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상과학 로봇 현실로…실리콘밸리 두 거물 미래 먹거리 경쟁
테슬라, 800만대 차량 데이터로 '옵티머스' 훈련…메타, '1인칭 시점' 영상으로 맞불
테슬라, 800만대 차량 데이터로 '옵티머스' 훈련…메타, '1인칭 시점' 영상으로 맞불

한때 콜로세움에서 실제 격투기 시합을 벌일 뻔했던 두 사람의 경쟁은 이제 인간형 로봇이라는 새로운 전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두 기업의 차세대 인간형 로봇 개발 경쟁은 기술 발전과 시장 주도권 확보라는 측면에서 실리콘밸리판 '스티브 잡스 대 빌 게이츠' 경쟁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경쟁은 각자의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2023년 메타가 머스크의 X(옛 트위터)를 겨냥해 내놓은 텍스트 기반 소셜미디어 '스레드'가 그나마 경쟁에 구체성을 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저커버그의 메타와 머스크의 테슬라가 인간형 로봇 시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술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AI, 공상과학을 현실로 이끌다
인간형 로봇은 일론 머스크의 화려한 쇼맨십 덕분에 기술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오랫동안 공상과학의 영역에 머물렀던 이 기술은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현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과거의 로봇이 상자를 쌓는 등 특정하게 프로그래밍된 작업만 수행할 수 있었다면, 현대의 AI 로봇은 인간의 행동을 보고 스스로 학습하며 작업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한다.
앱트로닉(Apptronik)의 제프 카데나스 공동창업자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기본적으로 이제 우리가 아주 빠르게 수많은 새로운 작업을 추가할 수 있게 되어 무엇이든 가능한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일과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데이터 확보 전쟁: 테슬라의 '눈' vs 메타의 '안경'
많은 전문가가 테슬라를 로봇 혁명의 선두주자로 꼽는 까닭은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컴퓨터 비전'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 도로 위를 달리는 800만 대의 테슬라 차량은 실시간으로 방대한 양의 주행 영상 데이터를 수집하며 AI 시스템을 훈련시킨다. 머스크는 이 기술을 인간형 로봇으로 확장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옵티머스는 이렇게 수집한 방대한 3인칭 관찰 영상 데이터로부터 인간의 행위를 학습해 작업 수행 능력을 고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5월, 테슬라의 밀란 코바치 당시 부사장은 자사 로봇 '옵티머스' 개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옵티머스가 인간이 작업을 수행하는 인터넷 영상에서 바로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 영상들은 종종 임의의 카메라로 촬영된 3인칭 시점 등입니다. 우리는 최근 그 여정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으며, 이제 인간 영상에서 얻은 학습의 상당 부분을 로봇으로 직접 이전할 수 있습니다(현재는 1인칭 시점)."
바로 이 지점에서 저커버그의 'AI 안경'이 머스크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다. 메타는 AI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 글라스(최근 레이밴과 협업)를 통해 사용자가 보는 세상을 1인칭 시점으로 녹화, 로봇 훈련에 필수적인 고품질 영상 데이터를 대규모로 확보할 혁신적인 수단을 마련했다. 또한 '프로젝트 아리아' 같은 연구용 증강현실(AR) 글라스를 통해서도 AI와 로봇 개발에 필요한 영상과 음성 데이터를 꾸준히 확보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애덤 조나스 애널리스트는 메타가 2년 안에 전 세계적으로 2000만 개의 AI 안경을 보급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때 도로 위를 달릴 것으로 예상하는 테슬라 차량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조나스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모든 메타 안경 사용자는 디지털 옴니버스에서 수십억 개의 시나리오에 걸쳐 시뮬레이션된 인간형 아바타를 훈련시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커버그의 AI 안경은 로봇이 현실 환경에서 학습할 '생활 밀착형' 데이터를 공급하는 금광으로 평가받는다. 메타 AI가 사용자에게 저녁 식사 준비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하는 동시에,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로봇에게 실제 세계에서의 작업 수행 방식을 가르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은 로봇을 개인의 삶을 돕는 보조자이자 생활 동반자로 발전시키려는 저커버그의 비전과 맞닿아 있다.
미래 건 베팅…"투자 안 하는 게 더 큰 위험"
메타의 로봇 공학에 대한 야심은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단행한 공격적인 인재 영입이 이를 증명한다. 메타는 GM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의 마크 휘튼 전 CEO를 영입해 새로운 로봇 부문을 총괄하도록 했고, MIT에서 '치타 로봇' 개발로 명성을 얻은 김상배 교수를 영입해 로봇 설계와 AI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메타의 이런 행보는 AI와 확장현실(XR) 기기 개발로 축적한 기술력을 로봇 공학으로 집결시키려는 큰 그림의 일부다. 메타의 앤드루 보즈워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6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웨어러블 기기와 로봇 기술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항상 켜져 있는 AI를 생각하고 있다면, 카메라와 마이크를 사용하여 직면한 상황을 평가하고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당신의 조수가 되는 것, 사실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동일한 종류의 패키지를 가진 것과 꽤 유사합니다."
머스크는 2040년까지 인간형 로봇 수가 100억 대에 이를 것이라며, 로봇 산업이 노동과 생활 전반을 혁신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에 맞서 저커버그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AI 안경이 그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AI 거품에 대한 우려에도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만약 우리가 수천억 달러를 잘못 쓰게 된다면, 그것은 물론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반대편의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너무 느리게 구축한다면... 역사상 가장 새로운 제품과 혁신,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유리한 위치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메타는 AI와 로봇 분야에서 초기 단계이지만, AI 기술 스타트업과 협력을 확대하며 초지능 구현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테슬라가 기술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로봇 시장에서의 최종 성공은 앞으로의 개발 속도와 실생활 적용 능력에 달려 있다. 두 회사의 경쟁은 AI와 로봇 분야의 혁신과 투자를 가속하고 앞으로 기술 트렌드와 시장 지형을 크게 바꿀 가능성이 크다. 두 거물의 대결이 2020년대 후반 IT 업계의 지형을 결정할 최대 기술 경쟁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