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0 10:03
겨울이 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단풍잎들을 종일 적셨던 비가 그치자 어디선가 찬바람이 몰려와 세상은 곧장 겨울로 치달았다. 사람들은 두터운 코트와 패딩 점퍼를 꺼내 입고 다시금 찾아온 겨울을 익숙하게 맞이했다. 포항을 뒤흔든 지진으로 수능이 한 주 연기되었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철학이 우리 사회의 온도를 높여 주는 따뜻한 경험을 공유했다. 세월호의 마지막 장례식에서 함께 울면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했다. 다수의 편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소수를 배려하여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 공공을 위한 참 가치임을 깨달았다. 겨울이 와도 우리의 세상이 결코 차갑게 얼어붙지 않을 수 있음을 확2017.11.06 15:05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안다. 하지만 누군가가 물어 그것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시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영화 <오두막(The Shack, 2016)>은 관객들에게 시간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에서 교통사고의 시점은 두 개로 나뉜다. 주인공 맥은 오두막에서 신비한 경험을 통해 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고 더 큰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다. 사람들에게 그 사고는, 맥이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 일어났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맥은 오두막에 도착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만이 사람들의 사실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시간2017.10.23 13:41
다시 가을의 끝에 선다.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霜降)’을 지나 겨울의 문턱을 향해 걸어가는 단풍의 뒷모습은 사라져가는 모든 것 저마다의 일생처럼 화려해서 쓸쓸하다. 생명은 피어서 아름답고 지어서 아련하다. 낙엽들이 쌓여 가면 한동안 허전해질 하늘을 국화꽃 향기가 채울 것이다. 국화꽃은 그렇게 떠나는 자와 남은 자 모두를 위로한다. 서리에 국화꽃마저 지고 나면 꽃송이를 닮은 함박눈이 이따금 찾아와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눈이 쉬는 날이면 훌쩍 넓어진 공간으로 바람이 혹독한 겨울을 거침없이 풀어놓을 것이다. 물질로 화려하게 세상을 장식했던 자연은 다시 그 물질을 거두어 죽이고 있다. 죽어야 사는 이치를 가2017.10.09 14:31
사상 최장의 연휴가 끝났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했던 사람들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 안에서 일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속속 복귀했다. 돌아오는 마음이야 어떠하든 사람들의 몸은 다시 일상을 오갈 것이다. 세상을 특별히 밝게 비추었던 달빛은 이지러질 것이고, 달빛에 물들었던 나뭇잎들은 차례로 고개를 떨굴 것이다. 낙엽들이 흙을 덮으면 자연은 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휴식을 생략한 적 없는 자연은 휴식 뒤의 눈부신 생기와 활력도 어긴 적이 없다. 축구판이 시끄럽다. 연휴 기간 중 러시아에서 벌어진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에 대한 기사마다 축구팬들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댓글 안에서2017.09.26 17:08
긴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둔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넘쳤다. 제수용품과 선물을 미리 장만하려는 사람들과 휴일의 간식거리며 반찬 따위를 쇼핑하러 나온 사람들이 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을 좋아하는 개와 함께 그 틈을 비집고 다녔다. 시간은 흘러 다시 명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절이 익어가는 뒷산에도 있었다. 풀이 단정하게 정리된 산책로를 벗어나 사람들은 풀섶을 뒤지며 도토리를 찾았다.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굳이 다람쥐들의 먹이까지 샅샅이 긁는 사람들의 심리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소유자의 동의 없이 산채나 약초, 도토리, 밤, 버섯 등을 채취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2017.09.13 08:01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가을비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뭇잎들의 몸이 옅어졌다. 다녀갈 때마다 나뭇잎들의 생기를 돋우던 봄비와는 다른 가을비의 작용이다. 가을볕과 가을비가 곡식들의 마지막 낱알까지 통통하게 익혀 바지런히 수확을 끝내고 나면 며느리들은 간만의 친정나들이를 떠나곤 했다. 가을비를 바라보는 며느리들의 눈에 친정에 대한 그리움은 날마다 새록새록 짙어졌을 것이다. 가을비 내리는 출근길에 친정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며느리들을 떠올릴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임을 안다. 저마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고 먹고 사는 일로 몸과 마음이 고단할진대 흘러간 시절의 며느리들의 소회 따위가 빗속을 뚫고 마음을 파고들2017.08.28 14:11
윤봉길 의사께 인사를 드렸다. 일주일간의 상하이 여정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섭씨 36도에 달하는 무더위에 그늘로 숨어든 바람마저 기진맥진한 8월 상하이의 오전, 훙커우에서 이름을 바꾼 루쉰 공원의 한쪽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1층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의 윤봉길 의사 흉상 옆으로 세로로 쓰인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한 공간에 홀로 서서 깊이 고개 숙였다. 가벼운 삶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전시관을 물러나와 발길을 돌리기 전 다시 한 번 두 손을 모았다. 그의 짧은 생의 무게가 가슴을 눌렀다. 사람은 죽음2017.08.15 10:42
