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 2026년 4월 발표, 韓 노동자 1만명당 로봇 1220대로 세계 6배
영구자석 88.8% 중국·구동 부품 98% 일본 의존…'성장의 역설' 심화
영구자석 88.8% 중국·구동 부품 98% 일본 의존…'성장의 역설' 심화
이미지 확대보기세계 1위 로봇 활용국이 정작 로봇을 움직이는 핵심 부품 한 개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 '왕좌'는 얼마나 견고할까.
국제로봇연맹(IFR)이 지난달 8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2019년 이후 해마다 평균 7%씩 늘었고, 세계 평균(131대)의 9배를 웃돈다.
그러나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월 25일 발간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는 이런 화려한 수치 뒤에 가려진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 기사는 글로벌 온라인 블로그 및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미디엄(Medium)의 최근 발표된 분석 보고서(CreedTec Industrial AI Analyst) 등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밀도 1위의 그늘…내수 71%, 부품 외산 의존 고착화
IFR이 지난해 9월 25일 공개한 통계에서 한국의 산업용 로봇 연간 설치 대수는 3만600대로 미국·일본·중국에 이어 세계 4위로 집계됐다. 설치 대수 2위인 일본은 생산량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반면, 한국은 71.2%가 내수로 소화된다. 국내 자동차·전자 산업이라는 두 대형 수요처에 의존한 결과다.
문제는 부품이다. KITA 보고서는 한국이 로봇 구동에 필수인 영구자석의 88.8%(2025년 기준)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정밀 감속기와 제어기 등 고부가가치 부품은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이라고 짚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제조용 로봇의 구동 부품 해외 의존도는 80.3%이며, 이 가운데 97.8%가 일본산이다. 제어부품의 중국 의존도도 95.8%에 이른다.
허정우 레인보우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로봇 안에 들어가는 기어와 모터, 센서 등이 국산화가 안 돼 있어 다른 나라 제품보다 비싸게 만들 수밖에 없다"며 "소재·장비를 만드는 회사 자체가 국내에 없고 투자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수직 통합형' 공급망과의 격차
KITA 보고서는 일본이 자원 빈국임에도 폐모터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도시광산 기술과 특수강·정밀자석 등 고급 소재 기술로 업스트림 충격을 완충한다고 분석했다.
미드스트림에서도 감속기 분야의 하모닉드라이브 시스템즈, 모터 분야의 야스카와 전기 등이 세계 핵심 부품 시장의 60~70%를 점유한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로봇 활용 역량은 뛰어나지만 핵심 소재·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며 "제조·활용 중심의 전략을 공급망 안정화 전략으로 신속히 전환하는 것이 향후 로보틱스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실력 있는 기업들이 다 뛰어들 텐데 아직은 시장이 크지 못한 상황"이라며 "시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같은 매체에서 "원천 기술 내재화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우려를 표했다.
휴머노이드 양산 경쟁과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은 부품 종속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는 분야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오는 2028년까지 연 3만대 양산 체계로 끌어올려 산업현장에 대규모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한 대에 들어가는 액추에이터만 50~90개에 이르고, 액추에이터가 전체 제조 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부품 자립이 사실상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4월 10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식을 열고 오는 2030년까지 1조원 이상을 투자해 휴머노이드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또한, 휴머노이드는 올해 15억 달러(약 2조 2500억원)에서 오는 2035년 380억 달러(약 57조원) 규모로 10년 안에 25배 성장이 기대되는 유망 산업이며 동시에 한국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돼 있어 한시라도 빨리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간 CEO&에 따르면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력은 지난해 11월 기준 선도국인 미국·중국 대비 8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국 정부는 2023년부터 휴머노이드 개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지난해 대량 생산 체계 구축에 들어갔으며, CES 2026에서는 20곳 이상의 중국 휴머노이드 제조사가 참가해 수적 우위를 과시했다.
기업의 대응 움직임…부품 내재화 본격화
부품 외산 의존을 끊기 위한 국내 대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LG전자는 CES 2026에서 모터·드라이버·감속기를 통합한 'LG 액추에이터 액시엄'을 공개하고 오는 2027년 상업화를 예고했다.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비전 시스템을 공급하고 미국 피규어 AI를 신규 고객사로 확보했다. 삼성전기는 노르웨이 알바 인더스트리스에 수백만 유로를 투자해 초소형 모터 기술 확보에 나섰다. 현대모비스 액추에이터는 차세대 아틀라스에 탑재되며 CES 직후 주가가 20% 이상 뛰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월 15일 발표한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 명단에서 신규 지정 사업장의 절반가량이 중국 기반 시설로 채워졌고, 한국기업은 신규 명단에서 빠졌다.
중국이 5G망과 데이터센터 등 국가 인프라를 깔아 공장을 '데이터 생산 거점'으로 재편하는 동안, 한국은 '하드웨어 자동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전망…'활용 강국'에서 '공급망 강국'으로
KITA 보고서는 △수요·공급 기업 간 공동 R&D 확대 △탈(脫)희토류 기술 확보 △로봇·시스템통합(SI)·사후서비스를 결합한 패키지 수출 △'클린 로봇' 신뢰성 마케팅 등 기업 차원의 4대 과제를 제시했다.
정부에는 국산화 리스크 분담, 공공 수요 창출, 도시광산 기반 재자원화 체계 고도화, K-로봇 패키지의 해외 레퍼런스 확보, 국제 표준과 정합성을 갖춘 시험·인증 체계 구축을 권고했다.
세계 1위 로봇 밀도라는 한국의 성적표는 그 자체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그 1220대가 어디서 만들어졌고, 그 안의 모터와 감속기가 누구의 것이며, 그 로봇이 만드는 데이터가 누구의 손에 쌓이느냐에 따라 다음 10년의 경쟁력이 갈리게 됐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