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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국 흑인차별 본질은 50년 전 킹 목사 ‘명연설’ 이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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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국 흑인차별 본질은 50년 전 킹 목사 ‘명연설’ 이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사진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린 인종차별 항의 집회에서 “나에겐 꿈이 있다”는 명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린 인종차별 항의 집회에서 “나에겐 꿈이 있다”는 명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

“우리는 흑인이 경찰의 언어를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잔학행위의 희생자일 뿐이라면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이는 1963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행해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I have a dream’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 한 흑인 남성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흑인차별 항의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흑인차별은 우리가 상상하는 오래전부터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문제다. 차별 철폐에 인생을 바친 킹 목사의 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차별의 현상과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려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 25만 명이 모인 워싱턴 대행진

한국에서는 킹 목사에 대해 역사나 영어 수업에서 배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킹 목사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주로 미국 남부에서 흑인 별에 반대하는 운동과 시위행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은 버스 뒷자리에 타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비롯해 교육, 고용, 투표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차별이 횡행했다.

그는 차별에 항의하는 사람들에 대해 평화적인 시위를 계속 촉구했다. 시영버스 승차를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으로 시작되는 여러 운동을 계속해 1963년 8월 28일 워싱턴의 대행진서 연설을 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일자리와 자유를 요구한 이 시위에는 약 25만 명이 모였으며 수도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집회 중 하나로 알려지소 있다. 시위자에는 흑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계층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바로 지금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일이 50년 이상 전에도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데모 행진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 역사에 남는 명연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다)’이다. 그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걸었을까. 하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 결코 변하지 않은 미국사회의 어둠

제목으로도 쓰여진 ‘I have a dream’으로부터 시작하는 구절이 유명한데, 실은 이것은 연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다. 킹 목사는 모두발언에서 100년 이상 전의 노예해방선언을 들고 연설을 시작했다.

100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했다. 지금 우리는 그 사람을 상징하는 좌상 앞에 서 있다. 이 막중한 포고는 가차 없는 부정의 불길에 휩싸여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커다란 희망의 광명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포로의 신분에 있던 그들의 긴 밤에 종지부를 찍는 기쁨에 찬 새벽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해방선언을 한 전직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거대한 기념상을 앞에 두고 그에게 경의를 표한 말이었을까. 지금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해 흑인차별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차별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절감하게 된다. 서두에서 소개한 말 말고도 지금 상황과 연결되는 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이 긴급사태를 간과하면 이 나라에 치명적일 것이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으로 가득 찬 이 혹서의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가을이 오지 않는 한 끝이 없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 워싱턴 대행진은 공민권 운동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후 1964년 7월 린든 존슨 전 대통령에 의해 ‘공민권 법’이 제정돼 선거권과 교육의 장에서 인종차별을 없애는 내용이 담겼다. 법 제정은 확실한 전진이었지만 사회의 흑인에 대한 시선이 바뀌지 않았던 것은 지금의 현 상황을 봐도 명백할 것이다.

■ 비폭력 시위 호소 노벨상 수상

현재 길거리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일부 시위자가 점포를 약탈하거나 신호등을 파괴하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또 시위자들의 화염병 사용과 이에 맞서는 경찰의 고무탄 발사 등으로 거리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광경은 50년 전에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가르침에 공감한 그는 폭력을 쓰지 않는 항의 활동의 힘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는 민권운동을 주도하다가 여러 차례 체포, 구금되었지만 유치장에서 쓴 편지에는 “어떤 장소의 부정도 모든 장소의 공정성을 위협한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피부색 차이만으로 계속 부당한 대우를 받아 얼마나 억울한 일을 겪었을까. 이 와중에도 옳음과 지성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온 목회자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비폭력을 앞세운 킹 목사의 사고방식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연설에서도 그 정신은 얘기됐다.

“정당한 위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정한 행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적의와 증오의 잔을 비움으로써 자유에 대한 갈증을 풀려고 하지 말자. (중략) 믿기 어려운 새로운 투지가 흑인사회 전체를 끌어안는데, 그것이 모든 백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대행진이 열린 이듬해인 1964년 비폭력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킹 목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시위에는 흑인차별에 반대하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지금도 말하지만 이는 흑인과 백인의 싸움이 아니라 차별을 용서하는 사람과 차별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의 싸움이다. 항의 활동이 더 많은 증오를 낳지 말 것을 호소한 킹 목사의 생각은 요즘 세대에도 많은 사람에게 계승되고 있다. 킹 목사의 딸도 이번 시위에 대해 “젊은이들의 끈기와 결의에 용기를 얻었다”라고 발언하고 있다.

발언

킹 목사의 막내딸 버니스 킹은 미국의 대기업 미디어 abc NEWS의 취재에 대해, 이번 항의 운동에 대해 “인종을 초월해 많은 젊은이가, 끈기와 위기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계속 퍼지는 항의의 연결고리를 칭찬했다.

그는 또 킹 목사 사후에도 차별 박멸을 위해 활동을 계속한 자신의 어머니 말씀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는 날은 오지 않는다”를 소개하며 “젊은이들의 끈기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결의가 지금 정말로 사회를 움직이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