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요금 눈덩이, 엔터프라이즈 ‘비용 폭탄’ 경고…국내 기업 저비용·혼합형 전략 모색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을 도입한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비용 총량에 직면하면서 거대언어모델(LLM) 공급사를 상대로 변심하기 시작했다. 생산성 향상 폭보다 데이터 사용량에 비례해 급증하는 토큰 요금 부담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고가 폐쇄형 모델 중심의 시장 구조 속에서 중국계 저비용·오픈소스 모델이 빠르게 점유율을 넓히는 양상이다. 이는 기업공개(IPO)를 앞둔 오픈AI와 앤스로픽의 가치평가 정당성을 흔든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투자자와 기업들에게도 리스크와 기회를 함께 던지고 있다.
스페인 테크 매체 엘 콘피덴셜은 5일(현지시각) 보도에서 대기업들이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 폭탄을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매체 라 인포르마시온 역시 미국 인공지능 거두들이 고가 전략 때문에 중국 기업에 약점을 잡혔으며, 시장은 모델의 지능보다 수익 창출 능력을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토큰 비용 ‘임계점’ 도달…기업들 비명
스위스 투자은행 UB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60%가 인공지능 지출 억제에 이미 들어간 상태다. 보고서는 저비용 모델이 코딩·검색 보조·텍스트 요약 등 반복 업무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해 미국 프런티어 모델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짚었다.
재무책임자들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두고 굳이 비싼 미국산 모델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중국계 오픈소스의 가격 공습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계 진영의 공세는 매섭다. 중국 인공지능 기업 Z.ai의 'GLM-4.5'는 입력 100만 토큰에 0.11달러, 출력 100만 토큰에 0.28달러 수준으로 요금을 책정했다. 미니맥스의 'M2.5', 딥시크, 큐웬, 키미 등도 입력 기준 0.1달러대, 출력 기준 0.2~0.3달러대 범위로 묶여 가격 파괴를 주도한다.
과거 100만 토큰에 10~15달러 수준이었던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은 최근 경쟁 압박으로 기업용 토큰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과 비교하면 최소 수배 이상의 격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중국계 오픈소스 모델은 기업이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를 빌려 쓰는 대신, 회사 건물 안이나 전용 데이터센터에 직접 서버를 사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온프레미스(로컬 배포) 도입이 가능해, 데이터 주권과 보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기업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했다.
고평가 미국 AI, 수익성 시험대
이러한 가격 전쟁은 상장을 준비 중인 오픈AI와 앤스로픽에 대형 악재다. 현재 시장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의 가치평가를 8000억~9000억 달러(약 1223조~1376조 원)대 수준으로 거론하고 있다.
연간 매출 추산치가 수십억 달러 수준임에도 1조 달러(약 1529조 원)에 육박하는 가치가 책정된 셈이다. 이러한 몸값은 높은 진입장벽과 기술 우위가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그러나 매출 성장세보다 인프라·전력·인공지능 반도체(GPU) 비용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구조 흐름이 뚜렷하다. 모건스탠리 보고서 추정치에 따르면 오는 2028년까지 글로벌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에 누적 2조 9000억 달러(약 4435조 원)가 들어간다.
골드만삭스 역시 올해 관련 설비투자가 연간 7650억 달러(약 1170조 원)에 이르고 2031년에는 1조 6000억 달러(약 2447조 원)까지 불어난다고 예상했다.
천문학적 자본지출(CAPEX)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서비스 단가가 급락하면 월스트리트는 이들 기업의 상장 스토리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시기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통신 인프라 투자가 결국 중장기 플랫폼화에 성공하며 살아남았듯, 이번 투자 역시 중장기 수익성과 현금흐름 확보 여부에 따라 생존자가 갈릴 전망이다. 가격 인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사업자는 도태 위기에 직면한다.
한국 기업의 선택지는 ‘혼합형 전략’인가
미국과 중국의 기술 가격 전쟁은 국내 산업계에도 즉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카카오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은 투자 회수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비용 통제 역량 확보에 나섰다.
국내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미국 프런티어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며 거대 기술기업의 가격 인하 정책을 기다리는 방안이다. 둘째, 보안이 중요한 핵심 업무에는 고가 모델을 쓰고 반복 업무에는 중국·오픈소스 모델을 조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다. 다만 중국계 모델 활용 시 대미 수출 규제나 데이터 국경, 보안 규범 등 규제 리스크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셋째, 가벼운 오픈소스 모델을 기반으로 자체 미세조정을 거쳐 로컬 서버에 배포하는 방식이다.
기술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 투자회수는 모델의 절대성 성능보다 토큰 단가와 운영 효율을 결합한 비용 통제 역량에 좌우될 것”이라며 “무조건 성능이 높은 최상위 모델만 고집하기보다 업무별로 적정 성능과 최저 비용 모델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거대언어모델 운영(LLMOps)과 라우팅 전략이 국내 산업계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업무라도 어떤 모델을 언제, 어떻게 불러 쓰느냐가 비용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