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유혹에 이끌려 집을 나선다. 담장을 타고 오른 새빨간 장미가 꽃 타래를 이루며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매혹적이다. 어느 작가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삭막해지는 까닭은 지나친 속력으로 인해 가까운 이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복이란 저 멀리에 있는 풍경에서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숲은 오랜 내 삶의 한 부분이지만 꼭 숲에 가야만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밖만 나서면 자연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손짓한다. 굳이 붉은 장미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주변에서도 수많은 꽃을 볼 수 있다.
장미꽃이 만발한 초등학교 담장 밑엔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민들레의 생명력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민들레는 어디서나 매우 흔하게 보이는 여러해살이풀로 바닥에 딱 붙어서 꽃대 대여섯 개가 쏙 올라온다. 톱니 모양의 잎새와 눈에 확 띄는 노란 꽃이 인상적이다. 특히 꽃이 지고 나면 솜털 같은 깃이 달린 씨앗들이 한 올 바람에도 널리 퍼지며 영역을 넓혀 간다. 생명력이 강하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과 ‘감사’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민들레는 민들레, 흰민들레, 좀민들레, 서양민들레, 붉은씨서양민들레, 흰털민들레 등이 있다. 도시화가 이루어진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는 대부분이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다. 토종 민들레는 ph가 좀 더 낮은 중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데 반해 서양민들레는 ph가 높은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장미는 장미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저마다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며 이 땅에 살아왔다. 만해 한용운이 “님만 님이 아니라 모든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듯이 우리가 마음 주는 모든 존재는 사랑하는 ‘님’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민들레와 장미꽃을 두고 어찌 아름다움에 차별을 둘 수 있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만이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한결 따뜻하게 바뀔 것이다. 장미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세상을 장미로만 채울 수는 없다. 민들레와 안개꽃이 함께 있을 때 장미의 아름다움도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양극화되는 현실에서 세상은 메이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란 사실을 자연을 통해 깨닫는다. 낮게 깔린 기류를 타고 진한 밤꽃 향기 번지는 유월, 초록 숲이 그립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