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내달 1일부터 3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세계 최대 무역 파트너인 두 나라 간 협상이 중단 위기에 몰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브뤼셀과 미국 간 최대 무역관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독일 자동차·아일랜드 제약·프랑스·이탈리아 와인 ‘직격탄’ 우려
EU는 27개 회원국, 4억5000만명 인구를 대표해 공동 무역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수출국으로 꼽힌다.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인 마로시 셰프초비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은 세계에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두 경제권의 교역을 사실상 ‘금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EU의 미국 수출 1위 품목은 의약품, 승용차, 항공기, 기계류 등으로, 독일의 경우 자동차·의약품·항공기 부문에서만 약 27억2000만 달러(약 3조7650억 원)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번 관세 위협이 독일 수출 산업에 ‘핵심적’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먼 맥키버 아일랜드 수출협회장 역시 “관세율이 10%냐 30%냐는 미국의 협상 전략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에 밝혔다.
◇ EU “보복관세 준비”…항공기·위스키 등 타깃
EU는 독일차, 프랑스·이탈리아 와인 등 주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협상을 이어가는 동시에 협상 결렬 시 미국산 보잉 항공기, 버번위스키, 가전제품, 육류, 대두 등 1000억 달러(약 13조8500억 원) 규모의 보복관세 대상 리스트도 마련해둔 상태다. 특히 EU는 미국 주요 공화당 정치인의 지역 기반 상품과 대체 수입이 가능한 품목을 중심으로 보복 리스트를 꾸렸다.
실제로 EU는 미국과 서비스 무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데 일부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 기술기업 등을 겨냥한 보복 카드를 제안하고 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EU는 미국과 ‘원칙적 합의’에 근접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으로 협상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 와인·위스키, ‘감정의 전장’…정치적 상징까지 확전
트럼프 대통령이 EU산 승용차뿐 아니라 의약품, 와인·위스키 등 민감한 품목까지 겨냥하면서 프랑스·이탈리아는 미국산 위스키에 대한 보복을 두고 신중한 입장이다.
수출 주력품이자 국가 정체성의 상징인 와인·위스키가 무역 갈등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이른바 ‘감정의 전장’이 될 조짐이다. 한편, 이탈리아산 와인과 증류주 수출은 이미 최근 몇 달 새 미국 수출이 둔화됐다.
유럽 전체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경계하는 가운데 EU는 미국과의 관계 유지와 산업 보호 사이에서 복잡한 셈법에 나선 모습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