부산에 다녀왔다. 토요일 이른 아침, 후배와 함께 날아간 김해공항에는 선배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가운 해후, 선배의 차를 타고 곧장 이름난 돼지국밥집으로 이동해 반주를 곁들여 허기를 해결했다. 고슬고슬한 쌀밥과 정갈한 반찬이 진한 국물 맛을 깊게 했고,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주말 한낮의 소주를 나누는 사람들의 미소가 술맛을 달게 했다. 숙소가 있는 송정해변으로 건너와 한 커피숍 2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는 말도 통한다. 휴가철 끝의 태양 아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연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인연은 사연을 만든다. 공동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새처럼 지저귀었다.2017.08.03 06:59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3년만의 일이다. 몸살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두꺼운 이불을 덮은 채 온몸에 땀을 흘리며 길게 하룻밤만 자면 돌아왔던 컨디션이 3일이 지나도록 심해지기만 했다. 예기치 않은 밤샘으로 몸이 무력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름 감기는 땀을 좇아 몸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다. 감기를 몰아내기 위해 몸은 계속 열을 올렸다. 감기에 걸려서 좋은 점은 잊고 지냈던 감기의 고통을 재 경험 하는 데 있다. 감기에 걸려 봐야 “그러니까 이불 잘 덥고 자랬지?”라고 아이에게 훈계했던 것을 반성할 수 있다. 아무리 이불을 걷어차고 자도 걸리지 않을 수 있고, 잘 덮고 자도 걸릴 수 있는 것이 감기임을 안다면 감기 걸린2017.07.03 18:08
지상의 물을 데려가 담아둔 거대한 물 풍선이 터진 듯 하늘은 밤새 비를 퍼부었다. 사람들을 그토록 애타게 하더니 움켜쥔 물을 되돌려주는 방식이 화끈하다. 천둥과 번개가 장단을 맞춘 굵은 빗소리로 도시의 밤은 간만에 시원했다. 폭우로 느닷없이 불어난 물에 다리가 끊기고 등산객들이 고립되었다가 구출되는 뉴스는 옛 것의 복사본인 양 되풀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화창해진 하늘에서 다시 뜨거운 빛이 쏟아졌다. 어느새 모여든 먹구름으로 빛이 점멸을 반복할 때마다 도시에도 그림자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빛은 빛대로 비는 비대로 세상에 온다. 우리도 우리대로 저마다 이 세상에 와 있다. 빛은2017.06.21 09:37
시간은 직선으로 공간 위를 흘러간다. 우리의 공간에서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끌고 앞으로만 달려간다. 일직선의 시간 위에서 공간은 주기적으로 모습을 바꾸며 물질을 만든다. 생명은 물질을 먹어 에너지를 얻으며 생왕쇠멸(生旺衰滅)한다.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변화를 만들고 변화하는 공간이 물질이자 생명인 우리의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이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던 영화 ‘매트릭스’ 속 대사처럼 자연의 법칙은 우리 모두의 끝을 예비한다. 시간은 우리를 공간에 던지고, 공간에 머물다 공간을 떠나 우리는 다시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한결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시간이 정해 놓은 순서에2017.05.24 14:20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불세출의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말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는 대부분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으로 인해 발생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오만한 내뱉음.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계산된 언어로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누군가를 사로잡기 위한 몸짓으로 허공에 외치는 공허한 말들은 지나고 나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깊어서, 사랑이 깊고 믿음이 깊어서 가슴에 품었던 그 말들은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고, 혈관을 태우는 독이 되어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오랫동2017.05.08 14:56
초속 11.2㎞, 중력을 이기고 지구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지구 탈출 속도’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4만320㎞이니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1시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빠르기의 로켓 정도는 가져야 한다. 로켓이나 우주왕복선은 돈이 없어서 살 수 없고 사 봐야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중력의 포로다.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에 묶인 채 지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일은 따라서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이 지구를,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안에 떠나야 한다고 스티븐 호킹 박사가 경고했지만 그가 열거한 위기 요인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탈출하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주공간의 무한함은 곧2017.04.24 09:01
무리한 술자리 끝에 배에 탈이 나 며칠간 화장실을 끼고 살았다. 숙변을 제거하는 소득이야 있다지만 온몸의 기가 빠져나간 듯 몸은 무력해졌다. 3일 만에 처음으로 속이 좀 진정되는 듯한 기분에 혀끝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맛을 따라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아 자장면을 시켰다. 급격히 찾아온 허기를 달래는데 기억 속에 달달하게 저장된 자장소스의 맛만 한 것이 없기도 했겠지만 문득 최근에 본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보통사람’에서 김태성(조달환 분)은 형사 강성진(손현주 분) 앞에서 공포심에 울먹이다 서러움에 감정이 북받쳐 소리 내어 흐느끼며 그 자장면을 먹는다.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2017.04.10 10:31
식목일에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식목일은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의 한식이기도 했다. 청명은 그 전날이었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에도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연 세상에서 속수무책으로 흐렸다. 한식(寒食)에 종일토록 내린 비는 공기 중에 그득한 먼지들을 잡아 땅으로 끄집어 내리며 풀과 나무들의 뿌리를 흠뻑 적셨다. 천천히 오래 내려야 봄비다. 소나기처럼 후다닥 왔다가는 비로는 오랫동안 추위에 웅크린 채 메말라 있던 뿌리를 해갈시키지 못한다. 목말라 있기는 흙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땅 속으로 파고든 비는 빈틈을 따라 가장 아래로 내려간다. 강하게 빨리 쏟아지는 비는 딱딱한 땅의 피부에 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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