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氣는 틈이 없어도 스며들어 베푼다

글로벌이코노믹

[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氣는 틈이 없어도 스며들어 베푼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43장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석가모니는 지극히 평범한 삶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 네 가지 운명의 고뇌를 뛰어넘기 위해 6년 고행 끝에 일체를 초월한 붓다(Buddha)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태어나 삶의 영위 과정에서 '무엇 때문에 늙고 병들어 죽는가?'에 대한 그 숙명적 원인을 고뇌하는 화두도 없었고 의혹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또 한 사람 성인이라 칭송받는 공자(孔子)는 일찍이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가지 운명(命)을 '하늘의 뜻'이라 했다. 그리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이어받아 성자(聖者)로 존중받는 맹자(孟子)는 하늘의 뜻을 알린다 또는 교육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사람의 명을 하늘의 뜻이라 하니 쉬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옛사람들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무슨 일이건 잘되어도 하늘의 뜻, 못되어도 하늘의 뜻이라며 결과를 매듭짓는 것으로 보아 자기만족이나 절망의 탄식을 뜻하는 말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본래 화두란 것이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생각과 생각이 이어지다가 반드시 답은 얻어지는 법, 생각을 깊이 계속하다 보면 명의 존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심오하지도 난해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늘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데도 의식할 필요조차 없어서 까맣게 잊고 사는 밤낮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고 있어서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거기다가 자연을 변화시켜서 삶과 병듦과 죽음을 주관하는 절대적 존재란 사실까지 깨달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에 나는 그 존재를 하늘의 절대 권력자라 명명(命名)한다. 더욱이 인간에게 운명의 사슬을 덮어씌워 고통스러운 삶의 수레를 끌게 하므로 운명의 지배자라고도 한다.

생각해보자. 사시사철 봄·여름·가을·겨울을 변화시켜 사람을 늙게 하고 병들어 죽게도 하니 무서운 지배자다. 천지자연을 변화시키는 힘의 존재에 대해 동양의학 원전 '황제내경' 소문 편에 자세히 실려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그것을 사시(四時)라 규정하고 사시가 “천지의 도(道)”라고 했다.

사시란 봄·여름·가을·겨울을 뜻한다. 그리고 사계절을 변화시키는 힘의 실체를 풍(風)·습(濕)·서(暑)·조(燥)·건(乾)·한(寒) 등 여섯 가지 기운(六氣)이라 했다. 이 여섯 가지 기가 밤과 낮과 계절을 변화시키는 천지의 도이며, 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의 뜻을 품은 절대적 힘의 존재인 것이다.

도덕경에서 노자는 그것을 도의 기(氣)라 하고, 기는 틈이 없어도 스며들어 자연을 변화시킨다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가장 부드러운 것(氣)은 가장 견고한 곳으로 달려가고 도의 기운은 틈이 없어도 스며든다. 나는 무위한 도의 유익함을 알고 말없이 가르치려 한다”라고 했다.

기란 도의 쓰임새이자 도의 무위한 성질과 작용이다. 예를 들면 물안개나 수증기는 수기(水氣)다. 이처럼 만물은 자체 성분과 성질과 작용을 머금은 기의 집합체로서 스스로 쓰임의 존재가 되어 만물의 기틀이 된다. 만물의 기틀이 되므로 사계절이 자연을 변화시키듯 인간을 비롯한 일체의 삶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주관한다. 그러기에 노자는 도의 무위한 쓰임새에 대해 말하기를 "무위의 이익이 희귀하게 온 누리에 소리 소문 없이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습성이 있다. 도는 기이고, 기는 기후와 바람과 숨과 에너지를 함축한 최소 단위 물질이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천하 어디든 빠짐없이 스며들어 인간의 운명을 비롯한 자연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아무리 두터운 물건을 물샐틈없이 둘러쳐 놓아도 도의 기는 스며들어 가 만물을 새롭게 탄생시키기도 하고, 병들게도 하고,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