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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은방울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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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은방울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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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다. 신록은 푸르르고 온갖 꽃들이 만발해 생기로 충만해 있는 계절, 도심의 소공원을 산책하다가 운 좋게도 은방울꽃을 만났다. 넓은 초록 잎 사이로 마치 수줍음 타는 아가씨처럼 숨은 듯 피어 있었다. 꽃대에 매달린 작은 꽃송이를 자세히 보면 통꽃인데 여섯 갈래의 잎끝이 뒤로 살짝 말려 있다. 순백의 은방울꽃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피어 있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은은하게 번지는 감미롭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은빛 방울 소리가 들릴 듯한 착각마저 인다. ‘좋은 술은 깊은 골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처럼 감미롭고 환상적인 은방울꽃의 향기는 넓고 푸른 잎 사이에 숨다시피 고개를 숙이고 피었어도 그 향기만큼은 숨길 수가 없는 것 같다.

은방울꽃의 영어 이름인 ‘Lily of the Valley(골짜기의 백합)’은 이 꽃의 학명인 라틴어 Convallaria에서 유래했다. 라틴어의 골짜기를 뜻하는 Convallis와 백합이란 뜻의 leirion의 합성어다. 은방울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나무가 들어찬 숲속이나 숲 가장자리, 물 빠짐이 좋은 반그늘을 가장 좋아한다. 은방울꽃의 원산지는 유럽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북미 온대 지역의 산지에서도 자생한다. 서구 문화권에서 은방울꽃은 행복을 상징한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절인 5월 1일을 ‘은방울꽃의 날’이라고 해 연인끼리 은방울꽃을 주고받으며 행복과 사랑을 기원하는 전통이 있으며, 결혼식 부케나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순결’ ‘다시 찾은 행복’이다. 꽃도 예쁘지만, 꽃이 지고 한두 달 지나면 빨간색의 동그란 열매가 매달리는데, 그 모습 역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사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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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은 뿌리를 비롯한 전초가 한방에서는 강심, 이뇨, 진통 효과가 있어 심장병, 부종, 타박상 등의 치료에 이용돼온 약초이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독초이기도 하다. 잎이 산마늘(명이나물)이나 박새와 비슷한데, 은방울꽃 잎에는 콘발라톡신(convallatoxin)과 같은 강력한 독성 성분이 포함돼 있어 잘못 먹으면 심부전증을 일으켜 죽음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산마늘과 구분하는 방법은 냄새와 생김새로 알 수 있다. 은방울꽃은 잎이 곧고 튼튼하게 뻗어 있고 융기가 있는 게 특징이라면 산마늘은 강한 마늘 향이 나고, 줄기에 2~3장의 잎이 달려 있다. 혹시라도 은방울꽃을 나물로 오인해 섭취한 후 복통이나 구토, 어지럼증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어느 시인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했다. 나는 꽃을 만나는 일도 그에 못지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꽃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어떤 사람은 꽃의 향기에 매혹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꽃에 관심을 기울이고 꽃을 이해하게 되면 꽃도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된다. 비록 야생의 숲속에서 만났던 은방울꽃만큼 감동적이진 않았어도 올해도 그 예쁜 꽃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날이었다. 오래전에 썼던 ‘은방울꽃 당신’이란 시를 다시 꺼내 읽어보는 오월의 오후, 달콤하고 은은한 은방울꽃 향기가 묻어나는 것만 같다.

“내 안에 바람/ 가눌 수 없어 찾아든 오월의 숲에서/ 그대를 처음 만났지요// 어느 솜씨 좋은 조선 도공의 혼이/ 햇살과 바람으로 빚은 백자인 양/ 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황홀했지요// 내 안의 바람/ 한 줌씩 내려놓을 때마다/ 은은한 종소리로 번져나던 그대의 향기/ 나, 그 향기가 너무 좋아/ 오래도록 그 숲에 머물렀지요// 그날 이후로 어디를 가도/ 청량한 은빛 종소리 나를 따라와/ 언제라도 생각하면 내 안에/ 그대 향기 둥글게 둥글게 번져납니다.” -나의 졸시 ‘은방울꽃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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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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