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젠슨 황의 고백과 '앨리스 황'이라는 물음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 나라의 '깐부'였다. 서울의 치킨집에서 시민들에게 닭을 나눠 주고, 삼겹살집에서 소맥을 단숨에 비우던 엔비디아의 수장이었다. 검은 가죽 재킷은 기술 낙관주의를 상징하는 옷이었고, 그의 소탈한 웃음은 시가총액 수조 달러 기업의 가장 친근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 한 통 앞에서 무너졌다.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이 내놓은 문장치고는 지나치게 짧았고, 또 지나치게 무거웠다.
고백만이었다면 사생활의 영역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문제는 상대다. 메모에는 이름이 없었지만 미국 언론은 일제히 한 사람을 지목했다. 앨리스 황, 중국명 황러. 젠슨 황과 성만 같을 뿐 혈연 관계는 없는 중국 국적의 기업인이다.
미국 정보당국의 판단은 한층 무겁다.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29일 처음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국은 앨리스 황이 중국 국가안전부에 포섭돼 젠슨 황에게 접근했다고 본다. 이 판단은 지난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메모로 보고됐고, 그 메모에는 두 사람의 연인 관계까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행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 시간표를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보도 직후 엔비디아는 CEO가 해마다 수천 명의 고객사 경영진을 만난다며, 두 사람의 만남을 통상적인 비즈니스로 규정했다. 젠슨 황 본인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메가스피드와 관련된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일축했다. 그로부터 열흘 남짓 만에 말이 뒤집혔다. 정상적이라던 관계가 혼외 관계였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사회는 그가 외국 정보 활동의 표적이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독립 조사에 들어갔다.
이 지점에서 사안의 본질은 불륜에서 신뢰로 옮겨 간다. 한 사람의 부정(不貞)은 그 가족이 감당할 고통이다. 그러나 세계 AI 인프라의 심장을 쥔 경영자가 첩보 요원으로 의심받는 인물과 사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 사실을 처음에는 부인했다. 이것은 주주와 동맹국, 나아가 기술 질서 전체가 떠안아야 할 위험이다. 엔비디아 이사회는 국가 안보나 회사 기밀이 침해됐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볼 이유가 없다'는 말과 '침해가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말 사이에는 아직 조사라는 긴 강이 흐른다.
워싱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원 공화당 상임위원장 세 명은 오는 18일 비공개 브리핑에 출석하라고 그에게 요구했고, 민주당에서도 조사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여전히 존중한다면서도 의혹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비판의 칼끝은 젠슨 황 한 사람만을 겨누지 않는다. 보고를 받고도 움직이지 않은 행정부 역시 그 대상이다.
한국이 열광했던 젠슨 황의 소탈함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소탈함과 경계심의 부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는 메모에서 회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 책임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는 일은 이제 이사회와 의회, 그리고 시간의 몫이다. 가죽 재킷은 여전히 그의 어깨에 걸려 있다. 그러나 그 재킷이 상징하던 흠 없는 신화는, 적어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