 및 생필품 분야의 타격이 가시화됐다.

일본의 주요 화학 기업인 크레하(KUREHA)는 가정용 식품 보관용 봉투 가격을 25~35% 이상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업계 역시 포장재 단가 상승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제품 출하가를 인상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며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모빌리티와 산업재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합성고무의 주원료인 부타디엔 가격 급등으로 미슈랭 등 글로벌 타이어 브랜드들은 국내 시판 가격을 평균 3~5% 인상했다.

아울러 건설 현장의 필수 자재인 폴리염화비닐(PVC)과 도료용 용제 가격이 동반 상승하며 건설 및 인테리어 업계 전반에 경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망 다변화 사활… '나프타 국가 비축' 공론화 필요


정부와 관련 업계는 긴급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최신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4월부터 미국, 알제리, 호주 등 비(非)중동 지역으로부터의 나프타 수입량을 기존 대비 2~3배 이상 확대할 방침이다.

한국 정부 역시 중동 외 지역으로의 수입선 다변화를 독려하고 있지만, 원거리 운송에 따른 물류비용 상승이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안보의 개념을 '원유'에서 '나프타'와 같은 핵심 중간재로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원유 중심의 국가 비축 제도를 운용해 왔으나, 정작 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자체에 대한 비축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미비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수석 연구원은 "미국 등 셰일가스 기반 경쟁국에 비해 나프타 기반의 아시아 화학 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단히 취약하다"며 "단기적인 대체선 확보를 넘어, 나프타 전용 비축 시설 확충과 같은 구조적인 공급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향후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