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무가는 작은 무대에서 문(門)밖 미지의 것들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과 환상으로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를 꿈꾼다. 아니면 탄탈로스의 형벌을 받으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며 인간의 삶을 살아낸다. 탁지현은 그 너머 존재 가치를 탐구하는 문을 두드린다. <문 너머 moon>은 계기(繼起)의 리듬을 타는 듯 거침없는 음악적 유동의 한 가운데 사유의 대상을 바꾸어버린다. 내가 달을 보거나, 달이 나를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주체와 객체는 경계가 없다. 탁지현 발레는 몽유도원(夢遊桃源)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탁지현의 공연의 제목과 장(場)을 나누는 소제(小題)는 문학적 수사에 인접한다. 씬은 달에 관한 영상과 더불어 시각적 프레임을 극대화한다. 움직임과 의미 사이를 차지하는 1장 : ‘문... 열어도 될까요?’ 2장 : ‘네모난 달’ 3장: ‘탄탈로스의 꿈’ 4장 : ‘pale blue dots’(창백한 푸른 점들)으로 구성된 네 개의 장(場)은 세련된 역동성으로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탁지현의 발레는 빛나는 유리그릇에 쌓인 이지적 낭만의 시적 경쾌함을 담보한다. <문 너머 moon>은 진정한 발레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장면들이 가득 차 있다.


2장 : ‘네모난 달’ ; 영상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현대적인 소나타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Cello, M.73 2악장, 가단조)와 더불어 통념을 벗어난 네모난 달은 인간이 만들고 있는 환상의 장소를 돋보이게 만든다. 달의 이미지(원의 형태, 금빛·은빛의 색감)를 품고 있는 독특한 의상과 서민영, 최솔빛나라, 이정은, 현민지의 군무는 즐겁고 우스꽝스러운 움직임 등을 통해 나른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설정된다. 투명한 우울함에 관한 익살은 탁지현 발레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3장: ‘탄탈로스의 꿈;’ 안더스 힐보그의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바흐 마테리아’(Bach Materia), 한스 찜머의 ‘산’(Mountains)이 3장을 조형한다. 정수민은 현실의 인간이 환상의 나라를 찾는 역을 한다. 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탄탈로스의 신화’와 연결된다. 물에 빠져 열매를 따 먹으려 하면 멀어지고 물을 마시려고 하면 말라버린다. 살아있는 동안 영원한 갈증과 기갈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은 탄탈로스의 이미지가 차용된다. 그는 물질과 풍요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갈증과 기아를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맞닿아 있다.


탄탈로스의 열매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통해 현실과 대비되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동시에 우리가 손에 닿으려 해도 가질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 욕망을 상징한다. 결국 모든 열매가 사라지고 지쳐 쓰러지고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호리막에 점점 확대되어가는 달의 형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무용수들, 그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무대 앞 내려진 샤막 속 영상에서 지구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으로 겹치고 지구는 점점 축소되며 거대한 우주 속 희미하게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으로 남겨진다.
4장 : ‘pale blue dots’(창백한 푸른 점들); <인터스텔라>의 OST ‘굿나잇 속으로 온순해지지 마세요’가 장(場)을 장악한다. 현실의 짙고 검은 공허 속에서도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들로 스스로 빛을 발하며 존재하는 인간을 빛과 헬륨을 넣은 풍선으로 표현한다.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언급된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의 시를 통해 인간은 사라져 갈 우주의 하찮은 점에 불과하지만 각자 빛과 에너지를 발산하며 현재를 살아가기에 그 빛들이 모여 지구가 푸른빛으로 살아 숨 쉬는 것임을 안무가 탁지현은 발레로 밝혀낸다.


안무가 탁지현은 <문 너머 moon>에서 던지는 메시지, ‘인간은 결과적으로 현실의 문 안에 갇혀 살고 있지만, 그 너머의 환상(이상)에 대한 욕망이 있기에 에너지를 발하며 희망을 품고 존재한다.’를 전달한다. 탁지현의 코다(coda)는 관객들에게 발레적 개안을 감행했고, ‘발레체가 그 사람이다’임을 밝히는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탁지현 발레는 ‘문 너머 moon’ 같은 운율적 리듬을 탈 때 도약의 꿈을 가지며, 모두가 즐거워할 때 ‘노래로 불릴 것 같은’ 단계에 진입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창작발레 <문 너머 moon>은 무대 위로 달을 끌어와 섬광과 비말(飛沫) 속에 존재감을 두고자 한 탁지현의 의지적 끄레아시옹이 발ㅇ현된 것이다. 촘촘히 짠 시각적 프레임은 호흡을 가쁘게 하고, 옹골찬 노력의 구성은 빈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움직임과 영상과 조명 같은 주변 장르와의 완벽한 조화는 프로적 이미지의 상급을 지향하고 있었다. 선지식이 사건과 시간을 초월하며 벌인 달 사냥과 우인 삼기를 즐겼듯, 탄력성이 있는 탁지현 발레는 여러 분야에서 갑작스러운 영광을 차지할 것 같은 매력적 작품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