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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타인을 앎은 지혜이고, 자신을 앎은 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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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타인을 앎은 지혜이고, 자신을 앎은 밝음이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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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개가 개 마음을 알고, 여우가 여우 마음을 안다. 성자는 성자를 알아보고, 사기꾼 도둑은 사기꾼 도둑을 알아본다. 천성이 같은 사람끼리는 언행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은 선량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방을 선하게만 보고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청개구리가 나뭇잎에서는 녹색으로 변하고, 땅에서는 흙색으로 변하는 것은 먹이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위장술이다. 하지만 인간의 위장술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먹이사슬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심중을 알아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관상학이 생겨났을까. 관상학이 나름대로 훌륭한 지혜이긴 하지만 마음먹고 속내를 숨기는 위장술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혜가 뛰어나 위나라 대장군이 된 방연이란 자가 자신보다 지혜가 뛰어난 제나라 손빈이란 사람을 모함해 슬개골(무릎뼈)을 도려내는 형을 가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약점을 잡아 죽이려고 온갖 꾀를 다 짜냈다. 그 사실을 간파한 손빈은 미치광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슬개골이 없어 두 손으로 기어다니며 돼지우리에서 잠을 자고 돼지 똥을 먹는 등 누가 봐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방연이 그런 손빈을 오래도록 관찰해보니 미친 것이 틀림이 없어서 마음을 놓고 경계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때를 기다려온 손빈은 야밤에 타인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위나라와 적대적인 제나라 대장군의 책사가 되어 방연의 군사와 싸워 이겼다. 그리고 방연을 무자비하게 죽여 복수했다는 이야기다. 시기·질투와 탐욕 등에 이성을 잃으면 불꽃에 뛰어들어 제 몸을 태워 죽는 불나방처럼 자신을 바르고 밝게 볼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해 상대방을 해하고 그 위에 우뚝 서려는 지혜를 짜내는 데에만 골몰하므로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방연이 만약 자기의 행위가 옳지 못함을 알고 시기·질투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원한을 사지 않았을 테고 자신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제 잘난 줄만 알고 우매해진 자신을 밝혀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밝고 맑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밝게 비추어 볼 수 있으므로 상대방을 해하고 자신까지 망치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가 말했다. 타인을 앎은 지혜이고, 자신을 앎은 밝음이라 한다. 타인을 이기는 것은 힘이고, 자신을 이기는 것은 굳센 것이다. 부자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굳센 자는 뜻을 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잘 먹고 운동으로 근육을 기르면 힘으로 이기고, 언변을 연습하면 말재주로 이기고,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으로 이기고, 거짓말을 잘하면 거짓으로 이긴다.

그러나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기는 자 위에 뛰는 자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 재능을 믿고 겸손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를 입는다. 하지만 이기는 것도 정도가 있다. 자기 자신을 이기면 해를 입지 않으며 오히려 위대한 승리자가 된다. 겸손할 줄 알고 참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기는 자를 현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속에 탐착(貪着)한 자는 자신을 반추해 밝혀 보지 못한다. 만족과 겸손, 도리를 지킬 줄 아는 지혜가 사라지고 우매해져서 눈을 감고 험한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따라서 탐욕과 과신 따위를 극복하는 차원 높은 정신적 도야를 위한 의지를 쉽게 무너뜨리고 자멸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 누구나 밝음에 이르겠다는 발심(發心)을 수십수백 번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쉽지 않은 일 중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넘어선 최고의 밝음으로 성인이라 부를 만한 조건을 성취한 자만이 가능하다. 설사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격 도야를 위해 자신과의 약속을 웬만큼 지키기만 해도 노자가 줄곧 강조해온 밝음에 이른 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웬만한 경지에 가까워지기만 해도 삶과 죽음을 초월하므로 죽어도 죽지 않는 자가 된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