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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방 안의 코끼리'와 '800파운드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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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방 안의 코끼리'와 '800파운드 고릴라'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선 과정을 지켜봤다면 몹시 서운했을지 모른다. 미국과 세계에서 항상 스포트라이트 받기를 좋아하는 그가 한국 대선에서는 거의 ‘패싱’을 당했기 때문이다. 세 번의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관세 전쟁에 대한 대책은 간단하게 거론됐을 뿐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핵심 우방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선거에서 ‘트럼프 팩터(Trump factor)가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친(親)트럼프냐, 반(反)트럼프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있다.

최근 호주 총선에서는 중도 좌파 집권당인 노동당이 보수 야당의 거센 도전을 물리쳤다. 야당 지도자인 피터 더턴 자유당 대표는 ‘호주의 트럼프’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호주에 무차별 관세 공세를 펴자 더턴 대표에 대한 지지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캐나다 총선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집권 자유당은 한때 20%포인트 이상 지지율이 뒤처졌으나 ‘트럼프 효과’로 재집권했다. 차기 총리 영순위로 거론됐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보수당 대표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한 정치 노선을 걷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트럼프가 캐나다에 가장 먼저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는 조롱을 퍼붓고 있다. 자유당을 이끈 마크 카니 총리는 ‘반트럼프’ 색깔을 한층 강화하면서 트럼프에 분노하는 캐나다 주민의 표심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6·3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무풍지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국에서 ‘방 안의 코끼리’이고, ‘800파운드 고릴라’다. 방 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거론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나 이슈를 뜻한다. 800파운드 고릴라는 그 힘이 너무 거대하고 강력해서 무시하거나 대적하기 힘든 존재를 일컫는다.

트럼프는 예측 불허 지도자다. 그가 집권 2기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국내외 정책을 하루가 멀다고 쏟아낸다. 트럼프는 ‘머니 머신’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선물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막무가내식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새 대통령이 그런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외교·안보 지형과 경제의 미래가 판가름 난다.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에서 논의하고 있는 ‘7월 패키지’에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와 자동차·반도체 등 핵심 대미 수출품의 품목별 관세를 없애거나 최소 수준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지 못하면 한국이 심각한 피해를 본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상대국과 동시다발로 협상을 계속하고 있어 다른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도 한국 새 정부의 몫이다.

한미동맹 관계 재정립과 주한미군 태세 조정 문제에도 한국의 사활이 걸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히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던 주한미군 부분 철수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대북 억지력 유지와 함께 중국 억제에 동원하려고 한다. 미 국방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중국과 대만의 군사 충돌에 대비하는 체제로 바꾸려고 한다.

6·3 대선 승자는 좋든 싫든 그 누구보다 먼저 트럼프라는 코끼리와 고릴라를 상대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가장 먼저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서두를 것이다. 새 대통령은 당장 7월 8일이 시한인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1개월 이내에 타결하거나 협상 시한을 극적으로 연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적임자를 한국의 유권자가 6·3 대선에서 가려내야 한다. 트럼프는 조건만 맞으면 새 대통령과 얼마든지 거래를 할 것이다. 기회는 위기와 함께 온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